출처 : 한국개혁신학 2016, vol.50, no. / KCI 게재확정일:2016.5.6.
칼 바르트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이상은 서울장신대학교 (조직신학)
한글초록
본 논문은 20세기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수용과 해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바르트는 16세기에 저술된 개혁교회의 신앙의 유산을 자신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적용의 길을
찾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플라스거나 라이헬의 연구에 따르면 바르트는 처음부터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 바르트는 이 요리문답에 대해 잘 알
지 못하고 있었으며, 거부감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가 자유주의 신학의 시대를 거
쳐 신학을 시작했던 까닭에 신앙고백의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고백교회의 투쟁기에 중요한 신학적 기반으로 받아들
였으며, 이를 통해 개혁교회의 살아있는 신학정신이 현재적 상황 속에도 충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읽기는 그리스도 중심성의
신학적 정신 하에서 가능한 것이었고, 칭의의 신학적 기반 위에서 바르트는 자신있게 성도들의 신앙
적 행동을 촉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바르트의 설명은 1947년에 행한 신앙고백강의를 비롯해서 교
회교의학 등 그의 신학 전반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신학작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개혁교회의 중요한 요리문답을 역사속의 한 전통으로만 두지 않고 살아있는 활력을 위해
재해석해내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신학을 위한 도구로 해석해 낸 시도
는 충분이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은 신앙고백 전통을 대하는 오늘의 교회가 스
스로의 길을 모색함에 있어서 귀감이 되고 있다.
한글주제어:
칼 바르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스도 중심성, 사회윤리, 신학적 실천, 바르멘 신학선언
I. 들어가는 말
“요즘 같은 세상에도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까?”, 신앙고백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400년 혹은 500년 전에 작성된
신앙고백문들은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꽤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종교개혁의 살아있는 정신을 21세기의 오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재해
석하고 세상이 나아갈 길을 밝혀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의 신학현장에서 칼 바르트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신학적 시도를 전개해 나갔다. 괴팅
엔 대학에서 개혁신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그는 중요한 일련의 개혁교회
신앙고백에 대한 강연을 다루어나갔고 그에 기반을 두고 현실적 영역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시도했다.
예컨대 그가 후에 자주 사용했던 “정치적 예배”(politischer Gottesdienst)라는 개념은 원래 1937
년, 38년 두 해에 걸쳐 아버딘(Aberdeen)에서 행했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강연 중에 등장했던
표현이었다.1) 그러나 그가 다루었던 신앙고백 전통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에 대한 것이었다. 시대로부터 주어지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면서 바르트는 이 요리문답을 늘
동반자로 삼으며 신학적 방향을 얻곤 했다. 그 자신이 진술한대로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의 저술
에 참여할 때 그는 이 요리문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2)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1947년 본에서
행해졌던 강의원고는 바르트가 이 요리문답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자신
의 신학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교회교의학 저
술의 과정을 통해 그는 유럽 개혁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요리문답을 중요한 “대화상대자”로 동반해
나갔다.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바르트의 이와 같은 애정은 최근까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언
급되고 다루어져왔다. 니젤(W. Niesel)은 바르트가 이 요리문답을 그리스도 중심적 초점 위에서 어
떻게 세밀하게 다루었는지를 관찰했다.4) 플라스거(G. Plasger)는 바르트 신학이 보여주었던 신앙고
백에 대한 “관계적 권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였다. 그는 바르트가 전통과 단절된 신학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그리고 전통에만 갇혀 있지 않고 살아있는 힘을 발휘하는 개혁신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 요리문답을 다루었다고 보여주고자 했다.5) 최근 출판된 연구서에서 라이헬(H. Reichel)은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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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적 예배”(politischer Gottesdienst)라는 말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강해 이외에도 1938년 “칭의
와 법”(Rechtfertigung und Recht)에서 사용된 이후 1946년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시민공동체”에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바르트의 기본적 시각을 보여주는 개념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그리고 이후 정치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개념이다. K. Barth, Rechtfertigung und Recht, Chritengemeinde und Bürgergemeinde [u.a.]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38), 5. 이 개념을 통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은 단지 교회공동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공동체에도 동일하게 미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
2) Karl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hechismus, (München: Kaiser 1949). 20.
3) Geor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2000). 참고로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전권에 걸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인용횟수는 여타의 다른 신앙고백의 인용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다만 교회교의학에서 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인용하는 방식은 요리문답 자체의 성격을 분석한다거나 신학적 의의를 평가하기보다 자신의전체 신학구조의 틀 안에서 임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만 기반을 두고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관찰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교회교의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용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1947년 강의가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4) Wilhelm Niesel, “Karl Barth und der Heidelberger Katechismus,” ed. E. Wolf and C. Kirschbaum and Chr. Frey. Antwort: Karl Barth zum 70. Geburtstag am 10. Mai 1956, (Zürich-Zollikon: Evangelischer Verlag 1956), 156-163.
5)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2000), 1.
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읽기를 시대적으로 정리해 나가며 그 맥락을 추적해 나가기도 했다.6) 이
러한 플라스거나 라이헬의 초점은 연구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플라스거는 바르트가 히틀러에
반대하는 고백교회 운동을 출범시켰던 바르멘 신학선언의 중요저자였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
신의 정치신학적 작업에서 요리문답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라이헬은 바르
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읽기 그 자체가 상황적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정치상황적 역학
관계 하에서 이 요리문답을 접근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하이델베
르크 요리문답이 바르트의 정치신학적인 신학방향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플라스거와 라이헬의 테제
에 공감을 표한다. 실제로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상황적 민감성을 가지고 읽었으며, 이
요리문답의 핵심내용으로부터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직분의 목소리를 찾고자 했다. 이러한 바르트의
목소리는 특히 1947년 강의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한편으로 우리는 그가 요리문답
을 해석하면서 역사적 근거에 충실하기보다 자신의 독특한 신학적 해석을 앞세우는 방식에 대해 질
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르트가 전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를 통해 예언자적 직분의
소리를 찾고, 사회윤리적 참여의 촉구의 길을 찾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바르트의 이러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읽기에 대해서 그의 강연들의 핵심내용
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I.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관찰과 수용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바르트의 주목
우선 칼 바르트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담긴 정신을 살펴보기 전에 바르트가 이 요리문답
을 어떻게 자신의 신학의 중요한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플라스거에 따르면 어린시절의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비롯한 어떤 개혁교회
의 요리문답에 대해서도 깊은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다.7) 그 이유는 당시 스위스의 개혁교회
가 이미 오랜기간에 걸쳐 요리문답 교육을 내려놓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8) 이에 대해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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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anna Reichel, Theologie als Bekenntnis. Karl Barths kontextuelle Lektüre des
Heidelberger Katechismu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5). 라이헬의 저술은 우선 바르트의
초기시기인 1908년부터 1921년까지, 1921년부터 1925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양상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플라스거나 라이헬 이외에도 바르트의 상황적 신앙고백 해석에 대해 연구한 논문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헨네케(S. Hennecke)는 바르트 신학의 네덜란드에서의 수용을 중심으로 그가 화란 신앙고백이나 벨직 신앙고백을 정치적 의미에서 읽었던 사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Susann Hennecke, Karl Barth in den Niederlanden: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4). 바인리히(M. Weinrich)는 바르트가 스코틀랜드 요리문답을 읽는 정치적 방식에 대해 다룬 바 있다. Michael Weinrich, Die bescheidene Kompromisslosigkeit der Theologie Karl Barths.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3).
7)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111.
8) 스위스의 경우에는 19세기에 자유주의화의 경로 가운데에서 신앙고백을 그들의 교회법으로부터 축출해
버렸다. Walter Hildebrandt, “Entstehung und Geltung des Zweiten Helbetischen Bekenntnisses,” in
H. Bullinger: Das Zweite Helvetische Bekenntnis, ed., Kirchenrat des Kantons Zürich (Zürich:
Evangelischer Verlag, 1966), 139-166: 156. 그러나 바르트는 그나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듣고 자랄
수 있었는데, 이는 보수적 칼빈주의 목회자였던 그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독일 뿐 아니라 스위스에서도 맹렬히 몰아쳤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막상 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진지하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1921년 미국의 장로
교인들이 기금을 마련해 개설했던 괴팅엔 대학교의 석좌교수직을 맡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9) 스위스
에서 포기되었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교육이 당시 독일에서는 어쨌든 실시되고 있었던 것은 특이
한 일이다. 그러나 막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첫 대면을 해야 했던 바르트에게 하이델베르크 요
리문답에 대한 인상은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라
이헬에 따르면 이때까지도 바르트는 요리문답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사
실 이 요리문답을 왜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10) 특히 바르트
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제일 중요한 특징을 나타내주는 1문항을 대단히 의심스럽게 보고 심지
어 “따르기 힘든 오류”(folgenschwere Verirrung)이라고까지 하였다.11)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1
문항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뿐만 아니라 또한 죽을 때에도 당신이 얻는 위
로는 무엇입니까?” 바르트가 보기에 이 문항은 별로 개혁신학적 유산으로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바
르트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눈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담고 있는 비탄-구원-감사라고
하는 세가지 틀이 기본적으로 멜랑히톤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바르트는 이
문답의 표현이 신학의 중심축을 위로받는 인간의 실존으로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고 암시하곤 하였
다.12) 심지어 바르트는 강의를 시작한 수주 후 투르나이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눈에는 아무
리 봐도 이 1문항이 독일에서 일어난 개혁파의 잘못된 “루터화”의 현상처럼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13) 플라스거 역시 바르트가 1920년대 초반까지 전반적으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해 진지
하게 다루기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언급한다.14) 그러나 이러한 비판
적 시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를 겪게 된다. 강의를 진행해 나가면서 바르트는 종교개혁의 선구자
들이 신구약성서를 종횡으로 넘나들며 성서적 내용들을 신학적으로 종합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경탄
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저 1문항은 여전히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러한 비판적 시각은 라이헬이 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다루었던 두 번째 단계로 파악하고
있는 1923년부터 1925년까지의 “개혁교회 신앙고백”(Die Theologie der reformi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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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111.
10) 라이헬은 바르트가 처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았다고 진술한다. H.
Reichel, Theologie als Bekenntnis, 34. 그 이유는 첫째, 아직 신프로테스탄트의 신학적 영향을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에 요리문답 자체를 깊이 볼 틈이 없었고, 둘째, 이 시기까지 그는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를 더 중요하
게 보고 있었으며, 셋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타협적으로 보이는 면이 못마땅해 보였기 때문이다.
11) H. Reichel, Theologie als Bekenntnis, 43
12) K. Barth, Die Theologie der reformierten Bekenntnisschriften, ed., E. Busch, (Zürich: Evangelischer Verlag 1998), 191.
13) K. Barth, Karl Barth-Eduard Thurneysen Brifwechsel 1921-1930, ed., E. Thurneysen, (Zürich: Evangelischer Verlag, 1974), 26.
14)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111
Bekenntnisschriften) 강연들을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15) 플라스거 또한 이 시기부터 바
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해 이전의 시기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주기 시작
했다고 관찰하고 있다.16) 실제로 이 시기 바르트는 요리문답의 중요성에 대해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다만 개혁교회의 변함없는 지반은 성서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그를 능가하는 규범적 진술은 존재하
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은 단지 상대적이고 장소에 국한된
권위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17) 그리고 1925년 무렵 괴팅엔을 떠나 뮌스터 대
학의 교수직을 향해 떠날 무렵 바르트는 개혁신학 전통이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의 가치에 대해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입증된 하나님의 계시의 오직 성서 안에서 이루어진 임시적으로 이루어진 통찰
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후 바르트가 신앙고백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된 시점은 플라스거에 의하면 1933년
에 이르러서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33년 국가사회주의정당(Nazi)이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였
고, 자연계시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히틀러를 독일 민족을 위해 보내 준 시대의 메시야라고 선포하
였다. 역사적 증언에 따라 볼 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신학적 대답의 요청을 받게 되었을 때 독일개
신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무력함 그 자체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국가교회는 권력의 요구에
편승하면서 자연신학적 견지에서 히틀러의 집권을 뒷받침해주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에 직면해서 반 나치 운동을 벌였던 고백교회 운동의 대표자들은 성서적이고 보다 전통적인 신앙의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자신들의 입장을 표출하는 것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발해야 한다는 요청 앞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신학적 대답은 사변적 신학의 논리를 통해 주어지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독일의 고백교회를 주도했던 이들은 이러한 도전에 대한 응답을 강력하고 분명한 신앙고백과
신학선언 속에서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막상 신앙고백의 힘 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을 때, 적절하게 모범이 될 만한 신앙고백
이나 신학선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를 도출하기가 힘들었다.18) 이러한 상황 가운데 계시
신학에 바탕을 두고 분명한 선을 그었던 중요한 신학선언이 독일의 개혁교회, 루터교회, 유니온교회
세 교회가 연합으로 작성하고 선언했던 바르멘 신학선언(1934)이다.19) 부쉬(E. Busch)의 증언에 의
하면 이 선언은 바르트가 나치 정권에 의해 교수직으로부터 해직된 이후 독일의 개혁교회와 루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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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 Reichel, Theologie als Bekenntnis, 80.
16) 그 이유로 우선, 그는 이 요리문답을 가르치기 쉽고 적절하며 허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둘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부른너(E. Brunner)의 비판적 질문에 대해서 우회적인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17) 물론 바르트가 이 시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해 주고 있는 긍정적인 시각은 이 특정한 요리문답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18) 레제(Reese)는 1933년부터 시작된 교회의 투쟁 시기 동안 다양한 신앙고백운동이 이어졌음을 증언하
고 있다. 그러나 바르멘 신학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중에 어떤 것도 표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Reese, “Bekenntnis und Bekennen im Kirchenkampf,” in Bekenntnis und Einheitder Kirche. Studien zum Konkordienbuch. ed, Martin Brecht and Reinhard Schwarz, (Stuttgart: Calwer, 1980), 467-490: 467. 박봉랑은 이 시기 이어졌던 독일교회의 신학성명들의 물결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박봉랑, 『그리스도교의 비종교화: 본회퍼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78.
19) Kurt Meier, Kreuz und Hakenkreuz: Die evangelische Kirche im Dritten Reich, (München: dtv, 1992), 63.
회의 대표자들이 작성하여 바르멘-게마르케 교회에서 열린 고백총회에서 선언되고 만장일치로 통과
된 신학선언이다. 이러한 연합전선의 형성에서 바르트는 개혁신학의 대표자로 참여하였다.20)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르트는 신학적 차원에서 반히틀러 운동의 핵심을 담아야 할 문서를 작
성함에 있어서 그 내용을 여타의 신학적 논쟁에서 찾고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바르멘 신학선언
1항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오직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이외에는 다른 주는 없
다”는 계시중심 신학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 신앙선언에서 바르트는
신학의 혼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확정하고자 했다. 또한 모든 개신교 교회의 결집을 통
해 독일의 국가교회가 취하고 있는 그릇된 길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위한 행위를 표출하고자 하였
다. “교회는 자신의 근본 전제를 새롭게 성찰함으로써 ... 굳건해져야 했고 ... 용감하고 확신에 찬
투쟁에 나서야 했다.”21) 동시에 그는 분산된 개신교회의 정신들이 “함께 모여,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의 주님 한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행진하는 것을 희망했다.22) 역사와
교파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한분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저항의 시
작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모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바르트가 대답
한 것이 곧 “한 분, 곧 교회의 유일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라고 하는 답이었다.23)
흥미롭게도 바르트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신학적 선언에 있어서 핵심적 내용을 제공해
준 것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었다.24)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10여 년 전에 그렇게
의심스럽게 보았던 첫 번째 문항이 오히려 신학적 해답을 주는 중요한 길잡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로마서 강해 1판 이후로 바르트가 보
여주고 있는 주-객 도식 전환의 중요한 시각의 전환이 반영되고 있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10
년 전에 바르트는 왜 이 문항이 인간 “나”의 위로를 주는 이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가
라는 구조상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었다. 지금 바르트는 이 문장을 인간의 비참한 상황 가운데
위로를 주고 있는 그리스도를 중심주제로 부각하면서 시대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
다.25) 그에 따라서 그는 이 문항을 “누가 위로를 얻는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 “누가 위로를 주는가”
라는 문제로 구조적 재해석을 수행했으며, 그러한 관점 전환에 따라서 이 요리문답을 전체적으로 재
해석해내고자 했다. 그 결과로 그는 바르멘 신학선언 1문의 내용을 도출해 내고 시대를 향한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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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berhard Busch, Karl Barth 손성현 역, 『칼 바르트』 (서울: 복있는 사람 2014), 420-425. 이러한
자세와 내용이 루터파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고백교회 안에서 바르트 신학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반박이 나오기도 했다. 부쉬는 자세(Sasse)와 알트하우스(Althaus)가 성례전에 대한 언급을 넣고 싶어했는데 결국 바르트가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말씀과 성례전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문장을 넣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 대해 니젤이 하늘에 있는 칼빈이 좋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1) E. Busch, Karl Barth, 423.
22) E. Busch, Karl Barth.
23) E. Busch, Karl Barth. H. Reichel, Theologie als Bekenntnis, 111.
24)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93.
25) 이에 비해서 이경직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십계명에 대한 설명 가운데 “‘나는 믿습니다’(Credo)
로 시작되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핵심구조를 간파한 바 있다. 이는 이 요리문답이 보여주는 “나” 구조가 사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을 강조하는 측면을 담고 있다는 점을 적절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경직,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에 나타난 십계명 이해,” 「한국개혁신학」 40 (2013), 331-337: 316.
적 목소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니젤(W. Niesel)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바르멘 신학선언 1문에
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1문은 400여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공명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26) 이
러한 관점전환은 이후 그의 38년 강의 그리고 결정적으로 47년 강의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고난
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지향해 나가는 이들에게 지침이 되는 문서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재해석해내는 작업으로 속행되었다.
III.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승리, 그리고 성도들을 향한 행동의 권면
1. 위로자 그리스도와 위로받는 이들, 그리고 삶의 실천으로의 촉구
바젤로 돌아간 이후 1936년부터 바르트는 독일에서 행했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의를 속
행했다.27) 이 시기는 바르트가 33년 독일에서 나치에 대한 거수경례를 거부함으로써 교수직에서 쫓
겨나고 바르멘 신학선언을 작성한 직후 독일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1936년에 바젤 대
학교에서의 강의를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중요성에 대한 평가로 시작했다. 성서의 말씀
을 듣는 가운데 올바른 그리스도교 교리를 확정하기 위한 도구로서 교의학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신
학적 사유를 전개해 나가면서 우리가 읽어야 할 중요한 문헌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거론할
수 있다는 언급으로 그는 강의를 시작한다.28) 특히 그는 “위로”를 다루는 1번 문항을 설명하면서,
이 문장의 핵심은 위로를 주는 하나님께 있다고 밝히는 동시에 위로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 처해있
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죄의 폭력 아래 서 있는 인간이
며, 악의 권세 아래 서 있는 인간이다. 인간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폭력으로부터 그를 해
방시켜주시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29) 인간이 곤경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없
을 때 주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대적들을 향해 나서신다. 바르트는 인간이 처한 곤경의 상황
가운데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바로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라고 밝
히고 있다.30) 이러한 신학정신을 담아 1938년부터 바르트는 스위스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
의를 종교교사들을 위한 강의로 확대 해 나갔다.31) 이 강의를 시작하면서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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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W. Niesel, “Karl Barth und Heidelberger Katechismus,” 156.
27) 1936년 바젤 대학교에서의 강의를 위한 원고는 2013년 바젤에서 발행되는 Theologische Zeitschrift
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28) Karl Barth, “Einführung in die reformierte Lehre auf Grund des Heidelberger Katechismus,” Theologische Zeitschrift 69 (2013), 270
29) Karl Barth, “Einführung in die reformierte Lehre auf Grund des Heidelberger Katechismus,” 276.
30) 이 시기 바르트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러한 설명구조는 중요하다. 비슷한 시기 그가 강연했던 스코틀
랜드 신앙고백에서도 그는 비슷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이 “한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한편으로는 자연신학을 분명히 거부하면서 모든 것의 출발점을 “한분 유일하신 하나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31)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4. 그가 강의를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스위스에서는 100여년 전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모든 강의가 폐지된 뒤였다.
리문답은 칼빈의 종교개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개혁의 한 단면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
다.32) 또한 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비참-인간의 구원-인간의 감사”에
이르는 개요가 종교개혁 전체의 본질을 뛰어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이 문헌은 어떠한 경우에도 폐기
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개혁교회의 고전적인 신앙문서로서, 이 요리문답은 그러한
문서로 존속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33) 그리고 오직 성서의 권위만을 인정하는 개혁교회에서 성
서를 적절히 증명해주는 문서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바르멘 신학선언 이후에
바르트는 확실히 이전단계와는 다른 재평가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
는 이 요리문답이 담고 있는 참여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에 대한 바르트의 재발견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바르트가 요리문답을 해석하는 전반적 구조 안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우선 우리는 바르트가 신앙고백의 전체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
르트는 요리문답을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의 신학적 초점 하에서 재해석하고자 했다. 바르
트의 관점은 우선적으로 “누가” 위로자인가 하는 것에 놓여 있다.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원
받는 “나”가 초점이 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심이 놓여 있다. 이러한 인간으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주체의 전환은 요리문답을 읽는데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사실 바르트의 신
학에 있어서 이러한 주체의 전환은 그의 신학 전반을 읽기 위한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장 구조에 있어서 주체의 전환의 강조, 즉 인간주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주체전환은 로
마서강해 1판 이후로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바르트는 신학적 문제 뿐 아니라 신
학이 감당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인간으로부터는 답이 구해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하고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 그가 신프로테스탄트사상의 인간중심주의와 선을 긋고자 했기 때문이
고, 다른 한편으로는 블룸하르트(Blumhardt)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승리자 예수”의 사유에서 신학
적 죄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윤리를 위한 답을 동시에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읽는 방식에도 반영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바르트는 그러한 전환점 위에서 “위로”라고 하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정식을
새롭게 해석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위로는 안주나 신변보장과 같은 단순한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다. 오히려 그 말은 “권고”나 “도전”을 의미한다. “문답 1에 의거해 볼 때 위로를 베푸시는 그분
에 의해 위로받거나 권면받는 그리고 도전받거나 힘을 얻는 상황이 이루어진다.”34) 문답 1이 제시
하고 있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전체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그 기반 위에
서 바르트는 전체 요리문답을 세 핵심 질문으로 다시 정리한다. 첫째, 위로하는 자는 누구인가. 둘
째, 위로를 받는 이는 누구인가. 셋째, 어떻게 위로를 받게 되는가.35) 이 세 가지 질문은 하이델베르
크 요리문답이 원래 가지고 있는 비참-구원-감사라고 하는 형식을 자신의 방식에서 다시 정리한 형
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나의 신뢰할만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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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4.
33)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5.
34)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5.
35)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6.
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것이라는 점이다.”36)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것으로 인해 나는 위로
를 받게 되며, 모든 것은 나와 그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로 구성된다. 여기에 상응해서 문답 34
는 그분을 나의 “주”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특히 마귀의 권세
로부터 구원하셨으며,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점에서 문답 1과 문답 34는
상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37) 추가적으로 문답 15에서 17까지는 인간의 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35에서는 다시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인간의 상황과 구원자로서의 그
리스도를 대비시켜 설명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고 바르트는 해석하고 있다.
둘째로, 바르트는 위로를 받는 자의 자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위로를 받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
에게 속해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38) 위로받는 이의 상태
가 가장 잘 표현된 본문은 바르트에 의하면 32문이다.39) 이 본문은 “내가 ...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
며”, “내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 받음에 참여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40) 바르트에 따
르면 이 31문과 32문은 전체 요리문답 중에서 가장 중요하며 교육적 내용을 담고 있는 문항이다.
특히 32문에서 요구하는 내용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그리스도와 같은 자가 됨으로써 자신
에게 맡겨진 직분을 수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과 의의 주
체가 되어, 특히 왕직의 수행자로서 “자유하고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죄
와 악마를 대항해서 싸우며 장차 영원히 그분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직무를 감당해
야 한다. 특히 바르트는 31문과 32문의 해석을 통해 이 요리문답이 전통적인 왕, 제사장, 예언자라
고 하는 삼중직의 형태 중에서 왕직을 선호하고 그 다음으로 제사장 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보
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그가 견지하고 있는 주권자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상 때문이다. 그리
스도의 주권(Herrschaft)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바르멘 신학
선언의 핵심내용과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왕직은 우리를 자신의 소유물로 삼으신 그리스도의 대속
(의)을 의미하며, 제사장직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리를 대신(구원)한 그리스도의 직무를 의미한
다. 그리고 전자는 다시 영을 상징하고 후자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41) 바르트는 이러한 방식
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그리스도의 구원과 의(Gerechtigkeit)를 통한 연합으로 상징되는 위
로를 표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42) 바르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선물에 참여하는 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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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37) 문답 34: 왜 당신은 그분을 우리의 주님이라 부르는가?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하여 금이나 은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귀중한 피를 흘려 우리의 몸과 영혼을 모든 마귀의 힘으로부터 구속하
셨기 때문이다.
38)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9
39) 문답 32. 왜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가? 내가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따라서 그리
스도의 기름부음 받음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가운데 ... 이 세상
에서 살아가는 동안 죄와 악마를 대적하여 싸우며, 장차 영원히 그분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40)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9
41)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9.
42) 바르트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강의하면서 유독 의(Gerechtigkeit)라는 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그가 이 요리문답을 보는 중요한 초점을 설명해준다. 1947년 강의에서는 후반부의 소제목을 붙이면서 유
독 “의”(Gerechtigkeit)라는 개념을 다시 강조해 내고 있다.
의 개념을 표상하는 것(55 문)을 의미하며, 이러한 시각은 또한 성례전에 대한 시각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바르트가 성만찬(76 문)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Einheit)이다.43)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연합함에 있어서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한 영의 통치를 받는데 있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르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말을 현실을 직시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참여하길 촉구
하는 바르트의 외침으로 들을 수 있다.44) 동시에 바르트는 이 말을 신자들의 윤리적 차원의 언설로
이끌어가고자 시도한다. 단지 개인으로서의 윤리적 차원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의 공동
체윤리와 사회윤리의 주체로서 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위로받는 이들은 첫째,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
기까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으면서 세례로부터 성만찬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규정하는 삶이다. 둘째, 이들은 옛사람이 아닌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주체들이다. (70문, 89문) 이러한 새로운 삶의 주체가 되는 길은 그리스도의 죽
음과 부활의 빛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능력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바르트에 따르면 위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부터만 일어난다. 성령을
통한 보증이 없다면 인간은 넘어지기 마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신자에게 확신을 주
신다. 이러한 성령의 확신은 우선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 (문답 54) 공동체의 선택 가운데에서 선포
되는 복음을 통해서 신자는 우선 믿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성령과 영생과 관계를 맺어
가며 위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위로받는 자들에게는 감사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 이 감사의 열매
는 동시에 선행의 형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64문의 질문 “이러한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에
대해 소흘하고 악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닙니다. 참된 선행으로 그리스도에게
덧붙여진 사람이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을 바르트는 강조한다.
바르트는 신앙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는 바로 구체적인 “그리
스도의 행동에의 참여”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그분을 고백
하고 감사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45) 믿음 자체가 이미 그리스도에게 참여를 촉구하며 그리스도
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을 촉구한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행동 속에 참여시키는 것이
다. 바르트는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행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믿음과 삶을 분리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
이다. “고백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투쟁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다. 믿음의 삶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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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6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
리스도 안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축복받은 몸과 더욱 더 연합하게 되어, 비록 그리스
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가 되어 마치 우리 몸
의 지체들이 한 영의 통치를 받듯이 한 영의 통치를 받으며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44) 주도홍은 칼빈이나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객관적 사실에만(Faktum brutum) 머무르지 않고 나를 자유케 하고 해방하는 사건으로 현재화하고 있음을 적절히 지적하며, 그 배경에 성령론이 있음을 적절히 강조하고 있다. 주도홍,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의 성령론: 구원론을 중심으로,” 「한국개혁신학」 40 (2013), 183-214: 231.
45)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19.
하거나 감사하거나 투쟁하는 삶일 수 밖에 없다.”46) 그러한 까닭에 문답 64는 “그렇지 않습니다”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의 삶과 투쟁을 하기 위해 인간은 기도할 수 밖에 없음을 바르트는 강조
하고 있다.47)
전체적으로 바르트는 다시 한 번 86문과 32문을 요약한다. 86문은 우리의 행위의 주체가 그리
스도임을 밝혀주는 근거조항이다.48) 그에 대해서 32문은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는 “나”에 대해 말
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과 나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감사와 선한행위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일어난
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면서 생명을 감사의 제물로 바치면서 자유한 양심을 가지고
죄와 악에 대항하여 싸우게 된다. 이와같이 바르트는 믿음의 현실이 곧 실천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
교인들의 참여에 대해서 조명하고자 했다.
2. 행동의 일치(unio activa)의 촉구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바르트는 믿음에 기반을 둔 실천에의 촉구라고 하는 이러한 요리문답의 해석을 패전 후 독일
의 신학계에 제시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현재적 세계에서 제기되는 도전에 직면할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했다. 1947년 전쟁이 끝난 직후 바르트는 서독의 수도 본(Bonn)에서 두 학기에 걸쳐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 강의를 진행했다. 니젤은 바르트가 패전한 독일에서 곧바로 이 요리문답에 대한 강
의를 시작했던 이유는 이 요리문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반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패전
독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49) 이 문헌에
서 바르트는 특히 그리스도중심성에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행동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촉구하는
방식을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우선 서문을 통해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다루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
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다루는 기본 입장은 신앙고백의 역사
적 해석을 제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50) 역사적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고백이
담고 있는 현재적 의미이다. 그 내용을 바르트는 요리문답이 담고 있는 현재적 의미에 대한 조명으
로부터 찾고자 한다.51)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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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K. Barth, Einführung in den Heidelberger Katechismus, 19.
47)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의 화해론에서 칭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된 인간에 대해 다
루고 있다. 바르트가 보고 있는 칭의와 성화의 핵심문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에 있다. 그
러한 면에서 칭의와 성화에 대한 바르트의 시각은 칼빈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48) 86문: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의 비참으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왜
선한 행위를 해야만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후에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게 되며, 우리로 인해 하나님이 찬양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 또한 우리의 신앙의 열매를 통하여 확증되며 우리의 경건한 행위로 인해 우리의 이웃이 그리스도에게 인도되기 때문이다.
49) W. Niesel, “Karl Barth und Heidelberger Katechismus,” 156.
50)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8. 여기에서 바르트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칼빈주의의 영향하에 놓여 있으면서 루터교의 특성도 고려 하고 있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51)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5. 물론 바르트가 역사
개신교의 인식을 담은 문헌과 관계를 맺게 된다.”52) 이 인식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에 관계되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이미 완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거나 선포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으며, 여기에 그 공동체의 영광이 놓여 있다.53)
그 궁극적 목적은 공동체를 섬기는 것, 이웃을 섬기는데 놓여 있다.54)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일이다.
여기에 입각해서 바르트는 요리문답의 전체적인 구조를 다시 핵심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첫
째로, 바르트는 모든 것의 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출발한다. 바르트는 우선 하이델베
르크 요리문답은 특별한 하나님개념을 담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55) 그것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자유가운데 계시며 모든 것 위에 뛰어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계시하신다. 다시 말해서 요리문답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당신의 말
씀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다. (문답 25, 95, 117) 바르트는 바로 이 기초가 바로 그가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을 작성할 때 개신교회의 인식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문장으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성서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시다.”56) 더 나아가서 바르트는 바르멘 선언의 첫 번째 문장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의 1문과 단지 형식적인 호응만을 이루는데 머무르지 않는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바르멘 신학선언이 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의 신학의 내용적 뒷받침을 제공해주
고 있다.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담고 있는 신학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신학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57) 동시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곧 바르멘 신학선언 2항에서 이야기한 “유일회적이고 완전한 인간의 구원,
죄의 용서, 우리의 삶을 위한 요구, 예배를 향한 우리의 요구”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힌
다.58)
둘째로, 바르트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 다룬다. 그에 따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으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도록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5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칭의에 기반을 둔 행동의 삶의 촉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곧 바르트가 이해하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으로서의 칭의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종교개혁의 신학에 특별한 접점을 두고 있다. 믿음과 선행은 분리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하신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간은 행동의 길로 나서야 하며, 이러한
선행의 길이 곧 믿음이다.60) 이 믿음은 곧 행동을 향한 자유를 의미한다.61) 행동을 향한 자유의 실
적 배경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을 내놓기 이전에 “현재적 의미”에 천착하여 요리문답을 해석하고자 했던 시도
에 대해 사실보다 해석이 앞서고 있지 않은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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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9.
53)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3.
54)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3.
55)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9.
56)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0.
57)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0.
58)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0.
59)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1.
현의 장은 일차적으로는 교회공동체이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가 만나는 장소이
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과 그 나라와 그 뜻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퍼져가야 한다.62) 그리스도교
와 교회의 목적은 교회 자체의 섬김에만 놓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섬기는 것으로 나아
가야 하며,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63)
세 번째로, 이러한 하나님중심성과 인간의 행동, 칭의와 성화라고 하는 행동의 구조는 예수 그
리스도 중심성의 신학 안에서 다시 한 번 합치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에 기반
을 두고 주권자 하나님의 칭의와 인간의 행동이라는 요소를 합치시키는 설명구도를 보여주는 것이
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르트는 인간의 “유일한 위로”에 대해 다룬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의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의 핵심어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Ich bin Jesu Christi eigen)
에서 찾고 있다. 나머지 모든 말들은 이 다섯 단어의 설명에 불과하다고 바르트는 밝힌다. 이 말의
기반 위에서 시련 가운데에서도 견뎌내고 용기를 내고 즐거워할 수 있는 객관적 기반의 근거를 찾
을 수 있다.64) 바르트는 예수의 구원이라고 하는 객관적 기반 위에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예수는 당신의 피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흐트러졌던 질서를 회복하신 분이며 사탄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
하신 분이시다.”65) 예수 안에서 우리는 시련 속에서 견디어내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근거를 주관적
근거인 성령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66)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된 질서 안으로 인간을
옮겨 놓으신다.67) 바르트에 따르면 예수는 당신의 피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흐트러졌던 질서
를 회복하신 분이며 사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다.
바르트의 이 문장들은 세계대전의 목도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난 마귀의 권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그에 대한 극복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가운데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신학적 구조를 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교의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며, “그리스도
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강조되는 주제이기도 하다.68) 바르트는 죄와 비참을 개별적 차원에 한정해
서 설명하지 않는다. 예컨대 야스퍼스가 “한계상황”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실존철학적 방
식을 통해 인식하는 방식을 철저히 거부한다.69) 죄의 권세에 대한 바르트의 시각은 대단히 역사적이
고 현실적이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의 비참에 대한 3문에서 9문까지의 진술, 그리고 11문의 진술을
통해 나타난다.70) 바르트는 요리문답이 시대의 징표를 담고 있으며, 이 징표를 그는 자신의 시대에
-----------------------각주-------------------
60)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1.
61)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2.
62)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0.
63)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0.
64)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6.
65)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6. 바르트는 여기에서 구원의 의미를 교회교의학 계시론(I/2)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객관적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현실성과 주관적 근거로서의 성령의 현실성이라는 측면으로 서술한다.
66)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7.
67)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27.
68) K. Barth, Das chrisltiche Leben 1959-1961,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76).
69)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38.
중부유럽에서 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71) 그가 이 강연을 행할 때, 중부유럽은 세계대전을 마친지
얼마 안된 채 동서냉전의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갈등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였다. 이
러한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인
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기아, 지진이나 “전쟁과 집단살인”과 같은 현실
적인 문제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다.72) 이 모든 심판의 양상에 대한
대답은 바르트에 의하면 어떠한 인간의 역사로부터도 주어지지 않는다. “원자폭탄이 인간을 변화시
키거나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73) 바르트가 보기에 인간의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도 인간은 심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얻지 못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의 판결을 제대로 인식하는 길
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길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드러내는 분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곧 위로이다.74) 바르트는 또한 인간을 위한 판결이 해결되는 곳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점을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회복된 바른 질서 가운데 있는 우리의 자
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의 사건이라는 것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바르트는 이러한 설명구조를 그리스도인에 대한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
러한 내용은 교회교의학의 화해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의 보충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12문에서
18문까지의 내용을 다루면서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행동할 수 있도록 출발점을 주신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75) 우리의 선한 행동은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와 만나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의가 승리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가능하다. 바르트는 이러한 의미에서 26문을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품고 있는 마음의 어리석
음, 완악함의 결과인 악도 지배하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존재인 무라
는 존재가 갖고 있는 악을 지배하신다.” 하나님은 그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신다.76) 바르트는 이것을
섭리(providentia Dei)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앞서서 보실 뿐만 아니라 감독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섭리에 대한 믿음 안에서 인간은 고난 가운데 인내를 갖게 되
-----------------------각주-------------------
70) 11문답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면서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
하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71)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38.
72)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38.
73)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39.
74)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40.
75)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46. “Die Erlösung
durch Gerechtigkeit hat ihren Grund in dem schon in und mit der Schöpfung geschlossenen Bund
zwischen Gott und Mensch.” 여기에서 바르트가 하고 있는 말은 교회교의학 창조론(III/1)의 요약이다. 니젤
에 의하면 바르트의 공헌은 12문에서 18문까지의 부분을 신학의 중요한 초점으로 강조했다는 데 있다.
76) 47문과 48문에 대해 바르트가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을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바르트는 신학적 고장상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바르트의 해석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칼빈의 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플라스거는 바르트의 관심은 신성의 본질과 인성의 본질을 구분
시키는 강조에 대한 반대에 놓여 있었으며,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참 하나님 참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강조에 있었고, 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79.
며 당신의 때 안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인
내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가르쳐주는 내용은 다름 아닌
이러한 동참을 향한 촉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구세주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며 그리
스도의 기름부음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일치하
는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을 임의로 영위할 수 없다. 그들은 죄와 마귀를 대적하여 투쟁
하며 장차 영원히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릴 자들이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은 루터적
교리에 따라 “신비적 일치”(unio mystica)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적 일치(unio activa)
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이 행동적 일치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 그 시작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은혜의 존귀함이 담겨 있다.
인간의 권리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선사된 삶의 존엄성으로부터 성립한다.
그리고 인간 삶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겨 있다.77)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분으로서 우리
의 종말이 되시며 우리의 약속이 되신다.78)
네 번째로, 바르트는 목적지향점으로서의 예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50문항으로부터
52문항에 걸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
든 나라의 드러나지 않은 왕이며 종말의 때에는 모든 이들을 심판하는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50문항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문항을 바르트는 자신을 교회의 머
리로 나타내시기 위해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의 내용으로, 그리고 그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주권을 담고 있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바르트는 예수의 주권이 대단히 실제적이며
효력적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며 그분은 모든 것의 지배자이시다. 51문
에서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주권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그리스도
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며 붙들어주신다는 사실”이 중요한 내용이
된다고 밝힌다.79) 바르트의 이러한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치 치하의 투쟁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
리스도의 주권과 은혜를 확신하는 가운데 선포한 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주권과 능력을 외적으로나 간접적으로도
행사하신다. 교회공동체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과정 역시 공동체 자체의 과정에서와 같이 그리
스도의 통치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공동체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
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있는 이 시간 속에 교회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세
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주관적 확신으로 이끌고 가신다. 바르트는 성령을 믿는다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객관적으로 창조된 위로에 이미 주관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것은 궁극적 사건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모든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을 믿으며 믿음 안에서 이 행동 속에 참여하는 것을 믿는다.80)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주-------------------
77)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66-70.
78)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70.
79)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74.
성도들이 나 혹은 나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을 이루는 것에 목표를 두는데 있다. 이 땅 위
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일차적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주도하시는 가
운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바르트는 하나님의 의에 따라 일어나
는 인간의 믿음은 곧 믿음으로 사는 삶의 자세를 촉구하며, 세례와 성만찬에서 이것이 확립되고 확
증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르트는 세례와 성찬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스도인의 참여를 위한 공적
차원에서의 촉구로 이끌어가는 시도를 보여주면서 요리문답 강의를 정리하고 있다.
3. 죄와 악의 문제 앞에서 확신의 기반으로서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바르트는 그가 파악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이러한 핵심구조를 교회교의학 저술에
서도 지속적으로 동반해 나갔다. 플라스거는 교회교의학에서 바르트의 전반적인 인용은 특히 1문과
26문, 54문에 집중되어 있다고 관찰하고 있다.81) 이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
리스도 중심성의 내용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특히 바르트는 26문과 28문을 중심으로 관찰하곤 하
였다.82) 26문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분으로서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환난 날에 기뻐할 수 있다. 54
문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
조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보여주는 악에 대한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확인이
라는 주제는 『교회교의학』 창조론의 무(Nichtige)에 대한 논의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바르
트에 따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과 그 인식의
위로를 깨뜨리거나 혹은 방해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말해서 죄, 죄책 그리고
징벌의 전체 복합체에 대해서, 세계의 흐름 속에 있는 불행, 비참, 죽음의 전체 실재에 대해서, 그리
고 또한 무라는 요소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도록 만들어준다.83)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의 죄
와 마귀의 문제를 다루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세상에 드러난 죄의 문제를 직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바르트는 죄와 악의 인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예수의 죽
음과 부활이 담고 있는 함축된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파악한다. 그것은 예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병자와 과부, 가난한 자와 죽음이 예수의 부활에서 이미 멸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없는 결과로 이어
지게 된다.
역으로, 이러한 문제를 깨달을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행동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윤리적 차원의 모색에 있어서
도 분명한 지침을 주고 있으며 자신의 시대의 모순들을 극복하는데 길잡이가 되고 있음을 이를 통
해 밝히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바르트가 요리문답을 관찰하는 전반적 시각으로 교회교
의학에 반영되어 나가고 있다.
-----------------------각주-------------------
80)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83.
81) G. Plasger, Die relative Autorität des Bekenntnisses bei Karl Barth, 71
82) K. Barth, Kirchliche Dogmatik III/1, (Zollikon-Zürich: Evangelischer Verlag, 1957), 42, K.
Barth, Kirchliche Dogmatik III/3, (Zollikon-Zuerich: Evangelischer Verlag, 1950) 131.
83) K. Barth, Kirchliche Dogmatik III/3, 329.
IV. 나가는 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바르트의 공헌은 400여년 전에 저술된 개혁교
회의 신앙의 유산을 자신의 시대에 재해석하고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적용의 길을 찾은데 있다. 바르
트의 공헌은 종교개혁정신의 귀중한 산물인 이 신앙고백의 정신을 자신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해석
하고 행동을 위한 촉구로 이끌어 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개혁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중요한
유산을 역사속의 한 전통으로만 두지 않고 살아있는 활력을 위해 재해석해내고자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신학의 세상적 책임을 다루기 위한 도구로 해석해낸 시도 역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바르트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자신의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에
따라 읽어냈고, 그에 따라 바르멘 신학선언을 비롯한 저항정신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응답의 도구로
사용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점을 중심으로 비탄-구원-감사라고 하
는 요리문답의 형태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리스도의 계약의 성취, 약속, 그리고 계약의 성취라
고 하는 구조로 재해석하여 설명하였다.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한 행동을 촉구함에 있어서도 그 행
위의 준칙이 그리스도와의 행동의 합일이라는 원칙에서 찾았던 사실은 칭의와 성화의 핵심을 그리스
도와의 합일로 두었던 칼빈의 신학적 성향에 부합하고 있다.84) 그가 성화의 길을 개인의 차원에 국
한하지 않고 죄와 악에 대한 승리를 성취한 그리스도의 길에 대한 동참으로 이해한 것은 화해론에
서 제시했던 방향과 일치점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비판적 입장으로 본다면, 바르트가 요리문답을 다소 본인의 신학적 목적에 따라
편집된 해석을 하지 않았는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바르트가 제시하고 있는 요리문
답의 해석이 기독론적 차원에서나 성례전적 차원에서 어떤 해석적 논의가 가능한지 계속해서 논의를
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정신을 충실히 평가하면서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내려 했던 사실은 높게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신앙고백 전통을 대하는 오늘의 교
회가 자신의 길을 모색함에 있어서 귀감이 되고 있다. 막상 오늘날 우리는 129개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이 요리문답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에 대한 바르트의 관찰과 적용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신앙고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대해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각주-------------------
84) 노영상은 칼빈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구원의 은혜의 기초와 관련해서 사용할 뿐 아니라 그의 성화
론과 연결하여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동시에 인간의 능동적 입장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사용했음을 설명한 바 있다. 노영상, “깔뱅 신학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화론’ 사이의 관계,” 「장신논단」, (22) 2004: 191-215, 206. 바르트가 화해론에서 전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연합” 개념은 이러한 칼빈의 개념과의 연속성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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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arth and Heidelberg Catechism
Lee, Sang Eun, Seoul Jangsin University
(Systematic Theology)
Abstract
This thesis deals with Karl Barth’s Reception and Interpretaion of Heidelberg Catechism.
As a theologian of 20th Century, Barth tries to reinterpret the meaning of the Catechism
which was written in the 16th century, and it helps him to develope the theology of
political engagement in the period of church struggle during the Nazi regime, for
example in drafting of the Barmen Declaration (1934). However, according to G. Plasger
or H. Reichel, who carried out historical study about Barth’s Reception of Heidelberg
Catechism, his evaluation of the Catechism was not favorable in his early period, when
he took lectures about the Confession of the Reformed tradition at Göttingen University.
This attitude comes mainly from his former ignorance of the Reformed Confessions, for
he could not experience them as a student of theology in the last period of liberal
theology. Nevertheless, Barth rediscovered implications of the Catechism and he shows
that the spirit of the Reformed Confession could still provide proper answers for the
questions from the contemporary world. Especially, he interpreted this Catechism in
connection with his Christo-centrical theology, as is to see in his lecture about the
Catechism in Bonn (1947). This interpretation is to be evaluated positively, in that Barth
revitalize the meaning of the Catechism, not burying it as a mere historical heritage. It
is also to be evaluated that Barth developed it as the ethical foundation for the christian
life. Dealing with the problem of sin and devil, he urges christians to make an ethical
life of sanctification, based on his interpretation of the Catechism, including the political
field. This interpretation provides the church with a paragon in overcoming the
challenges from the contemporary world.
Key Words:
Karl Barth, Heidelberg Catechism, Christo-Centrism, social ethics, Theological Praxis,
Barmen Decla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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