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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국제장애인기능경기대회

박정우, 윤영분 씨의 러브스토리 “장애는 사랑으로 감싸 안을 뿐이다”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6-05-12 09:44:00

지난 3월 23일에서 26일까지 4일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한국은 6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세상을 또다시 놀라게 한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단 중 박정우 선수는 컴퓨터 조립 분야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개인적으로 올림픽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슴속에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그의 아내 윤영분 씨였다.
 
 
올림픽보다 멜로드라마에 빠지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래서 19일, 박정우 씨는 국제 장애인기능올림픽 선수단의 일원이자 금메달리스트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에디터는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이미 웹상의 기사들을 통해 박정우 씨가 박 대통령 바로 옆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 윤영분 씨는 남편 박정우 씨가 연락도 없이 약속 시간까지 오지 않는다며 초조해했다. 그런 윤 씨에게 “괜찮다”며 함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편한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10년을 넘게 살아도 항상 전화하고 남에게 폐를 절대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윤 씨의 모습이 진실해 보였다. 윤 씨는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남편이 18살 때, 병이 찾아왔어요. 사고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니까 몸이 아프기 시작한 거죠. 당시 어머님이 시어머니의 간호를 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하시다가 뒤늦게 심각한 병임을 아시게 된 거예요. 양방, 한방에 굿판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대요. 이미 뼈 마디마디에 염증이 생겨 관절이 녹아내리는, 죽음보다 더한 아픔을 견디며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습이 되었어요. 그렇게 남편은 고통을 견디면서 ‘제발 다리는 자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대요. 결국, 무릎을 잘라 인공관절을 심었고 대퇴부까지 병마가 침투해 오른쪽 고관절까지 인공관절로 치환해야 했어요.” - 윤 씨
 

한 집안에 환자가 둘이었으니 박 씨 가정의 경제적인 사정은 매우 어려워졌고, 박 씨는 작은 방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한 병원에서 신약 임상시험 권유를 받았고 다행히 신약이 몸에 맞아 증세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오기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결국, 척추가 녹아 휘어서 휠체어 에 의지해야만 하 는 2급 중 증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그렇게 육체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박 씨와 마음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윤 씨가 만난 것은 무궁화전자에서였다.
 
“무궁화전자는 직원 대부분이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세요. 그곳에 사무직 직원으로 취업한 저는 정상인이었기에 그런 분위기가 낯설었고 몸이 아프다는 게 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들을 보며 저 자신이 점차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약을 한주먹씩 먹으면서도 보약이라며 웃어 보이는 분, 기저귀를 차고앉아서 일하며 그로 인해 또 질환에 시달려야 하는 분. 온갖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생각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 거예요. 저들은 평생 짐처럼 자신의 아픈 몸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사지 멀쩡한 저는 제 머릿속 생각을 지워버리면 그만인 거잖아요.” - 윤 씨
 
그런 환경 속에서 유독 윤 씨에게 환한 빛같이 다가온 이가 있었다. 유독 눈빛이 초롱초롱 맑게 빛났던 남편, 박정우 씨였다. 컴퓨터를 비롯해 각종 기기에 훤히 밝은 박 씨는 윤 씨가 사무일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환한 미소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졌고 어느새 연인 사이로 발전해 있었다.
 
“제가 남편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는 저를 아끼는 주변 분들이 울면서 반대했어요. 무서운 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생 병수발 들면서 살 거냐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남편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도요. 남편이 저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안 아픈 거 말고 다른 행복이 있다 는 걸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그때 전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 윤 씨
 
 
인간 박정우의 삶에 매료되다
 
윤 씨와 이야기하는 중에 박정우 씨가 도착했다. 박 씨는 2층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청와대 일정이 늘어나서 미처 전화할 수가 없었다며 굉장히 미안해 했다. 한 눈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박 씨를 대면하자 금세 분위기가 밝아졌다.
   

“아내를 만나 안정된 삶을 찾았어요. 혼자 살면서 제 몸 하나 간수 하기도 어려웠는데, 아내가 제 인생의 대들보가 되어주었어요. 저를 꽉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에요. 아내와 함께 살며 처음으로 아내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던 때가 기억나요.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볼에 뽀뽀를 해줬어요. 그때 감동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어요.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 박 씨
 
그렇게 부부는 12년을 함께 살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이유가 되었다. 물론 다른 부부들처럼 의견차이도 있고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서로의 사랑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달 에 한 번씩 박 씨가 맞는 독한 약들을 생각하면, 항상 정신이 번쩍 들고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고 한다.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부지런히 움직여요. 집안일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아내는 깔끔한 성격이라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거든요. 저는 아내 덕분에 더 깔끔해졌고 아내는 저와 살면서 좀 더 여유로운 성격이 되었어요.” - 박 씨
 
윤 씨는 남편인 박 씨가 남을 잘 배려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혼자가 아닌, 다 같이할 수 있는 일을 항상 생각한다고 한다. 윤 씨가 보여준 박 씨의 메모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아픔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아픔을 기억하지만, 마음속까지 상처를 남기면 안 된다. 몸이 장애를 입었다고 정신까지 장애를 입으면 안 된다 ” - 박정우 메모장
  
 
삶 자체가 금메달
 
올해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정우 씨. 2011년 서울에서 열린 제8회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을 준비하고 출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좋아요. 이번 프랑스 올림픽에서는 갑자기 대회 재료들이 바뀌어 많은 참가선수가 당황했죠. 하지만 저는 그런 상황이 오히려 재밌었어요. 새로운 방식을 찾아 창의적 으로 하면 되니까요.” - 박 씨
 
박 씨의 금메달은 박 씨만의 것이 아니다. 그 옆에서 더 힘든 과정을 이겨냈어야 했을 아내 윤 씨와 함께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윤 씨는 지나치게 일에 몰입하는 남편이 항상 염려스럽다.
 
“참 신기한 게 남편은 어느 순간에도 노여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아요. 실낱같은 희망만 있어도 크게 웃을 줄 아는, 영혼이 맑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죽음의 직전까지 갔고 두 달에 한 번씩 약을 먹으면서 엄청난 고통을 견디면서도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잃지 않아요.”- 윤 씨
   

작년 가을, 부부는 새로운 모험을 떠났다. 함께 문경새재 정상에 올라간 것이다. 윤 씨는 남편을 만나기 전 등산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남편을 만나고 등산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안 될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이 윤 씨에게 들었다. 부부는 타인의 도움을 모두 만류하고 두 사람만의 힘으로 5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2분 가고 1분 쉬고 하는 식이었다.
 
“정상에 올라 어머니에게 영상통화로 전화했어요. 이 멋진 광경을 보시라고요. 이 산의 정상에 당신의 아들이 올라와 있다고요. 이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면 얼마나 억울했을 뻔 했냐고요. 땀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단풍이 정말 장관이었어요.”
 
부부는 오는 5월에 결혼식을 준비 중이다. 그간 삶의 무게 앞에 번번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12년을 함께 보듬고 살아 온 부부. 물 한 잔도 상대를 위해 먼저 떠주는 부부는 소박한 삶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
이후 아내 윤 씨에게 메일이 한 통 왔다. 윤 씨가 보낸 글 안에 에디터는 담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그에게 물었어요.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남편이 그러데요. 아픔은 견디는 게 아니라고. 그 말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맞아요. 견딜 수 있는 아픔은 이미 아픈 게 아닌 거잖아요. 그냥 아팠던 거지요.  
 
언론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있지요. “장애를 극복하고…” 
 
하지만 그 사람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답니다. 장애는 극복되는 게 아니라고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해요. 남편은 장애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애에 몸을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같아요.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라는 질문이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뼈 마디마디가 녹아내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뎠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글=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임준 객원기자, 사진= 윤동길 객원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