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5.11.03 |
블레어 전 총리는 "국가의 역사책은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면, 희망, 꿈 등을 먼저 내세우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려 든다. 그런데 이웃 나라들을 불편하게 하는 민족사관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아베의 수정주의를 겨냥했다.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지점은 한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로 올려놓은 최근 반세기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지포에 참석한 석학들이 전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이 된 나라라고 한국을 칭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일궈놓은 경제력 때문이다. 학생들 채택률이 31%로 가장 높은 `미래엔` 교과서가 경제발전을 다룬 대목을 천천히 두 번 읽어 보았다. 교과서는 `한강의 기적 빛과 그림자`(338~349쪽)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이로운 한강의 기적은 어떻게 이뤄졌는가라는 휘황한 간판으로 글은 시작된다. 그런데 각론의 내용을 보면 점차 놀라게 된다. 외채 증가, 소득격차 확대, 도시빈민, 비정규직 칼부림, 미국의 WTO 협상 강요 같은 꾀죄죄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틀린 내용도 있지만 이 각론을 모아 총론을 완성하면 아프리카 빈국밖에 안 나온다. 한국이 두바이에 지은 세계 최고 건물, 세계 평가 1위를 하는 영종도 공항, 세계 최대 선박 같은 사진을 넣어도 좋으련만 천막촌, 낡은 재개발지역, 골목상권 시위 같은 사진들로 빽빽하니 학생들은 뭘 배우고 있는가. 게이단렌 초청으로 수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는 "삼성전자의 급성장 비결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장관, 기업인에게서 숱하게 받았다. 그런데 역사책엔 삼성 현대 포스코 같은 기업의 이름도,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김우중 같은 기업인의 이름도 찾을 수 없고 전태일의 스케치만 무척 크다. 경제 기적을 일군 영웅들의 서사시에 학생들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신의 새 각오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하는 내용은 왜 안 되는가. 6·25는 남침이라고 써졌다고 제대로 기술된 것이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위의 내용은 한 줄 한 줄 보면 틀리지 않을지 모르나 총체적 한국의 모습은 못난이 새우다. 북한을 한 챕터로 다루면서도 청와대 기습을 노린 1·21사태, 문세광, 아웅산테러는 전혀 취급하지 않았다. 남에는 가혹하고 북에는 후하다. 대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바라다본다는 학설, 그냥 사실로만 기록한다는 학설이 대립하기도 하나 가장 보편적으로는 과거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미래를 향한 시선을 열어놓는다는 E H 카(Carr)의 논리가 타당하다. 사실이 없는 역사는 힘을 잃고, KAL기 폭파처럼 역사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실 또한 생명력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 그 존재가 누구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카는 갈파했던 것이다. 지금 교과서를 누가 쓰고 있는가. 그는 역사에서 올바르게 사건을 채택하고 평가할 충분한 자격과 안목과 양식을 지녔는가. 단순히 역사만 배운 전공자가 독점하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다단해졌다. 그러므로 정치, 사회, 법, 문화학자들의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토지 분배와 관련해 북(北)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남(南)의 유상몰수 유상분배보다 좋은 양 기술하나 큰 오류다. `대한민국역사`를 쓴 이영훈 교수는 그 차이가 6·25전쟁에서 북이 패배하고 오늘날 40대1의 경제격차를 벌린 결정적 원인으로 해석한다. 이제 역사의 대가 폴 케네디의 말을 들어볼 차례다. 그는 정부의 눈으로 획일적 교과서를 쓰는 것은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이나 학생들에게 미친 교과서(crazy historybooks)를 원하지는 않는다. 역사교과서는 정확하고(accurate) 균형 잡히고(balanced) 지적(intelligent)이어야 한다"는 3원칙을 제시한다. 한국의 역사교과서 7종은 폴 케네디의 논법을 빌리면 충분히 균형 잡혔는가? 현행 교과서는 말이 7종이지 사실 좌편향 한 가지다. 특히 경제인의 역할이나 기업의 실적을 의도적으로 없앤 경제발전 자학사관이다. 절대로 이대론 안 된다. 독일도 최근 반기업 교과서 판매를 중단시켰다. 폴 케네디의 균형점, 토니 블레어의 국가적 자부심을 제대로 갖춘 교과서를 다시 만드는 게 옳다. [김세형 주필] [ⓒ 매일경제 &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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