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권력 / 리처드 E 뉴스타트 지음, 이병석 옮김 / 다빈치“견해차와 불화가 계속되자 대통령은 참다못해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공화당을 잘 이끌어보려고 애쓰는 일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그는 알고 싶어 했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도노번이 아이젠하워의 임기 초반에 대해 논평한 글이다. 이런 반응은 임기 초반이나 그의 소속 정당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1960년 출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의 애독서이자 백악관 직원의 필독서가 된 ‘대통령의 권력’에 따르면, 1958년 당시 아이젠하워의 보좌관은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무언가를 결정하면 그걸로 그 문제는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잘못 처리되면 상당히 충격을 받곤 한다”고 했다.
복잡하고 유동적인 ‘대통령의 권력’을 이미 경험한 트루먼(33대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이런 반응을 예견했다. 1952년 봄, 트루먼은 아이젠하워의 당선을 예감하며 말한다.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가여운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 대통령 자리는 군사령관하고는 전혀 달라. 아이크는 곧 이 자리가 심한 좌절감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되겠지”라고.
권력은 결코 힘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지위가 반드시 지도력을 동반하지도 않는다. 대통령은 놀라울 만큼 광범위한 권력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60여 년 전 미국의 상황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생생한 화두다. 트루먼부터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대통령과 미 행정부의 멘토 역할을 했던 정치학자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지 않고는 어떤 조치도 이뤄지게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제목 그대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설립자이자 초대학장이기도 한 저자는 대통령이 권력을 얻고,
유지하고, 잃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고 또 영향력을 발휘하는 ‘설득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그 자체로 미국 정치사이기도 한데, 한국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 익숙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해 쉴 새 없이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견주어보게 하고, 또 한국 밖의 문제가 다시 한국에 작용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복합성, 상호작용성까지 살펴보게 한다.
한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에서는 ‘권력’이 지나치게 묵직한 단어로 자리 잡았지만, 저자는 이를 수수께끼 등 일상적 삶의 언어로 치환시킨다. 즉 권력을 “관계 속에서 싹트고, 신뢰를 먹고 자라는” 생물로 여긴다. 저자가 이 생물에 대한 연구에 천착한 것은 ‘강력한’ 권력을 본분에 맞게 행사할 줄 아는 대통령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개인의 전망(장래의 권력)에 대한 더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정책 실행 가능성에 대한 좀 더 나은 생각에 이바지한다”며 “헌법을 지키고 앞을 내다보며 권력을 올바로 이해하고 추구할 때 대통령의 만족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이것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대통령이 ‘강력하고도 올바른’ 권력을 행사하고, 개인의 역량을 펼치기 위해서 앞서 내세운 설득력 외에 직업적 평판과 대중적 신망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의 영향력이 나오는 원천이면서 또한 다시 국민에게 영향을 끼쳐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대통령의 의사결정, 즉 특정 선택에 대해 “대통령이 스스로 행동 속에서 자신의 권력의 위험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미리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가장 감각적인 권력자’로 꼽은 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루스벨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금세기에 그만큼 개인적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갖고 있고 그 권력이 어떤 것이며 어디서 오는지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은 없었다. 그보다 권력을 갈구한 대통령도 없었고 그만큼 권력을 사용한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다”(269쪽) “다행스럽게도 그 자신의 방향 감각은 주로 현대사의 방향과 일치했다. (중략) 서로 싸우는 역사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고, 역사에 대해 졸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역사에 뒤진 것도 아니었다.”(270쪽)
13개의 굵직한 주제로 이뤄진 본문에 도달하기 전, 1960년 초판(1∼8장)과 1990년 개정판(9∼13장이 추가됨)의 서문, 김병국 국립외교원 원장의 추천사와 이병석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역자서문까지 40여 쪽의 글을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읽어 볼 필요가 있다. 50여 년 전 미국에서 발행된 책이 오늘의 한국 정치에 얼마나 유의미한지 상기시켜준다. 또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책은 주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의 사례를 등장시키는데,
레이건, 지미 카터, 존 F 케네디 등 1960∼1990년에 등장한 여섯 대통령의 ‘권력’과 그 이면을 이 서두 부분이 명료하게 훑어주기 때문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