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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명의(名醫)와 명교사(名敎師)

 

병을 잘 고쳐주는 의사를 명의라 한다.

어떻게 해야 병을 잘 고칠 수 있는가? 병을 잘 고치려면 전공분야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명의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정형외과 의사로서 ‘고관절’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모 일간지에 실렸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어떤 의사가 명의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댭했다.

“명의란 없어요. … 굳이 말하면 진짜 명의는 환자들과 아픔을 같이해야죠.

그런 면에서 보면 명의란 많지 않아요.

환자에게 잠 잘 잤느냐, 아프진 않으냐 이런 것도 물어봐야 답이 나오죠.

 

그런데 요즘 젊은 의사들은 전부 수치만 갖고 염증이 있네 없네, 온도가 얼마네 따집니다. 환자와 공감대가 없으면 치료가 잘 안 돼요. 심지어 환자의 가족 사항이나 경제 사정도 공유를 해야죠. … 병원 사회사업팀에 얘기해 치료비 깎아줄 방법이 없나 이런 것까지 고민해야 진정으로 의사가 되는 거죠. 그냥 치료만 하면 로봇이 더 낫죠. 그게 사람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고요. ”

                     
환자와 인간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명의

이러한 자세로 진료에 임하기 때문에 김교수에게 명의란 칭호가 주어졌을 것이다. 로봇이 아닌 인격체로서의 의사가 또 다른 인격체인 환자와 인간적으로 교감 할 수 있어야 명의가 된다는 말이다. 김교수는 대학 강단에서도 명교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 그가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더라도 명교사(名敎師)라는 명성을 누렸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그가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면 훌륭한 스승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의회를 통과한 ‘학생 인권 조례’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의 제3조에는 학생의 인권 보장 원칙을 “이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의 인권은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조례는 학생이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도대체 학교 당국과 교사에 의해서 학생들의 인권이 얼마나 많은 침해를 받았기에 이런 조례가 만들어졌을까? 이런 조례를 만들만큼 학생의 인권이 침해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책임은 순전히 교사의 몫이다. 왜 이 시대의 교사들은 훌륭한 스승이 되지 못하고 학생 인권 조례의 규제를 받아야 할 만큼 타락했는가? 훌륭한 스승의 부재(不在)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교사가 학생을 진심으로 교육한다면

그런데 조례에 제시된 학생 인권 침해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항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가령 교외에서의 이름표 착용, 체벌, 두발의 길이나 복장에 대한 규제, 휴대폰 소지 금지, 소지품 검사 등이 학생 인권 침해의 사례로 열거된 것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초·중등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미성년자이다.

미성년자의 인권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한은 불가피 하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자는 자기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자이기 때문에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다.

교사의 지도가 필요한 이런 일까지 조례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김용식 교수 같으면 학생들에게 필요에 따라 때로 체벌도 하고 두발이나 복장에 관해서도 잔소리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가 환자의 아픔을 공유하듯이 교사가 학생을 진심으로 교육하고자 한다면 체벌이나 두발, 복장 등은 부차적인 문제이지 굳이 조례를 제정해서까지 이를 규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