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특집] 6.3. 신자유주의의는 파산했는가 |
글쓴이 : 김종철 날짜 : 2009-04-03 |
6.3. 신자유주의의는 파산했는가
2009년의 세계는 1929년에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기에 못지않은 현실적·심리적 공포로 시달리고 있다. 2008년 여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파동이 불을 붙인 경제대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로부터 중진국, 개발도상국으로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2007년에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를 넘어 세계 4위였고, 유엔의 한 기구가 주관한 설문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힌 바 있는 아이슬란드, 인구 30만 남짓의 섬나라이지만 ‘유럽의 강소국’으로 불리던 그 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끝없이 따르다가 그것이 신기루임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열심히 따랐는데
우리나라는 아이슬란드보다 나은가?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1997년 가을부터 온 국민을 가슴 졸이게 한 IMF 외환위기 때보다는 절박함이 덜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하는 말일 뿐, 서민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일부 대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그때에 못지않다. 국가의 ‘뒤주’라고도 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던 1997년에 비하면 그래도 지금은 2,000억 달러 남짓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달러 환율은 2009년 3월 5일에 1568원까지 올랐다. 환율 변동에 따라 손실을 안게 되는 기업들과 달러로 자녀를 유학시키고 있는 부모들이 감내할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특히 환율 변동에 대비한 보험 격인 키코(KICO, Knock-in-Knock-out 통화옵션)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하루 하루가 지옥이라고 한다. 한 전자업체의 임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외환시장이 개장하는 아침 9시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불안감 탓에 오후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환율이 하루에 50~100원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회사 돈 6억~7억원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보여요. 안 그래도 요즘 회사가 극심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대로 당하다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경향신문> 2008년 12월 28일자, 특별기획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부 중 “은행 믿고 가입한 ‘키코’가 멀쩡한 회사 죽일 줄이야”에서)
*<경향신문>은 2008년 11월 26일부터 2009년 1월 중순까지 위의 ‘특별기획’을 연재했는데, 어떤 날은 4개 면 전체를 쓸 정도로 과감한 시도였다. ‘공포로 변해버린 금융허브의 꿈’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기사는 아이슬란드를 취재했다. 이 기획은 거기서 시작해서 미국과 한국의 현장을 누비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 경제대란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생생하게 전한다.
‘공황’을 온 몸으로 느끼는 쪽은 서민과 중소기업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실업자들은 벼랑 끝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심정일 것이다. 통계청의 2009년 2월 17일 자료에 따르면 1월의 공식 실업자 수는 84만8,000명이었지만, ‘취업 준비’ ‘쉬었음’ ‘구직 단념자’ ‘주당 18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 취업 희망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백수’로 볼 수 있는 사람은 34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카드 대란’ 때인 2003년 1월의 217만7,000명의 1.6배나 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5학년 생활’을 하는 현상이 한 추세가 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해야 내수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텐데 ‘노는 인력’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좌절감, 박탈감, 경제적 궁핍까지 감안하면 국민의 평균적 삶의 질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뭐길래
이렇게 중대한 국면에서 진보적인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이 빨리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벗어나서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중산층과 빈민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대로 가면 그들은 날이 갈수록 빈곤과 고난의 늪으로 점점 더 빠져들리라고 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세계 경제를 혼란과 공포 속으로 몰고 왔을까?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1970년대 중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해서 나타났다. 그 이전 스태그플레이션이 오기 전에는 대공황 이후부터 케인스주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케인스주의 시스템의 핵심은 자본활동이 방만하게 이루어지면 위기가 닥친다는 것을 교훈으로 해서 자본 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사회복지를 통해 약자를 보호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케인스주의가 황금기를 거치는 동안은 무사했는데 스태그플레이션이 왔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윤율의 하락, 기업의 수익률 악화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진단된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 위의 <경향신문> 특별기획 1부를 정리하는 토론회 ‘발제’에서)
1981년 1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이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를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통해 현실에 반영하기 시작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레이건의 끈끈한 동반자로는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가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를 겪으면서 90년대 초에 감세와 민영화, 그리고 규제완화라는, IMF-미 재무부-월스트리트 3각동맹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정식화되었다. 80년대부터 2007년까지 미국은 평균 2.9%의 경제성장을 거뒀는데(50~60년대에는 평균 4.25%) 성장의 과실은 주로 최상위 계급에 집중되었다. 69년도 말 53%를 넘어섰던 노동분배율은 클린턴 집권 8년 동안 잠깐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곤 줄곧 떨어져서 현재 4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상층의 금융자본은 결국 부동산·주식거품을 최대한 부풀리는 ‘허구의 성장’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 그대로 30년 간 우리를 지배한 시장만능의 논리와 신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허구였다.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자 ‘특별기획’ 중, 정태인 교수의 ‘역사로서의 현재-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에서)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사적 소유권, 자유 시장, 자유무역이라는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기능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 복지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으며, 국가의 역할은 그것을 실행하는 데 적합한 제도적 틀을 만들어내고 보호하는 데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나친 금융자유화, 고삐 풀린 민영화, 대기업과 금융 경영자들의 독선과 특권의식, 투기를 조장하는 금융파생상품 등이 독소로 작용함으로써 신자유주의는 파산했다는 평가까지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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