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특집] 6.2. 한미 FTA를 둘러싼 ‘과속 스캔들’ |
글쓴이 : 김종철 날짜 : 2009-03-27 |
한 해가 저물어 가는 2008년 12월 18일 국회의사당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야당인 민주당과 민노당의 ‘잠정적 연합전선’ 사이에 처참한 전투가 벌어졌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회의실 문을 철통같이 걸어 잠그고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완전히 막은 채 한나라당 의원들만 자리한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한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흥분한 야당 의원들과 보좌관, 당직자들은 쇠망치로 회의장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실패하자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다. 의장의 직권상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말고 보수언론의 대표인 ‘조·중·동’은 당연히 폭력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한다. 야당 의원들이 ‘결사항전’의 각오로 의장석을 지키자 김형오 의장은 결국 “경호권을 발동하면서까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뒤 이 문제는 곧 미디어관련법들을 비롯한 이른바 ‘MB 악법’에 가려져서 잊혀 버린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위해 ‘전쟁’까지? 도대체 왜?
수십 년 동안 언론계에 몸 담아온 내가 보기에도 ‘저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하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는데, 일반 국민들은 어땠을까? ‘도대체 지금 한미 FTA를 우리나라 국회가 비준한다고 해서 취임을 한 달이나 남기고 있는 오바마 당선자가 아, 우리도 서둘러야지 하면서 미국 의회에 대고 한국을 따라 하라고 당부할까? 그게 아니면 레임덕 부시가 민주당이 다수인 의회에 부탁해서 그런 성과를 얻어내리라고 기대한 것인가?’ 그 퀴즈는 재미도 영 없고 답도 없었다.
그 의문은 2009년 2월 초에 얼마쯤 풀렸다. 정부와 여당이 비준 동의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던 방침을 사실상 유보했다는 언론 보도가 2월 4일에 나온 것이다. ‘아니 그 난리를 피운 지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는데 이렇게 연기하려면 왜 그렇게 서둘렀단 말인가?’ 여기서 퀴즈는 다시 시작된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가 “우선 민생경제 법안들에 주력하고, 비준 동의안은 일단 상임위에 상정된 만큼 미국 상황을 지켜보며 보조를 맞춰가야겠다”고 말하고, 한나라당 공보 책임자가 “2월 임시국회에서 유연성을 갖고 접근하겠다는 상징적 표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15개 중점 처리 법안에서 제외했다”고 잘라 말한 것을 보고서야 또 의문이 얼마쯤 풀렸다. 그러나 궁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런 유연성은 어디 두고 지난해 12월 18일에는 왜 그렇게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국회에서 극단으로 나갔을까?’
영화 ‘과속 스캔들’은 재미있고 감동적인데
나는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이 물리적 충돌을 벌이기 며칠 전에 <과속 스캔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2008년에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추격자>를 추격한 끝에 관객 동원 새 기록을 세웠다는 그 영화는 처음부터 보는 이를 황당한 느낌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름이 꽤 알려진 연예인으로서 라디오 인기프로그램의 디스크자키를 맡고 있는 남자 주인공 앞에 어느 날 ‘딸과 외손자’가 나타난다. 지금 서른여섯 살인 그를 향해 스물두 살인 여성이 ‘아버지가 중3 때 연상의 여자와 관계를 맺어 태어난 딸이 나이고, 이 남자아이는 내가 미혼모로 낳은 아버지의 외손자’라고 선언한다. 하루아침에 아버지 겸 외할아버지가 된 주인공은 딸과 손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집에서 몰아내려고 갖은 꾀를 부리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영화는 ‘발칙한’ 소재에 비해 전개과정이 재미있고 대사들에 창의성이 넘치는 데다 결말 부분이 아주 감동적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손수건으로 눈자위를 훔치게 한다.
그런데 2008년 말 한나라당이 ‘제작’한 ‘과속 스캔들’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나 이웃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고 국회 운영의 기본인 민주적 규칙을 존중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니 야당의 ‘대응 폭력’이 조연으로 등장한 그 ‘드라마’를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한미 FTA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2006년 2월 3일 협상을 시작해서 4월 2일 한국과 미국의 협상이 본부장 선에서 타결되어 6월 30일 대통령 서명으로 체결된 것이 바로 그 협정이다. 한미 FTA는 두 나라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법적으로 발효되는데,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08년 2월 25일까지 국회 비준을 받아내지 못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친노’가 되다니
중대한 사건이나 쟁점이 터질 때마다 한나라당과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무차별 공격을 받던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가 기이하게도 그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한미 FTA 협상이었다. 그때 한나라당 의원들 중 농촌지역 출신 말고 대다수는 ‘친노 세력’으로 보일 지경이었고, 조·중·동도 참여정부 기관지 같았다.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농촌 선거구의 표를 의식한 의원들을 빼면 다수가 그 협상을 지지했다. 소수 의원들이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논리로 협상을 반대하기는 했지만.
2007년 12월의 대통령선거와 2008년 4월의 총선은 FTA 앞에 놓인 지뢰밭이었다. 농축산물, 그중에서도 특히 쌀과 쇠고기 수입을 개방하면 우리나라 농축산업이 결정적 타격을 받으리라고 믿는 농민들이 그 협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인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이 자명하므로, 대통령 후보들과 여야당 의원들은 기나긴 눈치싸움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부터 정책 입안에 참여했고, 참여정부 초부터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으로 일하다가 떠난 정태인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 눈치싸움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 의회의 비준 동의 여부입니다. 미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타결되었는데도 미국은 쇠고기, 자동차에서 더 얻어내려고 ‘비준 동의’를 무기 삼아 들이대고 있잖아요. 미국에서 아직 광우병이 발생할 시기는 안 됐지만 2003년 소한테 발생했으니까 2013년쯤 되면 인간한테도 발생할 시기가 되는 거죠. (···) 일단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면 완전히 공포 분위기로 들어갈 텐데, 우린 아직 광우병 소도 발생하지 않은 상태라서, 설마 그거 먹고 어떻게 되랴,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미국산 쇠고기 먹고 있다가 뼛조각 붙은 고기 들어오고 하자 다시 경각심이 강하게 일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소비되지 않고 수출 막히면 미국 의회가 비준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그걸 빌미로 한국 정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겠죠.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2007년 11월, 시대의창, 235~6쪽)
한나라당의 승리가 확정적으로 보이던 2007년 대선 한 달을 앞두고 나온 이 책에서 정태인 교수가 말한 대로 한미 FTA가 ‘미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타결되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에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뼛조각 붙은 미국산 쇠고기 ’ 수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이명박 정부가 나라 안팎에서 해결해야 하는 온갖 문제들 중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물꼬 삼아 한미 FTA가 두 나라 의회에서 비준되도록 하는 작업에 최우선순위를 두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결정적 요인은 4·14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국회 의석 299개 중 170석 이상을 단독으로 확보하고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 같은 잠재적 우군까지 갖게 된 데다, 원내 제1당이던 민주당이 80석 남짓한 의석으로 오그라들었으니 그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는 듯이 보였을 수도 있겠다.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이 발표된 4월 18일은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정상회담 바로 전날이었다. 따라서 그것이 부시에 대한 선물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촛불은 가라앉았지만
그러나 허약한 민주당과는 달리 국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은 만만치 않았다. 4월 18일에 협상이 타결되자 ‘광우병을 일으킬 수도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가’라는 항의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5월 2일에 여자 중고등학생들의 촛불시위가 벌어진다. 8월 초순까지 서울과 전국의 대도시들에서 석 달 남짓 이어진 촛불 집회와 시위는 이명박 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으나 공권력이 강력히 대응하고 ‘촛불 진영’의 동력이 쇠약해지면서 잦아든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에 대해서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이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 자신은 잠정적으로 이런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권지희 외 19인이 쓴 <촛불이 민주주의다>(2008년 8월, 해피스토리)에 대한 서평의 한 대목이다.
2008년의 촛불은 바른 권력을 세우는 혁명적 성과를 빚지는 못했다 하더 라도 우리사회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살리고 경제적 평등을 향해 나가며, 문화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업언론인들과 민주화세력이 수십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 곧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반민주성과 그들이 수구특권세력의 전위부대라는 사실을 어린 학생들부터 유모차 엄마들까지가 철저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촛불의 정치혁명이자 문화혁명이다. (<계간 광장> 창간호, 2008년 10월, 재단법인 광장)
그러나 촛불은 가라앉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진다. 2008년 11월의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해 4월 19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바 있는 이명박-부시의 단단한 유대와 ‘우정’이 한미 FTA 의회 비준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해진 것이다. 11월 4일의 미국 대선 뒤에 나온 ‘오바마-바이든 플랜’은 한국과의 중대 현안인 FTA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보였다. 오바마 당선자 진영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공정무역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우리의 경제적 안보를 침해하는 협정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명시한 부분은 이명박 정부가 비준을 서두르는 것이 일방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메시지였다. 그런데도 2008년 12월 18일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비준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과속 질주가 시작되었다.
오바마, 자유무역보다 공정무역을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닷새 전인 1월 15일에는 국무장관 내정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한미 FTA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한국 정부측은 오히려 2월에 국회 비준을 강행하겠다고 응수했다. 민주당이 보호무역을 전통적 강령으로 삼아온데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라는 3대 자동차회사가 파산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서 부닥치는 관세장벽을 허물어야 하는 판에 오바마 대통령이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을 원안대로 비준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2009년 3월 들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회에서 한미 FTA를 비준하는 문제를 두고 다시 논의를 하고 있는데, 3월 2일 오바마 행정부가 재협상 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과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문제들에 신속하고 책임있게 대처하고, 공적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협정의 시행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미국과 무역상대국의 이익을 적절하게 진전시키는지 여부에 대해” 여론 수렴작업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이 이렇다면, 한국 국회가 협정을 서둘러 비준하더라도 난감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관련 기관에 재협상 지시를 하면 한국 정부가 ‘우리는 이미 국회 비준을 마쳤으니 응할 수 없다’면서 재협상을 거부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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