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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제5장 팍스 아메리카나인가 ‘겸손한 미국’인가

 

 

[오바마시대와 한국14]


제5장 팍스 아메리카나인가 ‘겸손한 미국’인가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기뻐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으뜸가는 이유로 조지 부시 2세 행정부에서 절정에 이른 패권주의와 일방주의가 사라지거나 크게 약화되리라고 기대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세계 평화를 파괴하면서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제 나라를 ‘절대적 선’으로 단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어떤 나라들을 ‘악’으로 규정해서 무력으로 공격하거나 경제적으로 억압하는 미국의 행태를 보고 양심적인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엇이기에

팍스 아메리카나는 라틴어로 ‘미국의 평화’라는 뜻이다. 풀어서 말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평화를 의미한다. 이 말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서 따온 것이다. 기원전 1세기 말에 제정(帝政)을 세운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이른바 ‘5현제’ 시대까지 약 200여 년 동안 로마가 그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일도 최소한으로 줄었던 시기를 가리킨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1945년에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지배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가운데 서방세계에 상대적인 평화가 찾아온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에 미국과 동맹국들은 국지전쟁(한국, 베트남, 페르시아만,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개입했지만 주요 서방 국가들 자체에서는 무력 충돌이 없었고 핵무기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라면 팍스 아메리카나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평화’를 규정한 일방적인 용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기라고 말하는 1945년부터 21세기 초의 10년 가까운 때까지 65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의 전쟁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최근에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참혹한 살육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 모든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언제나 미국이 맡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도 권력의 정치· 경제· 군사적 목적에 떠밀려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는 ‘지배자들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레이건의 팍스 아메리카나, ‘힘을 통한 평화’ ‘미국만을 위한 평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번지던 무렵인 1960년대 초에 특이하게도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그런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에트 진영도 미국인들과 똑같은 개인적 목표를 가진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서, ‘미국의 전쟁 무기들’에 바탕을 둔 평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1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크게 외치기 시작한 이래 30년 가까이 이 말은 ‘세계의 경찰 또는 헌병’을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글의 앞부분에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레이건은 국제사회의 무법자이자 폭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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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종철
· 전 동아일보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