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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그러나 희망으로 새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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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망으로 새봄을


                                                                             김 정 남(언론인)

40년 전쯤, 내가 막 살림을 시작했을 때는 겨우내 식구들이 먹고 살 쌀 두세 가마, 방에 지필 십구공탄 1천여 장, 그리고 겨우내내 반찬으로 먹을 김장을 한 1백 포기쯤 담가 땅에 묻어 놓으면 ‘겨울준비 끝’. 그러면 그 해 겨울은 따뜻했었다. 무서운 보리고개가 두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봄은 언제나 희망의 계절로 겨우내내 기다려졌다.

날씨만 가지고 따진다면야 지난 겨울 역시 따뜻했다. 한두 번의 한파와 설날 무렵의 폭설을 제외하고는 유별나게 춥게 기억되는 겨울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겨울이 오기 전부터 이미 춥기 시작했고, 우리들 마음 속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추웠다. 최근 두 달 새 폐업한 자영업자가 42만 명에 달하고, 실질적인 실업자 수도 이미 4백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자연의 겨울은 이제 끝나가고 있는데, 마음이 추운 겨울은 이제 겨우 그 초입에 있다는 전문(傳聞)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봄은 찾아 왔건만

아는 사람이 지리산 고로쇠물을 보내왔다. 고로쇠물을 뽑기 위해 나무에 구멍을 내는 일이 내게는 영 마땅치 않다. 제 몸에 흐르고 넘쳐서 굳이 상처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물이라면 모르겠거니와 나무에 깊은 상처까지 내면서 그것을 꼭 먹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보내준 정성을 저버릴 수 없어 보내온 것은 애써 다 비웠다.

언제부터인가 봄소식은 꽃보다 고로쇠물이 빨리 전하는 것 같다. 우수(雨水) 무렵이면 나기 시작해서 남쪽에서 화신을 전할 때쯤이면 고로쇠는 이미 끝물이다. 물도 유행을 타는지 이제는 고로쇠물이 광양의 백운산이나 남원·구례의 지리산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 휴전선 가까운 북쪽에서도 난다. 어제는 춘천서 화천가는 길목에서 고로쇠물 파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봄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동네 뒷산 작은 계곡 얼음 밑에서도 돌돌돌 물 구르는 소리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강원도 어디에선 겨울가뭄으로 식수난이 극심하다지만, 머지않아 세상의 모든 못에는 봄물이 가득할 것이다. 교외로 나가보면 농부들은 벌써 들에 나와 겨우내 얼어있던 농토를 가다듬고 과수 밑에 거름을 듬뿍 뿌려주고 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그 냄새가 싫어 얼굴을 돌리지만 그러나 나는 똥냄새, 거름냄새가 결코 싫지가 않다. 농촌태생이라 그런지 그런 똥냄새에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을 느낀다.

주말에는 나도 내 조그만 농장에 톱과 낫을 들고 나가 주변을 정리했다. 작년에 심었던 고춧대를 뽑고, 밭에 그늘을 지게 하는 산자락 나뭇가지를 잘랐다. 나무엔 물이 올라 톱질이 쉽지 않았고 나무껍질엔 파란 기운이 퍼져있었다. 자연의 변화와 절기에 민감하기로는 나무만한 것이 있을까. 나무는 하지(夏至)에 이미 가을에 잎 질 준비를 하고, 가을에는 벌써 내년 봄에 싹틀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무성할 때 떨어질 것을 준비하고, 죽어 있을 때 다시 태어날 것을 예비한다.

물이 흐르는 것,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만물이 생장수장(生長收藏)을 거듭하는 걸 보면서, 항상 있으면서도 없고, 항상 없으면서도 있는, 그리고 항상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항상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오묘한 불가의 이치를 알 듯 모를 듯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 봄은 왔지만, 특히 올해 봄은 봄이 봄 같지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왕소군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온 세계가 그렇다. 경제위기와 불황이 온 세계를 덮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봄이 봄 같지 않게 느끼게 하는 것이 어디 그런 세계적인 경제불황 탓뿐이랴. 용산참사와 그 뒤끝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것이 우리를 또한 불안하게 하고 있다. 남북관계 또한 어디서 어디로 튈지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있다. 우리를 안심시켜줘야 할 정부는 불안을 보태고, 여의도 정치권은 희망은커녕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판소리 사철가의 한 구절처럼 “봄은 찾아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스스로 봄길이 되어”

봄이 한창일 때, 북한산 대남문 북쪽계곡, 대성암 주변의 우거진 숲은 아름답다. 문수봉의 북쪽사면에서 내려다보거나, 동장대에서 건너다 볼 때 ‘울긋불긋 꽃대궐’로 어울려 있는 그 모습이 그렇다. 너와 내가 다르되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하나되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모습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보다는 부동이화(不同而和)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화이부동은 화합하되 내가 너와 다르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고 있는데 반하여, 부동이화는 다르지만 화합하고자 뜻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봄에 우리 모두 부동이화하여 이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봄에 절망만 하지 말고 시 한 편 읽으며 이 봄을 맞았으면 좋겠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봄길」 전문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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