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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오바마시대와 한국

 

 

오바마시대와 한국


2. 마틴 루터 킹과 버락 오바마

마틴 루터 킹 2세는 1929년 1월 1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마가렛 미첼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수십 년이 넘도록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요 무대가 바로 그 도시로서, 인종 차별이 아주 심한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 마틴 루터 킹 1세는 침례교 목사였다. 열다섯 살 때 모어하우스칼리지에 입학해서 사회학 학사학위를 받은 킹 2세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신학교를 마치고 1955년 보스턴대학교에서 조직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킹, 흑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엘리트 코스’를

킹은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어서 여기에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다수 미국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그 이력을 다시 짚어보는 것이 좋겠다. 특히 버락 오바마와 연관해서 킹을 논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킹은 오바마처럼 화려한 학력은 아니지만 1940년대부터 50년대 중반까지 공부를 한 흑인으로서는 특출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1983년 11월 2일부터 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킹을 기념하는 공휴일을 제정한다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1986년 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마틴 루터 킹 2세의 날’은 해마다 킹의 생일에 가까운 1월 셋째 월요일에 지켜진다.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적 공휴일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킹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명 ‘조지 워싱턴의 날’이 있지만, 공식 이름은 ‘대통령들의 날’이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날’은 이탈리아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의 주요 공휴일인 현충일, 독립기념일, 노동절, 재향군인의 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 어디에도 개인의 이름은 없다. 이렇게 보면 미국에서 킹은 ‘영원하고 위대하다.’

그런데 현대 미국 흑인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2세에 관한 자료들, 특히 인터넷에 최근 올려져서 반론을 받지 않는 정보들을 보면, 말콤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킹은 정반대이다. 그러나 그가 생시와 사후에 받은 상들과 훈장과 명예는 말콤에 비하면 하늘처럼 높고 크다. 킹에 대한 미국과 세계의 존경과 추앙은 그 목록을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것들만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미국과 국외 대학들에서 최소한 50개의 명예박사학위
2) 1964년 노벨평화상
3) 1965년 미국유태인위원회의 ‘아메리카 자유메달’
4) 1963년 교황 요한 23세가 수여한 ‘파쳄 인 테리스’ 상
5) 킹의 사후인 1971년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연설 앨범’ 부문 상

마틴 루터 킹에 쏟아지는 엄청난 추앙

이밖에도 킹은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2004년에 킹과 그의 부인은 미국의회 금장(Gold Medal)을 탔다. 킹은 ‘20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갤럽 선정)에서는 2위였고, 시사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20세기의 인물’ 중 6위였다. 케이블텔레비전인 <디스커버리>와 인터넷 전문의 AOL이 ‘가장 위대한 미국인’을 뽑은 콘테스트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730개 도시가 킹의 이름을 딴 거리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이런 킹을 왜 ‘오바마시대’에 다시 조명해야 하는지를 지금부터 여러 사실들을 바탕으로 알아보자. 내가 이번에 킹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놀란 까닭은 부정적인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


글쓴이 / 김종철
· 전 동아일보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