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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책 읽기

[책과 삶]사색을 낚는 인생의 전망대

[책과 삶]사색을 낚는 인생의 전망대
                                                      경향신문 2008년 08월 15일 17:14:40
▲낚시, 여백에 비친 세상…김판수 | 이카루스미디어

현장에서 쓴 글은 아주 독특한 맛이 있다.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열어젖힌 것이 드러난다. 온 몸으로 느낀 저자의 감성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책상 머리에서 마른 수건 짜듯 짜낸 생각들이 아니어서 더욱 좋다. 쌓이고 쌓여 저절로 흘러넘친 사색의 열매들은 읽는 이의 오감까지도 넓고 깊게 자극한다.
경북 경산 연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낚시꾼.

‘낚시, 여백에 비친 세상’은 그런 책이다. 한 낚시꾼이 30여년 동안 낚시를 하며 쌓아온 사색의 정수들을 모았다. 자신의 삶과 사회, 세상, 그리고 낚시문화에 대한 명상록이다. 조금 거칠고, 세련되지 않아 오히려 펄떡이는 붕어처럼 싱싱하다. 이 낚시꾼은 전국 곳곳의 연못가, 청양의 한 둠벙, 동진강 들판, 섬진강 강가에서 틈틈히 메모지에 글을 썼다. 어두운 밤에 한 점의 찌, 별빛과 달빛이 그와 함께했다. “붕어낚시가 최고”라는 저자는 특히 밤 낚시가 깊은 사색과 넓은 상상을 하기에 매우 좋다고 말한다.

그에게 낚싯대를 놓은 물가는 그저 낚시터가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들을 생각하는 드넓은 사색의 공간이다.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찬찬히 바라보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그에게 낚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우월성이 붕어 한 마리로 한 순간에 꺾이는 일이다. 수천년 동안 인간은 과학기술 발전을 이룩해왔으나 붕어를 낚는 그 기본원리만은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붕어에게 아양까지 떤다.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인정하는 일이 바로 낚시다. 그래서 낚시꾼은 자연과 맞서는 오만한 현대인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자리, 산짐승의 우짖음을 시곗바늘로 삼을 줄 아는 자연친화적·원시적 사람이 된다.

책은 깜깜한 밤, 찌의 빛을 보며 돌아보는 일상, 올라오는 물고기 한 마리를 통해 얻는 생명력 확인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팍팍한 도시 속의 삶과 꽉 짜인 직장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챙기는 마음의 여유를 강조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감성 회복을 전한다.

저자에게는 낚싯줄과 대, 찌, 봉돌, 바늘은 물론 물, 산, 들판, 물풀, 잠자리애벌레,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가 사람과 세상을 조망하는 단서들이다. 낚싯줄 속에서 부드러움과 끈질김을, 봉돌을 만지며 균형의 의미와 자유로운 방황을, 바늘을 매달며 죽음과 삶을 들여다본다. 들짐승에서 살아있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고, 찌의 오름과 내림, 끝없는 기다림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까지 끄집어낸다. 붕어와 피라미·가물치·쏘가리·잉어는 우리가 외면하거나 잊어버린 것들을 떠오르게 하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세상을 향한 절절한 호소도 담겼다. 이제 이 땅에는 제대로 밤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사실 등을 전하며 막무가내로 파헤치는 개발지상주의를 질타한다. 생태계의 한 고리이면서 스스로 그 고리를 끊는 인간의 어리석음, 탐욕도 꼬집는다. 진정한 낚시꾼의 자세와 바람직한 낚시문화도 거듭 강조한다.

책은 또 낚시도구와 낚시문화 등의 역사적 변천 과정, 갖가지 일화, 외래물고기로 인해 변화되는 우리의 생태계 등도 담았다. 40대 중반의 저자는 기자로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제는 아예 물가에서 주로 살아간다. 9800원

<도재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