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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신지애 "일본선수엔 질수없다는 오기가 통했죠"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컵 안고 돌아온 신지애
내년엔 미국무대서 승전보 띄울게요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 신지애 선수가 미소천사답게 환하게 웃으며 5일 귀국하고 있다.
"일본 선수들에게만큼은 지기 싫었어요."

골프지존이 귀환했다. 5일 아시아나항공편을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브리티시여자오픈 퀸' 신지애(20ㆍ하이마트)는 결승전에서 끝까지 승리를 다툰 일본 선수들 얘기부터 꺼냈다.

올해 초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인 PRGR레이더스컵에서 우승하며 일본 그린을 정복하긴 했지만 그에겐 뼈아픈 기억이 있다.

다름 아닌 작년 말 한ㆍ일 골프대항전이다. 당시 신지애는 "제대로 실력을 보여 일본 사기를 꺾어놓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결과는 정반대. 이틀간 맞대결에서 승점을 한 점도 올리지 못했고 한국팀은 연장 세 번째 선수까지 가는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일본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후도 유리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내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신지애는 아픔이 있어도 늘 미소 속에 숨긴다. 경기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니 동반자들이 무너진다. "심장이 없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정작 본인은 어떨까.

"안 떨릴 리 있나요. 저도 사람인데. 브리티시여자오픈 마지막 날을 앞두고는 밤새 한잠도 못 잤는데요. 샷 하나, 퍼팅 하나에도 늘 긴장을 한답니다."

신지애가 남들과 다른 것은 여유. 경기를 하면서도 그린 주변 환경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아무리 많은 갤러리가 있어도 그 속에서 아버지 신재섭 씨를 찾아낸다고 한다.

남들보다 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연습"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실 신지애는 대표적인 연습벌레다. 하체 단련을 위해 아파트 계단을 숱하게 오르내린 것은 기본. 90분 동안 드라이브를 500번이나 휘두른 적도 있고 퍼트 연습을 7시간 연이어 하면서 혹독하게 실력을 키운 억척이다.

심지어 박세리 트레이드 마크인 '무덤 담력 키우기'조차 따라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에게 평소 우상인 세리 언니가 공동묘지 앞에서 스윙 연습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남 영광 뒷산 공동묘지를 두 번이나 찾았죠. 나중에 세리 언니가 그게 와전된 얘기라고 해서 얼마나 황당했는데요." 경기 때 두둑한 배짱과 공포를 이겨내는 담력은 다른 차원이라고 신지애는 설명했다.

이렇게 밝은 신지애에게도 깊은 슬픔이 있다. 2003년 11월 어머니 나송식 씨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 함께 타고 있던 여동생과 남동생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지만 소녀가장으로 엄마 노릇까지 하며 병실 간이침대에서 동생들을 1년간이나 돌봐야 했다. 병원을 나와서는 치료비를 대기 위해 15만원짜리 월세 단칸방으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신지애는 더 강해진다. 밑바닥까지 가니 오기라는 게 솟아나더라는 것.

"그때 이상한 힘이 생겼어요. 이보다 더한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죠."

작년 시즌 9승 위업, 최단기간 통산 상금 10억원 돌파, 최연소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골프 하나로 세계 정상에 오른 신지애지만 그래서 어려운 시절을 잊지 못한다.

상금을 타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돌려줬다. 수많은 애칭 중에서 '꼬마 천사'라는 애칭을 그래서 가장 아낀다.

"행복은 전염성이 강해요. 저도 어려울 때 주변 도움으로 이겨냈거든요. 내가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거라고 믿어요."

내년엔 미국 LPGA무대에 전념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낸 신지애. 물오른 샷감만큼 마음까지 훌쩍 자란 것 같다.

[인천공항 = 신익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2008.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