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뒤뜰에서 야구경기를 즐겼다.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었기 때문에 늘 투수를 맡았다. 우리 형제는 돌아가면서 타격했고 아버지는 뜨거운 햇별 아래 서서 계속 공을 던져주셨다.
아버지는 마치 양키스 팀의 감독처럼 권위를 세웠고 규칙도 만들었다. 우선 우리는 외야에서 계속 기합소리로 힘을 불어넣어야 했고 어떤 경우에도 공보다 빨리 달려가야 했다. 아버지를 상대로 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멈춰 있는 공을 때리게 해서 아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나를 스트라이크 아웃을 시킬 때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공이 너무 빠르다고 불평하면 "게임을 하겠다는 거냐, 그만두겠다는 거냐?" 하고 나무랐다.
나는 아버지의 공을 치고 싶어 기를 쓰고 연습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공을 쳐냈다. 그것은 안타였고 그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1루로 뛰어갔다. 나는 투수 마운드에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글러브를 벗어 겨드랑이에 끼고 내게 박수를 보냈다. 내 귀에는 그것이 양키스타디움의 환호성으로 들렸다.....
- 스티븐 코비의 '오늘 내인생 최고의 날' 中에서 -
그것은 한풀이였습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놓쳤던 금메달에 대한 한을 풀고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중동 텃세에 밀려 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한을 풀기위한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세계 최강 덴마크에 맞서 19번의 동점, 2번의 연장전, 그리고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128분의 접전을 벌이며 각본없는 드라마를 연출했던 핸드볼.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은 여전히 텅 비어있고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실업팀도 남자 5개팀, 여자 6개팀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쳐야했던 감독은 선수들이 마음놓고 뛸 수 있는 팀이 없는 현실에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그 자체를 기적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현실에 굴하지 않았으며 포기하지도 않고 다시 코트에 섰습니다. 편파 판정에 밀려 놓쳐야 했던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고 불굴의 투지로 결국에는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내고야 말았습니다. 만여명에 달하는 일방적인 일본 관중의 응원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조국에 승전보를 들려주기 위해 뼈가 부서져라 뛰었던 것이지요. 다시 한번 생애 최고의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자 대표팀이 다시 생애 최고의 순간을 위해 뛸 것입니다. 그들을 외롭게 만들지 맙시다. 환호를 보내고 갈채를 보내도록 합시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다시한번 가슴벅찬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은 바로 우리에게도 생애 최고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다음 순간에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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