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세계 뉴스의 중심에 계속 서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한 여자(압둘라 귈 현 대통령 부인)가 머리에 쓴 스카프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 전쟁을 치렀지요. 이제는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을 쳐들어 자국내 테러세력을 소탕하겠다고 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기름값이 이때문에 배럴당 90달러까지 육박하고 있죠. CNN을 보니, 투자은행 크레디 스위스의 한 전문가가 출연, “단기적으로 90~95달러할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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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전사들의 산중 훈련. 뒤에 보이는 산을 보면 험준한 걸 알 수 있다.)
터키 의회는 이라크 침공 승인을 요청해온 정부의 안에 17일 동의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운이 짙어졌습니다. 자국 군대가 와해돼 방어 능력이 없는 이라크는 부통령을 급파, 터키에 싹싹 빌고 있습니다. 나라가 외국군에 의해 점령당하더니 이라크의 추락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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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의 여자 전사들)
터키가 이라크내 쿠르드 지역에 쳐들어가겠다고 하는 건 PKK(쿠르디스탄 노동자당) 전사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입니다. PKK는 1970년대 터키 쿠르드족 압둘라 오잘란이 만든 쿠르드족 분리주의단체입니다. 터키 동부에는 쿠르드족 10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데요, 사람 대접을 잘 못받고 있습니다. 고유 언어 사용도 금지되어 있고, 스스로를 ‘쿠르드’라고 오랫동안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사는 꼴도 형편없습니다. 지역 개발에서 소외되어 있고, 문맹율이 턱없이 높습니다. 이라크 국경에서 좀 떨어져 있는 디야르바키르라는 지역이 터키내 쿠르드인들의 중심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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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잘란)
PKK는 이들 터키내 쿠르드족의 억눌린 삶의 산물로, 이들은 터키 군부와 오래 동안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오잘란은 터키 앙카라대학 정치학과 출신이죠. 11948년생으로, 지금은 터키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PKK의 1984년 무장 투쟁 이후 무려 3 만 명이 숨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터키 동부에서의 쿠르드 대 터키 정부와의 충돌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양민들의 피해가 끔찍할 정도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을 보면, 군부의 고문, 불법감금 등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눈’에 쿠르드족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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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 당기. 이라크와 터키의 국경지대에 가면 휘날리는 걸 볼 수 있다.)
터키 군은 끈질긴 작전에도 불구, 자국 내부의 PKK전사들을 소탕하지 못했습니다. 동부 아나톨리아는 산이 험합니다. 이라크와 이란 접경 지대는 높은 산이 즐비하지요.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5000미터가 넘는 아라랏(Ararat)산이 이곳에 있습니다. 아라랏 산은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지면서 처음으로 닻을 내린 땅으로 알려져 있지요. PKK전사들은 이들 산악 지대를 타고, 터키 군부대의 추격을 피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해 왔습니다. 투쟁의 주 무대는 터키 내부입니다만, 은신처는 이라크내부의 터키 국경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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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PKK땅. 쿠르드 국기가 휘날리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검문소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PKK의 미니 국가가 자리잡은 땅이다.)
터키가 국내의 쿠르드족을 철저하게 억누른 이유는 국가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오스만 터키가 붕괴된 뒤 1923년 그 잔해를 모아 아나톨리아에 나라를 세웠는데, 동부 아나톨리아에는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쿠르드인이 1000만명이 넘으니, 그들의 존재가 신생 국가 터키의 국가 통합에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터키의 견인차인 군인들은 이들을 철저히 누르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아르메니아 계 주민은 국가 수립 전 1915~1917년 당시 수 십 만 명이 학살당하면서 터키내부에서 존재 자체가 약화됐습니다. 터키는 이후 아르메니아 학살을 역사책에서 가르치지 않는 등 과거사를 부정했고, 터키내 아르메니아인 상당수는 최근까지도 그런 역사적 사실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지내왔답니다.
앙카라 당국은 쿠르드인에 대해서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철저한 동화정책을 추구했습니다. 말도 쓰지 못하게 했다니 알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쿠르드’란 말은 꺼낼 수도 없었고, ‘동부 터키인’이라는 신조어로 만들어 쿠르드인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수백, 수천도 아니고 1000만명이 쉽게 ‘동화’되나요?
터키 사회가 '개국'초기의 긴장장에서 점차 풀려나면서 쿠르드의 문제는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터키의 일부 정부가 정치 다원화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현재의 갈등도 터키 사회의 ‘성장통’이라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터키내에서 쿠르드 문제 해법을 찾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갈 길이 많습니다. 대화도 시작하지 않았으니까요.
터키 사회의 쿠르드에 대한 매우 민감한 기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당한 고초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는 2005년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르메니아인 100만명 학살과, 쿠르드인 3만명 이상이 죽은 걸 언급하는 건 터키에서 금기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로인해 그는 기소돼 크게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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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터키 군이 그러면, 이라크에 쳐들어가면 PKK를 발본색원할 수 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다수론입니다. 심지어는 터키 언론에도 부정적인 견해가 나왔습니다. 터키군이 진격해 들어가면 국경 주변에 있는 PKK는 이라크 내부로 후퇴해 깊숙이 숨을 것입니다. 터키군은 그렇다고 그들을 잡기위해 무한정 이라크 내부로 깊숙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터키군 입장에서는 군사적인 실익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실익도 없습니다.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가장 큰 덕을 본 나라입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물자 상당량이 터키를 통해 들어가고, 전후 복구 사업에도 터키 기업인들이 가장 돈을 챙기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이 모두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터키는 왜 이라크 침공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을까? 글쎄요, 터키 군부를 정치권이 토닥이기 위한 ‘국내용’이라는 관측이 가능합니다. 현재의 터키 정부는 이슬람주의자 정권으로, 세속주의를 신봉하는 군부와는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터키 군부는 세속주의의 보루로, 현재의 귈 대통령 부인이 스카프를 쓰고 있는걸 터키 세속주의 훼손의 상징으로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군부는 PKK의 테러 공격에 대한 응징을 정치권에 요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에르도안 총리 정부가 군부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터키 정부는 의회로부터 이라크 침공에 대한 도장까지 받았습니다만, 당장에 전면적인 공격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전쟁’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클라우제비츠라는 사람이 말한 바 있지요? 터키의 움직임을 보면서 옛날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정치’를 잘하면 ‘전쟁’을 공연히 벌이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요. 기회가 되면 아나톨리아 동부에 가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최준석 조선일보 카이로특파원 jschoi@chosun.com 2007년 10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