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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잡학사전

[한국시론] 청와대 참모에게 보내는 고언

                                         한국일보 2007. 9. 22

‘청와대의 3고(苦)ㆍ3락(樂)’이라는 말이 있다.

임기말 청와대 참모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털이 빠지고 소화가 안되고 아랫배가 나오는 것이 세가지 괴로움이요, 자조적인 의미에서 청와대는 공기 맑고 물 깨끗하고 밥값 싸서 좋다는 것이 세가지 즐거움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는 곳이 청와대이다.

 

■ 권력하락은 자연스런 정치현상

 

요즘처럼 게이트와 스캔들, 의혹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겪고 있을 심리상태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김영삼ㆍ김대중 정부의 권력 이동기를 근거리에서 관찰했던 경험자로서 그들에게 비판 하나를 더 날리기보다, 도움이 될만한 고언을 하고자 한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악령처럼 찾아 드는 세가지 심리현상이 있다.

 

첫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임기 5개월쯤 남으면, 구직(求職)과 대선 캠프행, 총선 출마 여부를 놓고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하게 된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스트레스는 쌓이고,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면, ‘될대로 되라’는 회피현상과 ‘어디 한번 해보자’는 공격성으로 표출된다.

 

둘째 맹목적 낙관주의이다.

묘하게도 청와대만 들어가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김영삼 정부의 린다 김 사건과 김대중 정부의 옷 로비 사건에 이어, 현 정부의 신정아 사건도 초반에 “깜도 안되는 얘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셋째 권력의 도취현상이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권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최음제”라고 설파했듯이, 4~5년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권력이 무한할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언론사 취재제한조치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임기말의 초조함 속에서도 권력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한다.

임기 하루 전까지 칼을 휘두를 것 같지만, 이삿짐 보따리를 싸고 방구석에 앉아 TV를 통해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면, 그때서야 권력의 무상함과 함께 허탈의 늪으로 빠져든다.

 

이제 그들에게 고언을 하고자 한다.

 

고언 1, 권력의 법칙을 인정하라.

 

다시 말해 레임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화려했던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종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우리 역대 대통령도 예외 없이 정권 말미에는 가을 낙엽처럼 권력의 쓴맛을 보았다. 청와대 참모들은 권력의 하락은 수치도 치욕도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치현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고언 2, 허허실실전법을 구사하라.

 

겉으로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되 속으로는 남북관계, 경제발전과 같은 실리를 챙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태도는 국민들의 감정만 자극할 뿐이다.

국민들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쁜 대통령’보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운 대통령’에 게 더욱 가혹하다는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제안컨대, 대선 2개월여 앞두고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철저하게 비정치적으로 접근하여 국가적 실익을 챙긴다면 국민들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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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말 중심 잡을 이는 비서실장

 

고언 3,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심리를 챙겨라.

 

지금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이 믿고 의지할 참모 1호는 같은 고향에 동업자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비서실장인 것 같다.

이는 문 실장이 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참모라는 뜻이기도 하다.

문 실장은 고독과 싸우고 있는 노 대통령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해내도록 설득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임기말에 청와대의 중심을 잡아줄 사람도 비서실장이다.

 

<권력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도 강조했듯이, 권력이란 태양처럼 빛나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산 너머로 지는 자연의 이치와도 같다.

요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이 추석 연휴기간이나마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