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8 (p 56 ~ 57)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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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 LIFE] |
휴식과 수면 박탈 지식노동자 삶 위협 … 무모한 노동 강요하다 기업도 같이 추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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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시절 때 일이다. 내가 속한 대학연구소와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세계적인 학자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공동으로 콜로키엄을 열었다. 초청학자 안내 실무를 맡았던 나는 세계적인 학자들 가운데 유대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유대인에 대해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를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살았음에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계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 탈무드에서도 역설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면 지나치게 게으른 대답이다. 그것은 유대인 특유의 교육방식 때문이다. 세대를 이어 전수되는 교육방식과 문화적 전통이 유대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교육방식이기에 유대인을 그토록 ‘다른 사람’들로 만드는 것일까. 유대인의 노동관은 근면과 성실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휴식에 관한 명확한 철학이 유대인 노동관(觀)의 핵심이다. 유대인의 노동은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주일을 일했으면 안식일에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환자도 고쳐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고 안식일에 환자를 고친 예수는 유대인에게 배척당했다. 6년을 일했으면 7년째는 안식년으로 쉬어야 한다. 경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경작하지 않은 땅에서 자연스럽게 난 과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안식년만 있었던 게 아니다. 7년씩 7번을 지나고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year of jubilee)’이라 했다. 희년에는 인간의 모든 관습도 쉬어야 했다. 죄인들은 풀어줘야 했고, 모든 계약관계는 무효가 되어 새로 시작돼야 했다. 유대인의 노동관이 이처럼 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다른 민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 민족이 될 수 있었다. 하루의 휴식에 관해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이다.” 잔업이 일상화된 일본에서 야근은 근면 성실한 직원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하네다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을 타고 가다 보면 한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은 고층빌딩 사무실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일본의 ‘잔업문화’가 오히려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내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에는 산업사회의 노동방식으로는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내용의 특집기사가 7월 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서구기업에서 강조하는 ‘일과 삶의 조화(work-life balance)’ 정책에 앞서 일본에서는 ‘일과 생명의 조화’ 정책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시니컬한 비평도 나왔다. 휴식을 통한 창의적 노동에 앞서 잔업을 없애 생명부터 부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의 노동문화를 흉내낼 수밖에 없었던 한국에서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과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은 압축성장의 상징이었다. 그 압축성장의 핵심 인재들이 이제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이들의 눈에는 밥 먹듯 야근하는 직원들이 여전히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일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돼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능력 있고 창의적인 직원들은 무모한 노동만 강요하는 직장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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