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서울대입시정책 비판 |
“기업은 일반적으로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점이 좋은 사람을 우대한다. 그런데 머리가 좋아 강의에 나오지 않고서도 시험을 잘 치는 학생에게 A학점을 주면 기업은 학점을 중시하는 채용방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시경제학의 대가로 꼽히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내신을 무력화하려는 대학에 정보경제이론의 시각에서 일침을 가했다. 수업시간에 졸기를 밥 먹듯 하는 학생을 우대하는 교육? 이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 (www.jkl123.com)에 올린 글 ‘내신·수능과 관련된 오해 그리고 진실’에서 대학의 내신 무력화와 관련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은 대학 교수 자신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교육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단 하나라도 찾아낼 수 없을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보경제이론의 시각에서 최근의 논란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정보경제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교육의 주요한 기능은 개인의 능력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인데,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고 단지 점수따기에만 능숙한 학생을 우대할 경우 잘못된 신호를 전달한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대학간의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대학이 내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수능과 관계없는 과목은 과감하게 제껴 버리고 수업 중에 졸기를 밥 먹듯 하면서 높은 수능점수를 받는 학생을 스타로 대접할 것”이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그는 “꾀부리지 않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이라도 열심히 듣는 사람이 높은 내신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사회가 원하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선발해 교육하고 각자의 자질을 평가해 그 정보를 사회에 전달하는 것이 대학의 주요한 사명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결코 내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 욕심 채우자고 몽니 부리는 쩨쩨한 태도" 이 교수는 “정보경제이론의 시각이 대학입시 정책에도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학이 신입생 선발기준으로 자나 깨나 학력(본고사·수능)만을 부르짖는 것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가족배경, 사회적 맥락, 사교육 등에 따라 생기는 고교간 학력격차로 일부 지역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며, 이미 내신불이익이 있음을 알고 선택한 경우이기 때문에 오히려 특목고에 특혜를 주는 것이 불공정한 일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특목고 우대는 사회질서의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며, 누구나 떼를 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겨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 이 교수는 혼란의 근본적 원인이 현실을 무시한 정부의 과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대학들이 현행 제도하에서 그 욕심을 맘껏 채울 수 없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은 쩨쩨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울대의 입시정책도 “과거에도 내신 상위 10%에 만점을 부여했기 때문에 1,2 등급 모두에게 만점을 주어도 문제가 없다는 변명은 옹색하기 짝이 없이 들린다”고 비판했다. 잠재능력 발굴해 꽃피우는 것이 진정한 교육 이 교수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어 영어, 수학을 잘 못하지만 머리만은 남들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을 발굴해 그 잠재 능력이 화사하게 꽃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보람”이라며 “수능점수 몇 점 높은 사람을 뽑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은 참다운 교육과 거리가 멀다”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최근의 입시논란이 "대학이나 교육정책 담당자가 입시제도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됐다"며 이는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들어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대학들에게 내신 무력화가 공교육의 정상화에 어떤 영향를 미칠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며 "공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성원하고 격려해 주어도 모자란 판에 그들의 자존심을 그토록 무참하게 꺾어 버리면 과연 누가 공교육 정상화의 무거운 짐을 선뜻 떠안으려고 할 것인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글의 말미에서 "일단 급한 불을 끈 다음, 공교육 정상화라는 지상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가 집필한 ‘재정학’, ‘미시경제학’, ‘경제학 원론’ 등 경제학 관련 저서는 관련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 교수의 미시 경제 이론 수업은 명강의로 정평이나 한동안 서울대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
손혁기 (pharos@korea.kr) | 등록일 : 2007.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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