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93) | ||||
더욱이 내신 문제가 교육 당국이 모든 것을 걸고 그야말로 ‘막 가자’는 자세로 대학을 ‘협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공감을 하기 어렵다. 이번 논란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교육 당국이 최근에 내놓은 비과학적이고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주장을 거둬들이는 것뿐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우리의 대학 입시 제도를 근본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 정상화’와 ‘변별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집착해서 들여온 낯선 외국 제도에 대한 심각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전형 요소로 사용하고 있는 ‘수능’, ‘내신’, ‘논술’, ‘심층면접’이 모두 그렇다. ‘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들여왔다가 엄청난 부작용을 경험한 후에 폐기해버린 경험도 있다. 이제 외국 제도만 들여오면 공교육이 하루아침에 정상화되고, 변별력이 생길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형 요소의 문제점은 심각한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겠다던 수능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과목 간에 높은 장벽이 쌓여 있는 우리 공교육이 통합적 사고를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결국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능 성적의 과목 간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도입했다는 ‘표준변환점수’가 과목 간 형평성을 보장해준다는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학생들이 성적을 임의적인 방법으로 왜곡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수능 등급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등급을 구분하는 것부터가 지극히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수능 결과의 임의적인 조작은 수능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역할만 하게 된다. 논술, 통합논술, 심층면접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능력도 문제가 된다. 우선 논술이나 심층면접의 정체와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고, 전통도 없다. 그저 몇 사람의 자칭 ‘전문가’들의 화려한 수식어만 난무할 뿐이다. 논술 교육을 두고 국문과와 철학과의 물밑 투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 사용하는 언어만 같을 뿐이지 구체적인 내용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인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가 통합논술 교사를 양성하겠다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서울대에 의존해서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공교육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내신의 경우도 문제가 만만치 않다. 내신에 평균과 표준편차를 제공함으로써 변별력을 높인다는 교육 당국의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엄연히 존재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학교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입시에 사용되는 내신에는 그보다 더 고약한 원천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다양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청소년 시기의 일시적인 방황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 사이에 한 한기만 방황을 하더라도 원하는 대학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엄청난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정상화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로 작용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량적 평가’에 대한 우리의 환상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숫자화하면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버렸다. 정량적 평가에 대한 환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는 교육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모든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교육의 정도(正道)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교육이 목표로 삼고 있는 ‘홍익인간’의 해석도 백인백색일 수밖에 없다. 결국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공교육을 신뢰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에는 우리의 공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교육이 충분히 개선되면 신뢰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다.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과감하게 공교육을 믿고 신뢰해야만 공교육이 살아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해야 한다. 교사들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대학 입시도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렇다고 낯선 외국의 전형 요소를 새로 들여올 필요는 없다. 입시 개선의 핵심은 정량적 평가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정성적인 평가를 통해 발휘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기계적인 공식으로 점수화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은 충분히 경험했다. 학생들이 3년 동안 경험했던 어려움과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주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학생을 원하는 대학도 있어야 하고, 1~2년의 방황을 현명하게 극복한 경험을 가진 학생을 원하는 대학도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임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런 평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공교육 붕괴의 늪과 이번과 같은 ‘내신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학 입시의 진정한 자율화는 대학별로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른 주관적 평가가 허용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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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
2007.06.25 ⓒScience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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