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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로마인 이야기(070219)

왜, 로마사를 썼느냐... 흥망에 대한 '소박한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제 오후에 시간을 내서 시오노 나나미 씨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읽었습니다.
이제 <로마인 이야기>의 신간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15년간의
대장정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로마 세계의 종언'이란 부제가 붙은 책을 읽으면서
결국 한 국가나 조직의 흥망은 지도자에게 크게 의존하구나라는 사실과 그것도 운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붉은 줄이 쳐진 부분을 중심으로 몇몇 대목을 옮겨
보았습니다.

1. 로마의 역사가 끝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내 머리를 차지해 온 생각들 중에서도 특히
   한 가지 생각이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의 행운과 불운은 그 사람 자신의 재능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시대에 살았느냐와
더 관계가 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스틸리코의 인생 후반은 그 전형인 듯하다.
제국의 마지막 1세기에 살게 된 스틸리코는 고도 성장기였던 공화정 시대의 로마,
안정성장기라고 생각해도 좋은 제정, 즉 원수정 시대의 로마 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문제와 맞설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스틸리코란 인물은 서기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사망하면서
어린 두 아들의 후일을 부탁한 장수입니다. 훗날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호노리우스
에게 두 딸을 결혼시키기도 하지만 나중에 호노리우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
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게르만 출신이고 어머니가 로마인으로 '반야만족'이라는
멍에를 평생 지고 산 사람입니다.)

2. 국가라고 부르든 부르지 않든, 인간 사회는 크게 두 종류의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생산자와 비생산자다. 이 양자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나누면
우선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생산자는 농, 공, 상에 종사하는 사람들. 상인은 스스로 생산하지는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유통은 차후의 생산과 결부되기 때문에 나는 생산자로 분류한다.
비생산자는 정치와 행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사람들 자신은 생산하지 않지만 생산자가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이들의 직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두 계층은 둘 다 인간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중요하지만, 비생산자 계층의
책임이 더 무겁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사회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추는
것이 그들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인프라'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을
사회가 대신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매일 밤 자기 집 문을 잠그는 것은 개인도
알 수 있지만, 개인이 외적의 내습까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공동체'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것도 말기 증세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공심도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이익이 연동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발휘되는 게 아닐까.
(참고로... 로마 말기 즉 5세기로 접어들게 되면 로마 원로원 계급조차도 공공심이 결여
된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을 일으킨 적을 무찌르기 위해
스틸리코 장군이 군대 파견을 요구하게 되지만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원로원 계급들조차
모두 시크둥하게 되하게 됩니다.)

4. 로마는 서기 212년 노예를 제외하고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이 카라칼라 황제의 유명한 '안토니우스 칙령'이다.
얼핏 보기에는 참으로 인도적인 법률 같지만, 이 때문에 로마 시민권의 매력이 사라졌다.
국가를 위해 힘껏 봉사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취득권'이 이제는 로마 제국
안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얻을 수 있는 '기득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역기간도 봉급도 퇴직금도 불명확해졌다. 또한 무관과
문관이 엄격하게 구분되면서, 병역 경험자가 지방의회에 들어가는 것도 꿈이 되었다.

5. 4세기 초의 로마군 병력은 과거의 3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증원되었지만,

   국가 재정 형편상 그것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차츰 줄어들었고, 그렇게 되자 다시 북방
야만족이 멋대로 침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3세기 초에 카라칼라 황제가 로마
시민권을 기득권으로 바꾼 것과 4세기 초에 강행한 문관과 무관의 완전 분리가 로마
군사력을 쇠퇴시킨 두 가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제도 개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나고 나면 그 조치가
결정적으로 군사력을 약화시켰구나 혹은 경제력을 약화시켰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6. 인간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법률로 다룰 수도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개개인이 자기한테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일 뿐, 만인 공통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은 아니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스틸루스'(stilus), 이탈리아어로는 '스틸레', 영어로는 '스타일'
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참고로...스틸리코 장군은 죽음 대신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내리는 시오노 씨의 평이 멋집니다.)

*출처: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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