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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찬송이란 무엇인가 ?

예수,코리아21.09.06 05:52

 

I. 찬송이란 무엇인가 ?

 

음악은 인류 역사가 출범하면서 같이 병행한다. 그리고 종교 음악에서 모든 음악이 기원한다. 특히 기독교 음악의 찬송은 예배의 요소 중 하나이며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물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예배에는 항상 찬송이 따른다. 찬양은 구원 받은 자들의 감사의 반응이며 믿음의 행위이다.

 

(골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엡5:19-21)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교회 생활 중 가르치는 것 권면하는 것 시와 찬미 감사가 기본 요소이다. 그리고 복종하며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이다.

 

1. 음악의 정의.

 

음악(音樂)은 즐거운 소리이다. 뮤직(Music)은 듣기 좋은 소리 아름다운 소리이다. 음악을 정의하기를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적 예술이라 했다. 그러기에 기독교 음악은 하나님의 사상과(진리인 그리스도의 말씀) 그에게 받은 은혜의 감정을 소리로 정해진 시간에 마추어 표현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단어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미도 다양하다. 대략 성경에는 노래, 찬양, 찬송, 찬미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원문에는 50여개의 단어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 중에 주로 많이 쓰이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2. 찬양의 의미.

 

찬양은 종교 음악으로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찬양은 세속 음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속 음악은 인간이 느끼는 즐겁고 슬픈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면 찬양은 신의 감정과 조화를 이루는 표현이며 신을 경배하는데 더 의미가 있다. 신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감정과 세상에서의 삶의 위로와 도움을 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노래

종교 음악의 노래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① 제미얼(ריםִזֵ(jemir)=승인하다.

② 자마르(רםַזָ(jamar)= 악기로 연주하다.

③ 제미얼테머(ץראַםתֵרםַזָ(jamarethemar)=수학을 기뻐하다. 땅의 노래.

④ 바라크(ךרַבָּ(barak)= 무릎을 꿇다 복을 빌다. 번성케 함을 받다.

⑤ 바다(הבַי(yadah)= 찬양을 드리다. 감사를 드리다. 축하하다.

⑥ 아나(הנַאָ(ana)= 목소리를 높이다.

⑦ 린나(הנַרִ(rina)= 기쁨을 나타내다. 가쁨의 환호하다.

⑧ 쉬르(רישִׁ(chir)= 노래하다. 등으로 나타난다.

2) 찬송

① ευλογια(yullogia)=인정하다. 승인하다.

② ευλογινοs(yulloginos)= 축하하다.

③ μεγαλυνα (megaluno)= 영광을 돌리다.

 

3) 찬양 찬미.

① 에피노스(επαινοs(epinos)= 인정하다. 승인하다.

② 아니네시스(αινεσισ(ainesis)= 축복하다 축복을 빌다.

③ 훔노스(υμνοσ(humnos)= 신, 영웅, 정복자를 높이다.

④ 팔로(ψαλλω(sallo)= 문지르다. 건드리다. 움직이다.

 

위의 의미를 보면 구약에 나타난 창양은 승인하다라는 의미에서 신앙 고백적 의미가 있고 수확을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감사의 의미가 있고 무릎을 끓다라는 의미에서 경배의 의미가 있고 기쁨의 환호하는 의미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의미가 있다.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십자가의 대속의 신앙고백이며 구속에 대한 감사이며 구속 받은 자로서 영적인 경배이며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찬양은 십자가의 대속의 신앙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3. 음악의 기원.

 

음악을 연구하려면 종교를 떠나서는 연구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음악의 기원의 모체가 종교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기원을 찾으려면 인류의 기원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과 함께 공존하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원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인류의 기원을 성경을 떠나서는 찾을 수가 없다. 성경을 떠나 찾는다 해도 추상이나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종교 음악의 기원도 세속 음악의 기원도 잘 나타나 있다.

 

1) 종교 음악의 기원은 에덴이다

인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러기에 인간의 역사적인 기원은 에덴에서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의 기원도 에덴에서 찾아야 한다.

 

에덴(ןדְעֵ)이란 말은 파라데이소스(παδεισος της τρυϕης ,낙원(樂園)라고 번역했다 에덴이란 환희, 기쁨, 창조물과의 교통으로 즐거운 곳을 의미한다. 파라다이스라는 말은 표현할 수 없이 즐거움이란 말이다. 낙원이란 즐거울 락(樂 즐거울락) 원(園 동산원)이란 의미이다. 즉 즐거움의 동산 즐거움이 가득한 동산이란 말이다.

 

창조의 세계는 아름다웠고 창조된 인간은 감성이 풍부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와를 대려 왔을 때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고백했다.

 

(창 2:22-2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에덴의 최초의 가정은 사랑의 노래로 시작한다. 아내를 갖게 된 기쁨을 “살 중의 살” “뼈중의 뼈” 아내의 소중함을 노래한 것이다. 그 속에는 여자를 창조하여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함유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소중한 아내를 주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담은 각종 짐승들과 창조물들을 느낌에 따라서 이름을 지었다. 음악이란 희비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감성을 지니고 태어났고 창조된 에덴은 아름다웠다. 그러기에 에덴에는 즐거움의 노래, 감사의 노래, 사랑의 노래가 있었다.

 

그 곳은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이었고 죄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은 상호 조화를 이루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한 마디로 말하면 즐거운 소리와 인간의 즐거운 마음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에덴이란 말도 즐거움을 느끼는데서 비롯된 말임을 알 수 있다.

 

에덴 파라다이스는 락원 즐거움으로 어우러진 동산이란 의미라 할 수 있다. 조화의 동산이며 교통의 동산이다 음악으로 가득한 동산이란 말이다. 그러기 모든 음악의 원천이 에덴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모든 음악은 기원한다.

 

2) 세속음악의 기원은 가인의 후예 라멕이다.

라멕은 가인의 6대 자손이다.

[창 4:16-18]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 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לָמֵך)과 그의 아들들에게서 세속 문화의 시대가 나타난다.

[창 4:20-22]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의 큰 아들 야발은 가축업의 조상으로 나타나고 그의 동생 유발은 퉁소를 잡는 예술의 조상으로 타나나고 셋째 아들인 두발 가인은 철공업의 조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라멕으로 하여금 세속 음악이 나타난다.

 

[창 4:23-24]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위의 말씀은 라멕의 “검의 노래”이다. 최초에 두 아내를 둔 사람이 라멕이다. 하나님의 정해주신 일남 일녀의 법을 어기고 자신의 좋은 대로 두 아내를 두었다. 자유결혼의 선구자이다. 이로 인하여 아들 하나가 라멕의 아내중 하나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 같다 그래서 그 소년을 죽인 것 같다 그래서 두 아내에게 경고성 선언을 검의 노래로 부른 것이다. 두 아내에게 앞으로 이런 불상사가 없어야 할 것과 또한 그 죽은 아들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보복을 예상하고 경고를 선언한 전투적인 노래이다.

 

내가 소년을 죽인 것은 내가 받은 상처로 인하여 죽이게 되었다. 여기에 상처란 말은 마케오부(מכְאוֹב) 철 연장에 다친 상처를 말한다. 아들 하나가 여자문제 때문에 두발 가인이 만든 철연장으로 싸우다가 라멕이 상처를 입은 것 같다 그래서 상처를 입힌 소년을 죽인 것 같다. 이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들의 보복을 예상하고 손에 검을 들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 자신에게 조그만한 상처를 입히려 하는 자는 몇 갑절로 보복하겠다는 전투적인 노래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벨을 죽인 가인을 해치는 자들에게 벌을 칠 배를 더하였는데 즉 무고한 아벨을 죽인 가인도 그를 해치면 7배의 벌을 선언 했는데 자신은 정당한 살해를 한자로서 나를 상처를 입히면 나는 더 무거운 몇 갑절인 칠십 칠 배의 벌을 주는 것 당여하다는 선언인 것이다.

창세 시대의 음악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차이점이 발견 되는데 종교음악은 창조주에 대한 경배와 감사와 기쁨의 환호라면 세속적 음악은 범죄로 인한 두려운 인간의 감정에서 발산된 고뇌의 발산이다. 두려움을 막고 잊으려는 감정이다.

 

또한 세속 음악은 타락한 인간이 땀을 흘리면서 살아야 하기에 수고와 고난에 의한 슬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또한 행복을 잃어버린 인간이기에 참사랑 참평안 참 기쁨 참 행복을 동경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종교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에덴 풍부한 창조물 그리고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기쁨에서 기원했고 세속 음악은 하나님 떠난 스스로의 삶에서 빚어진 고난 괴로움 죄악의 두려운 고뇌에서 위로와 기쁨을 추구하는데서 기원 했음을 알 수 있다.

 

 

II.구약 시대의 찬양

 

고대 시대에는 제국과 종교가 함유되어 있었다. 특히 이방종교인 바벨론(바알) 종교의 시작이 바벨탑을 주도한 니므롯과 담무스를 태양신으로 그리고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달(月)신으로 신격화 하게 되어 그 종교가 이방인 종교로 바알(太陽)신과 아스타롯 신으로 내려오면서 제국의 왕들은 신으로 숭배했다.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그리스나 로마가 황제숭배를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제국의 왕들이 전쟁에 승리하게 되면 신의 능력으로 믿게 되고 신을 향하여 개선가를 부르게 되었다. 그러기에 모든 음악은 종교에서 기원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여호와의 종교역시 모든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믿었고 그리고 모든 우주를 그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었기에 신을 경배하게 되고 그 경배의 한 부분이 기쁨의 감사의 표현으로 찬사를 했다. 그 찬사가 역사로 내려오면서 찬양으로 발전한 것이다.

 

 

1. 찬양의 동산 에덴.

 

인류의 역사의 출발이 찬양으로 시작된다. 왜냐 하면 시조 아담이 생존한 곳이 에덴이기 때문이다.

에덴(ֵפדֶן)이란 말은 작음 숲, 귀족의 정원, 왕종긔 사냥터 귀족의 정원,이란 뜻이다. 에덴을 낙원이라 했는데 낙원니란 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ς)인데 즐거움 가득한 공원, 이상적인 세계, 죽은 믿는 자가 머물러 있는 곳,등이다.

 

타락하기전 에덴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한 생활을 했다. 한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소통하면서 어울어져 살았다. 특히 죄 없는 것이므로 행복의 종산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에덴은 찬양의 동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노아의 예언시.

 

노래는 노아 이전부터 발달해 있었다.

[창 4:19-22]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노아 시대에는 인간이 매우 번성했다. 노아 이전에 음악이 있었음을 보아 더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인의 후예 라멕의 검의 노래가 기록되고 또한 라멕의 아들 유발이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이것은 음악이 발달 되었음을 말해준다. 여호외의 종교 음악의 기원은 인간이 타락하므로 베일에 가리워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창세기 9장 24-27절에 노아의 찬송은 예언과 축복이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창 9:24-27]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족장 시대의 종교 음악은 기도와 예언과 축복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노아가 술이 깨어 아들들의 앞날에 대한 축복을 하는데 함은 저주를 내리고 그리고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고 찬양을 한다. 하나님을 찬양 한다는 말은 셈으로 하여금 믿음을 주셔서 자신의 허물을 덮게 하였음을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노아사 포도주를 마신 것은 취하기 위하여 마신 것이 아니다. 더운 지방에서 농사 일을 하다보니 목이 매우 갈하였다. 그래서 많이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중동지역은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포도주로 발효하여 음료로 마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발효된 것이기 때문에 많이 마시면 취하게 되고 또한 사람의 체질에 따라 적게 마셔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노아는 아버지 이면서 사제인 것이다. 그런데 함은 죄 없는 아버지를 정죄하고 악담했다. 그것은 태어날 대부터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사탄의 유전자를 받은 자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대적하고 사제를 대적한 것이다.

 

또한 노아가 육신적인 아버지로 예언 한다고 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그래서 함은 저주를 예언하고 셈은 찬양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노아 시대 찬양은 예언의 시로 기록이 된다.

 

 

3. 출애굽 백성의 찬양

 

출애굽 시대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에 정착 이전까지 모세 시대로 시작하여 여호수아 시대까지를 말한다. 모세 시대에 왕조는 고 왕조, 중 왕조, 신왕조, 루비아 왕조, 사이트 왕조, 로 구분한다.

 

이 기간이 주전 1500년에서 2500년으로 추정한다. 고고학에 의하면 이 시대는 음악이 상당히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쓰여 진 악기를 보아 알 수 있는데 그 당시 쓰여진 악기는 특히 5현의 하아프가 있었고 멜로디트 즉 움직이는 카이토마라는 지휘법이 있음을 보아 합창이 있었음이 발견된다.

 

성서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홍해를 건너며 부른 찬송이 나온다. 그 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했는데 하나님께 경배와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때 감사의 응답으로 불리웠다.

[출 15:1-2]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20-출 15:21]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홍해바다를 기적으로 구원에 이른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창양하고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심을 찬양하고 우리의 힘이 되심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시리라 하며 찬양했다.

 

그리고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을 선두로 하여 많은 여인들이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화답했다. 당시 미리암은 찬양대들의 지휘역할을 했다.

 

이 시대는 족장 시대보다 발전했다면 개인적인 음악에서 민중의 음악으로 발전했고 내용은 능력에 예찬, 인도에 감사의 응답 송으로 나타난다.

4. 요단강에서의 찬양

 

여호수아 시대에는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언약궤 앞에서 양각 나팔을 든 나팔수들이 앞섰다. 이 나팔수들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이었다는 점에서 찬양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찬양은 싸움터에 나가는 행진가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수 6:8-9]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5. 사사 입다의 딸의 찬양

 

사시대에 창양은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사사 입다가 미스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그의 딸인 소고를 잡고 이스라엘의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삿 11:34]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6. 선지자 무리의 찬양

사무엘 시대 말기 왕정이 도입되면서 초대 왕 사울로 시작하여 다윗으로 제국이 이루어진다. 사사 말기 사무엘 시대에는 이미 선지자 학교에 찬양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울이 잃어버린 나귀를 찾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찾을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 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때에 이미 예언과 찬양이 병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상 10:5)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7. 목동 다윗의 찬양.

 

이스라엘 왕정 초기 시대 사울 왕이 악신이 들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궁중 가수로 등용된다.

 

삼상 16:17-18.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 epofudh라 하니 18) 소년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잘 탈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게서 그와 함게 계시더이다.

 

다윗은 목동으로서 양을 치는 소년이다. 그런데 그가 수금을 잘타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하여 사울 왕에게 소개되었다. 다윗의 노래를 들은 소년이 그의 노래를 들으니 하나님이 함게 하심을 알았다고 했다.

 

다윗의 찬송은 영력이 있는 찬송이었다.

삼상 16:22-23.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의 찬송은 보통 노래가 아니라 악령을 몰아내는 권세있는 찬송이었다. 그러기에 사울 앞에서 찬송응ㄹ 부르니 악신이 떠나가게 되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와서 찬송을 부를 때에 사울에게 접해있던 악신이 나갔다고 했다. 이미 이 때의 찬송은 영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은 어릴 때부터 찬송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궁중에 신하들까지 알려져서 궁중에 소개된 것이다.

 

목자로서의 찬송은 시편 23편으로 유명하다.

시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프른 풀 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8. 사울왕 앞에서 다윗의 찬양.

 

삼상 16:17-18.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냔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게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니라.

 

[삼상 16:22-23]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이스라엘 왕정 초기 시대 사울 왕이 악신이 들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궁중 가수로 등용된다. 다윗이 사울에게 와서 찬송을 부를 때에 사울에게 접해있던 악신이 나갔다고 했다. 이미 이 때의 다윗의 찬송은 영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은 어릴 때부터 찬송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궁중에 신하들에게 까지 알려져서 궁중에 소개된 것이다.

 

9. 백성들의 다윗의 개선 찬양.

 

이스라엘이 불레셋과 전쟁할 때 소년 다윗이 믿음으로 나아가 적장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하고 돌아 올 때에 모든 여인들이 나와서 개선의 창양을 했다.

 

[삼상 18:6-9]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9)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다윗이 왕이되어 법궤를 모셔올 때 찬양.

 

그래서 다윗이 다윗 성으로 모셔 오려 할 때에 이스라엘에서 뽑은 3만 명과 함께 새 수례에 법궤를 실고 올 때에 온 이스라엘 민족이 여러종의 악기를 연주하였었다.

 

[삼하 6:13-16]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14)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16)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시 궁중으로 법궤를 메어 올 때에 왕인 다윗이 모든 백성들과 함께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찬양했다.

 

이 당시에 이미 여러 가지 각기가 개발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악기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는데 여러 악기 중에 대표적인 악기가 수굼, 비파, 소고, 양금, 제금이 기록된다. 이 때에는 찬양이 예배화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 솔로몬 시대 찬양

 

왕정 시대는 다윗 왕 편의상 사사 시대에서 포로 시대로 한정한다. 그러기에 주전 450년- 1000년까지가 된다. 사사 시대에는 백성의 생활이 균형 잡히지 않았고 신앙도 희미하였다. 그러기에 찬송의 생활도 희미하다. 이 시대의 예배의 찬송은 거의 없고 다만 드보라의 승전가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찬송은 신앙과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정 시대는 찬양의 전성시대라 말 할 수 있다. 다윗 왕을 위시하여 솔로몬 왕으로 음악이 급성장 했다. 이미 이 시대에는 음악의 조직적인 규모가 나타난다.

 

음악 학교가 설립되어 합창단이 설립되고 음악 전문학교가 설립되어 있었고 음악 교사가 있었는데 아삽, 여두둔, 헤만이었고 성가 대장이 9명이었고 지휘자가 24명이었다. 성가 학교가 있어서 교육 받은 성가대가 288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4000여명의 찬양대가 있었다.

 

솔로몬 시대는 궁중 악단이 있었고 (전2:8.) 전문 작곡가가 있었고 (대상9:33.) 전문 악단을 임명했으며(대상15:16.) 전문 성가대를 조직하였다. (대상25:31.) 그리고 성가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운영 하였다.

 

다윗은 자신이 쓴 작품을 남겨 놓았다 솔로몬도 시를 1005편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상 4:31-32.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에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바방 모든 사람에게 들렸더라 32)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노래는 천 다섯 편이며.

 

 

12. 포로 시대의 찬양.

 

포로 시대에는 국가가 없어짐에 따라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조직되고 행상된 음악으로 어디를 가든지 이들의 생활과 같이 했다.

 

포로시대에 종교 음악 가수가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호디아], [스바냐], [보디히야], [갓키엩], [예수아], [버니아],등이다. 이 당시 지휘자는 [미디야]이다.

 

구약 시대에 찬양이 쓰여진 용도는 대부분 예배 시에 쓰여 지고 작별시(대상5:11), 연회 시(대상5:12), 결혼 시(렘7:34), 장례 시(미9:18), 승전 시(출15:20), 즉위 시(대상23:11), 성스런 행렬 시(대상13:6) 등이다.

 

III.신약 시대 찬양

 

신약시대 찬양은 구원 받은 자들의 생활이었다. 복음 시대에 여러 찬양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 잉태 시 마리아의 찬양(눅1:46.) 그리스도 탄생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찬양(눅2:28.) 양 치던 목자들의 찬양(눅2:20.) 소경을 눈을 떴을 때에 찬양(눅18:43.)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이 입성할 때 찬양(눅19:37. 마21:9.)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할 때 찬양(행13:48.) 그리스도가 성만찬을 마치고 감람산에 가면서 제자들이 찬양했다. (마26:30.) 특별히 찬양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아니라 모이는 자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찬양했다.

 

1. 신약시대 찬양.

1) 마리아의 찬양.

눅 1:46-50.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영혼이 내 구주를 ᅟᅵᆨ뻐하는 것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셧음이로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일컬으리로다.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 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리로다.

 

신약시대는 마리아의 탄생계시를 받으므로 시작한다. 창세 때에 아담에게 약속한 그리스도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예언되고 택한 백성들이 소망하는 메시아로 선민 마리아로 하여금 도래하게 된 일에 대하여 찬양하게 된다.

선지자도 제상장도 아닌 평민의 딸인 마리아가 자신이 메시아를 탄생할 자로 선택된 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아의 성령으로 메시아 잉태에 대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신약 시대 찬양은 시작이 된다.

2) 천사들의 찬양.

눅 2:10-14.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언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으로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저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국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리스도가 탄생한 밤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로 드리기 위해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의 무리가 그 소식을 알린다. 메시아 탄생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시대에 양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알리고 찬양한 것은 이제 양으로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이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들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와 베들레헴에 말구유에 뉘어 있는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경배하고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천사들의 찬양으로 신약 시대의 찬양은 이어져 간다.

3) 시므온의 찬양.

눅 2:28-33. 시므온이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에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을 놀랍게 여기더라.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교부인 시므온이 직무를 수행하던 중 그리스도께서 결례 식을 행하러 왔음을 보고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감사 찬양을 들렸다. 시므온은 교부로서 말세가 됨을 직시하고 속히 그리스도가 임하실 것을 기도했었다. 자신의 생전에 메시아를 볼수 있기를 소원했었다. 그 때에 성령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말려 주었고 그 메시아를 만나고 감격하여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들렸다.

 

2. 그리스도 시대 찬양.

 

1) 그리스도 예루살렘 입성을 백성들이 찬양했다.

막 11:6-10. 제자들이 예수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 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 끌고 와서 자기들이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윌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그리스도께서 선지자 사역을 마치고 제사장 직무 수행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기 직전 그가 메시아인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하시려고 인간의 능력으로 탈수 없는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 그것은 스가랴 선지자로 하여금 메시아는 평화의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다고 예언했었다.

 

인간의 왕은 왕으로 입성 할 때 말을 타고 입성한다. 강함과 승리의 상징으로 말을 탄다 그러나 그 당시 나귀는 일하는 종의 상징이고 겸손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종으로서 사우지 아니하고 겸손한 나라 왕이신 것을 알리기 위하여 나귀를 타셨고 새끼 나귀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즉시 탈 수 없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이다.

 

백성들이 그 사실을 목격하고 스가랴 선지자등 선지자들이 예언한 왕임을 알아보고 평화의 상징인ㅌ 종려나무 가지를 깃발로 하여 흔들며 혼산나! 혼산나! 소리치며 찬양했다. 그 찬양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예언된 평화의 완인 것이 널리 널리 퍼지게 되었다.

2) 마지막 성만찬을 마친 후 제자들의 찬양.

마 26:26-30. 그들이 목을 때에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 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모든 선지자 사역을 마치시고 제사장의 사역 대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면서 베다니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 자리를 마련했었다. 그리고 식사가 마쳐지고 구약의 유월절을 마감하고 새로운 유월절을 탄생시키는 말씀을 마치시고 이것으로 모든 대속의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대속을 이루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기도하시려고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과 부른 마지막 찬송이다.

그리스도는 찬송으로 탄생을 알리시고 찬송으로 사역 마무리를 알리시고 찬송으로 마무리 하셨다.

 

 

3.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 시대 찬양.

 

행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서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600여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승천을 목격했다. 그중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그리스도의 분부를 따라 제자들 및 120여명의 성도들이 다락방으로 돌아와 기도함으로 약속된 성령이 임재 하여 교회가 태동되고 예루살렘에서 급성장하여 대형 교회가 되었다. 처음 창설된 교회는 온 교회가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날마다 찬송하는 생활을 했다.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찬송이 신앙생활이었다.

5. 유대교와 글라우디오 황제 박해.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유대인으로 시작하여 로마황제들에게 250여년을 가혹한 박해속에 존재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수면에 나타나지 못하고 지하교회로 유지하게 되었다. 사람들의눈을 피하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드러내 놓고 찬양 할 수 없었다.

 

1) 유대교 박해.

 

(1) 유대교 박해에 앞장선 사울.

그리스도교 박해는 성령 강림 후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 박해에 앞장 선 사람이 사울이었다.

행 9:1-2.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데 제사장에게 가서 1)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잡아 오려 함이라.

 

예루살렘을 피하여 신앙 생활하는 다메섹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체포공문을 받아 가지고 가는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중단하게 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세계만방에 전하는 제자가 되었다.

 

(2) 유대 왕 헤롯(아그립바 1세)의 박해.

행 12:1-3.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 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사울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박해는 강세를 더하였다. 유대 왕을 이용하여 박해를 계속하면서 사도인 야고보를 처형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죄목이다. 헤롯 왕은 원래 유대인이 아니고 로마의 임명된 왕손이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언제나 갈등속에 있었다. 헤롯 2세 아켈라오가 죽고 그의 아들 헤롯 3세 아켈라오의 아들 아그립바가 왕위를 계승하자 유대인들과의 화합을 빌미로 하여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도록 했다.

 

아그립바 1세는 유대인들과 화합의 기회로 삼고 그리스도 교회를 잔멸하려고 사도들을 잡아 죽이려 했다. 그래서 먼저 사도 야보고를 처형하고 박해에 피하지 아니하고 은거하면서 신앙과 교회를 지키는 사도들을 차근 차근 잡아 처형하려했다. ​

 

(3) 그라우디오 황제 박해.

행 18:2-3.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르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아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글라우디우스 황제는 A. D. 41,년-A. D. 54년에 제위한 황제이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작접 박해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 크레스투스(Chrestus)란 사람이 유대인으로서 로마에 대한 반란과 폭동을 일으킨 사람인데 크레스투스와 그리스도와 이름이 동일하여 글라우디오 황제는 그를 유대인 그레스투스를 그리스도와 동일 인물로 알고 박해한 것이다.

그라우디오 황제는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기독교인도 같은 종교로 생각하고 로마 제국을 떠나라 추방 명을 내렸다.

 

2) 로마 박해.

그리스도박해가 일부 종교적 박해로 이어 오다가 네로의 로마 시 화재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씌우므로 인하여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네로 황제의 로마 화재 사건을 누명을 씌워 박해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황제 숭배 거역으로 10열의 황제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이들은 기독교는 잔멸하려 했기 때문이다.

❶ 주후 64년 네로(Nero)황제 박해로 시작하여  주후9 90-96년 도미티안(Domitian) 황제 박해,  주후 98-111년 트라얀(Trajan) 황제 박해,  주후 117-138 년 하드리안(Hadrian)황제 박해,  주후 161-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황제 박해,  주후 202-211년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 황제 박해,  주후 235-236년 트레스출신의 막시미누스(Maximinus)황제 박해,  주후 249-251년 데키우스(Decius)황제 박해, 주후 257-260년 발레리안(Valerian)황제 박해,  주후 303-311년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Diocletian Galerius)황제 박해이다.

 

250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이 무자비한 박해속에서도 존재했고 오히려 신앙은 더욱 강성해졌었다. 그래서 굴 무덤(카타콤)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므로 찬송은 지하에서만 불러야 했다.

 

6. 기독교 공인 시대 찬양.

 

기독교 공인 시대는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공인한 주후 313년에서 500년까지를 한정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로 인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자 공공연하게 지상에 나타난 기독교는 급속도로 성장을 한다. 장엄한 성당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예배의 형태도 점점 갖추어 짐에 따라서 음악의 발전은 거듭한다. 그리하여 음악의 수준이 점점 높아져 갔다.

 

이 시대에 음악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독일 출신의 밀라노 주교인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A. D. 34-년-397년)가 있다. 이는 고대 교회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 울 만큼 교회 음악의 공헌자이다. 그의 공적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창법 개발이며 하나는 음악 책을 만들어 교회 음악을 굳힌 것이다. 서방에서 불려지는 응송과 동방 시실리아 팔레스틴에서 불리웠던 교송을 도입하여 교회 음악으로 채택하였던 것이다.

 

과거 시편에는 앞뒤에 고, 저를 가져오는 창법을 이루어 중간 부분에 진행할 때에는 노래라기보다는 낭송에 불과 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가 대중적인 노래로 선율을 유지하면서 복잡한 면에서 순화하였고 단순한 면에서는 단순하게 순화하여 적극적인 음률로 시도하였다. 그의 음악은 민중적이며 감수성이 있고 다양한 음률을 지닌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암브로시우스의 찬송은 그 당시 이단파 아리안 파의 투쟁에서 유력한 무기가 되었다. 또한 유명한 신학자 성 어거스틴을 감동 시킨 감화력이 있는 찬송이다. 이렇게 되자 여러 사라들이 암브로시우스를 모방하여 여러 작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자 진정한 암브로시우스의 작품을 구별하기 어렵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 음악은 발전의 기회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자랐으며 세속에 녹아들어가지 아니하고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며 진리에 대해서는 진리수호의 임무를 담당하며 문화를 지배해

특히 유명한 것은 주후 265년에 발명된 물 오르간(hydraulis)이다.

원전 3세기에 그리스 알렉산드리아의 발명가 크테시비우스(Ctesibius)가 일명 ‘물 오르간(hydraulis)’이라는 악기를 만들어냈다. 물을 가득 채운 통을 이용해 공기의 압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파이프 소리를 내는 이 악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오르간 역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 오르간은 지속적으로 발전되었고 그리스뿐만 아니라 로마에까지 소개되었다. 2세기경

오르간은 로마의 상류 계급이 향유하는 사치품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7. 중세시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1) 찬양.

 

그레고리 1세 시대는 주후 550년에서 주후 604년으로 한정한다. 그레고리오 1세 A. D. 504년-A. D. 604년 교황이다. 가장 처음 성가 책을 만든 사람이다. 그레고리오 1세는 카로링카 왕조 때에 교횡이 되어 9세기-10기 어간에 유럽 지역에 산재해 있는 음악을 통합 편찬했다. 당시에 악보가 발달한 때가 아니어서 낭송으로 구전으로 되고 암송으로 전래하게 되었다. 이것은 책으로 만든 사람이 그레고리오 1세이다.

 

그레고리 1세는 사제로서 종교음악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이는 전례를 생명으로 하는 베네딕트 수도사 이며 주후 576년에 교황의 사절로 주후 590년에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교회 음악사상 특유한 인물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전래의 개혁을 시도한 사람이며 시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예배 집은 서구 전역에 보급되고 오늘의 예배의식에도 남겨지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성가 학교를 세워 장려하고 이를 위하여 성 베드로 성당에서 기숙사 건물을 세워 성가대원들을 공동 생활하도록 했다. 또한 성가대들의 효율적인 양성을 위하여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교아원에 인재들을 배당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이미 밀라노 암브로시어스(Ambrosius) 성가가 있었고 아퀴나에는 갈리라(Galliere)의 성가가 있었고 스페인에는 모라자비아(Morazarbia)의 성가가 있었는데 이것을 그레고리어스는 통합 구축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9세기-10세기에 유럽 전역에 구전에 의하여 산재해 있는 음악을 통합하여 예배송으로 편찬했다.

 

또한 그레고리어스가 캔더리에 있는 성 어거스틴을 영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선교했는데 그 선교 방법이 그레고리 성가였다. 이 때에 에델비이트(Etelbert)를 비롯하여 많은 영국민이 이 성가에 개종했다. 이 때에 갈리우스의 저작자 요한네스 디아너스(Jonnes Diaenus)가 성 베드로 성당의 성가 대장이었다. 또한 유명한 웨미스 수도원에서 로마 성가를 가르쳐 큰 영행을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페벵(Pepin) 황제의 아들 샬만누스 (Chalemaganus) 대제가 이 성가를 받아드렸고 이 그레고리어스의 성가 습득을 위하여 인재를 로마에 파송하기도 했다.

 

그레고리우스의 성가는 미사 제를 위한 것이어서 예배의식이 없이 음악만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레고리우스 성가는 미사성제를 위한 알렐루야(Allelluya)와 성무일과(聖務日課) 성가집인 안토포나날레오(Antoponalleo)였다.

 

그레고리 미사 노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안트로이루스 (Antoponal= 사제의 입장 시에 부르는 입제 창)

2. 기례예(Greeae=교인이 부르는 기도송 [불쌍히 여기소서)

3. 글로리아(Glloria=영광의 찬가 1절은 성가대 나머지는 회중이 부름)

4. 그레타일레(Gretalle=전례 송 성서 낭독 후 부르는 찬미)

5. 알렐루야(Allelluya=승계 송 성찬 자와 회중이 부르는 찬미)

6. 트락투스(Tractus=영송 슬픔을 당할 때 부르는 찬미)

7. 레토(Letor= 신앙 선언 송 신앙을 선언할 때에 부르는 찬미)

8. 베네딕투스(Benedicgtus=서창 사제만 무르는 찬미)

9. 옾토르리움(Optorieum=빵과 포도주와 축원과 함께 드리는 찬미)

10. 산크루수베네딕투스(Sancrusbendigtus=감사의 찬미)

11. 주니의 기도문

12. 아그너스레이(Agunnssrei=평화의 찬가)

13. 영성체 송( 신비스런 비적에 이어지는 노래)

14. 종제 송( 마지막 기도 송) 으로 되어 있었다.

 

음악적 의식에 있어서는 하루에 정해진 일과에 따라 기도 순으로 한다. 이를 오리치움이라 말한다. 오리치움은 아래와 같다. 새벽조가 제 1 시과 오전 1시에서 6시까지. 제 3시과 오전 9시. 제 6 시과 정오. 제 9시과 오후 3시. 그리고 일몰 만과 종제 송으로 마친다.

이 당시 악보는 뚜렷하지 못했지만 주로 암기로 했는데 그레고리에 의하여 4각 악보가 쓰여졌고 선법은 8선법 사선법이 있었는데 주로 4선법을 사용했다.

이 시대의 음악은 안으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데 중력을 담당했고 밖으로는 선교적 확장을 크게 담당했다.

 

 

6. 기독교 중세 시대의 찬양

 

세 시대는 주후 800년에서 주후 1400년으로 한정한다. 샬만 황제가 레오 3세로부터 제권을 받아 로마를 재건하고 확립했다. 이 시대에는 아직 인교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교회는 고대 문화를 계승하여 문화의 지도적 입장에서 육성하고 보급하였다. 그러는 이 무렵에 새로운 문화적 선구적 역할을 한 자들은 게르만 족이다. 이들은 기독교 문화의 독창성을 가지고 서구 전역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음악적으로서는 그레고리 음악의 벌전기이다.

새로운 악식으로는 속송(續誦) 또는 경송(經誦)이 나타나고 또한 오르가늄적인 원시적인 다성악이 등장 하였다.

이 시대에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자들이 여러 사람들이 있으니 그중에서 이름이 있는 사람들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아퀴니스(Alcuinus 주후 735-주후 804년)

이는 대학자이며 교육자 이며 성자이다. 이는 교회박사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유명하였다. 이는 음악 이론가 이며 영국 신학자로서 욕 학교에서 베다의 제자에게 배웠다. 주후 766년에 교장이 되었다.

 

샬만누스 초청으로 프랑스 왕국 르네상스에 활동하였고 궁정 학교에서 궁가들과 기타 자녀들을 가르쳤으며 청년 목사들을 교육하였다. 과학 수학사를 가르치고 음악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는 교회 시를 많이 썼고 그의 시는 유명하다. 그는 성 마르틴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있다가 죽었다.

 

2) 데오돌프(Theodolf. 주후 821년)

이는 스페인 사람이다. 시인이며 프랑스 제국의 신학자이다. 챨스 대제에게 알려저 주후 750년 올레앙 감독으로, 주후 781년에 풀루리 수도원장으로, 주후 800년에 챨스 대제를 따라 로마로 갔으며 주후 802년에 그의 성학 고문이 되었다.

 

주후 811년에 챨스의 이름으로 세례식이라는 책을 집필하였으며 주후 818년에 챨스 후계자들에게 모함을 당하여 혐의를 입고 추방을 당하여 엔젤 수도원에 강금 당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노래 “종려 주일의 노래, 왕 되신 우리 주께”의 노래로 왕이 석방 히였다.

 

그의 저서로는 성령(De spiritus Sancto)챨스 궁전의 자손들의 찬송을 썼다. 그의 업적은 교회 제도 개혁 교회증수 신학교 설립 라틴어 성경개정 성서 채색사본 등을 장려하였다.

 

3) 레오 멘시스(Aurelianus reomensus. A. D 850)

이는 이론가로 자신이 쓴 논문 가톨릭 왕조의 전래음악에 관한 음악 규율(Disciplina Reomensus)과 음조가락의 규칙(Tonarius Reqularis)으로 유명하다.

 

4) 발불루스(Notker Balbulus. A.D 912)

발불루스는 추리히주 엘스크에서 태어났다. 예의의 수도원장 크스갈렐에서 수학 하였고 거기에서 많은 속송을 쌌다. 이 속송이란 여러 가지 길이와 반복을 지닌 것으로 여기에다 자스러운 산문 가사를 맟추어 산문을 수반하는 속송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후계자들이 많이 있어 음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5) 레키오 포프링(Reginovon Prum. A.D 916)

이는 추후 892년 도리히 주 근처 수도원장으로 그 후 도리히 주 장크스 맥시만 (Sankt Maximim)수도원장으로 지냈다. 이는 작곡자이며 음악 이론 가이다. 이는 교회 성가 교송과 응송의 선법에 따라 배열한 토나리우스(Tonarius)라 불리우는 책을 저술하였다.

 

6) 훅 발트(Hucbaid. A.D 930)

이는 벨기에 사람이다. 수도승이다. 중세기에 대표적인 음악가 이다. 음악 학자이다. 그에게 많은 음악의 저술이 있지만 음악교육론(De Harmonica Instution)외에 타인의 것으로 간주되어 버렸다. 이는 기보법의 선구자로 5선과 그 위에 가사를 쓰는 기보 법을 내놓았다.

 

이렇게 중세의 음악은 단성악에서 다성악으로 발전하여 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교회음악은 예배에 빼 놓을 수 없는 중역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선교에도 일익을 감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IV. 예배와 찬송

 

창세시대 족장 시대에는 찬송에 대한 기록이 없고 시와 예언으로 기록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 되면서 출애급할 때에 찬송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에 기쁨의 감격을 찬양으로 나타냈다.

 

홍해 건널 당시 미리암이 앞장 서서 찬양을 주도했고 모든 백성들은 한 마음으로 찬양 했다.

 

출 15:1-3.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출 15:19-21.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20)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출애급 이후로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강을 건너면서 제사장들이 나팔로 찬양했고 사사 시대에 사사인 입다의 딸이 승전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내용이 기록되고 왕정시에 찬양이 왕성하게 발전했다.

 

 

1. 찬송은 예배(제사)에 예물이다.

 

제사장은 등대에 불을 켜서 항상 밝히라 명하셨다.

레 24: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3)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 할지니라

 

하나님과 대면하는 성소에 언제나 등불을 밝혀 성소를 밝게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했다.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받은 기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된 감사를 돌리는 것이다. 그와 같이 구원 받은 자들은 자들이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예물이다.

 

출애급 당시 구원을 받은 자들의 감사와 기쁨의 반응이었다.

출 15:2-3.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며 백성들을 물러 모으시며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시 147:1-3.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ㄹ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

 

하나님은 찬송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 했다.

시 22:3-5.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5)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새 노래로 찬양하라 했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 새롭게 깨달은 은혜를 찬송하라 했다.

 

시 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솔로몬 시대에는 찬송하는 직무를 두어 행하도록 했다.

대상 6:32-35.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찬양학교 교육을 받은 성가대가 288명이었다.

대상 25:7.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 팔십팔인이라

 

솔로몬 성전 헌당식 예배 드릴 때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대하 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 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모든 소리 즉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하라 했다. 기독교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고 악기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치며 찬양하라 했다. 즐거움으로 찬양하라는 말이다.

시 47:1-2.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영적인 기쁨을 노래하라 했다.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고 복종하려는 신앙으로 찬양하라 했다.

엡 5:19-21.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 찬양은 구원 받은 자들의 신앙고백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창조하여 우리들에게 주셨으니 우리들을 창조하여 주셨으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니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니 원수를 이기게 하시고 도우시니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안에서 택하시고 부르셨으니 구주를 보내주셨으니, 즉 한마디로 말하면 나를 창조하시고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셨으니 그 은혜를 입은 자는 찬송함이 마땅한 것이다.

 

구원 받은 백성들은 찬양 생활을 했다.

창 29:35.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출 15: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신 8: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삿 5: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룻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마 21: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눅 1:46-50.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며 50) 긍휼하심이 둘워 하는 자에게 대대에 이르리로다.

 

찬송은 예배의 한 중요한 요소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예물중 하나이다. 성경에 보면 찬송이란 말이 208여회 찬양이란 말이 83여회 찬미란 말이 13회 나타나 있다.

 

찬송은 기도를 함유하고 있어서 곡 있는 기도이고 찬송은 받은바 은혜를 나타내는 감정으로서 성도의 당연한 윤리이고 찬송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베푸신 은혜를 칭송하고 높이는 방편으로 영적인 생활이며 찬송은 하나님을 전하여 알리고 복음을 전하는 방편으로서 교회의 의미이기도 하며 필연적 영적 생활이다.

 

물질적인 헌금이나 한물은 하나님이 마음만 받으시고 우리들의 영혼을 위하여 돌려주신다. 우리의 헌신도 하나님이 마음만 받으시고 그 결과는 우리들의 영적인 생활을 위해 돌려주신다.

 

그러나 찬송은 드려지는 것으로 전부이며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므로 온전히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러기에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출애굽 시대 모세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제국이 건설된 다윗부터 시작하여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이 찬송은 신앙의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가 되었다 특히 개혁 시대에 있어서는 많은 성자들로 하여금 찬송이 작시되었고 개혁시대로 시작하여 그 이후 복음을 전하는데 큰 공헌을 찬송가가 있다. 지금도 찬송가는 복음을 전하는데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핫 자손들을 선택하여 전적으로 찬송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하셨다.

대상 6:31-33.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 아들들이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 저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

 

대상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헤만과 여두둔을 아삽 찬송 작시와 작곡을 전무하도록 선정하여 세우셨다. 골방에서 거하였다는 말은 기도했다는 말이다.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 했다는 말은 찬양을 위해 전염 했다는 말이다.

 

대상 16:42. 또 저희와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로 문을 지키게 하였더라

 

 

3. 찬송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 드리는 감사의 마땅한 반응이다.

 

하나님께 창조함 받은 모든 창조물과 구속을 입은 모든 자들은 찬양하라 했다.

계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사 42:10.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롬 15:11012.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찬송은 은혜 받은 자들의 감사의 방편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하 7:6 .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 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케 하던 것이라 제사장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섰더라.

 

찬송은 영적인 제사이고 입술의 열매라 했다.

히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믿는 자는 제사(예배)가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입술의 열매 신앙 고백이다. 즉 영적인 예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찬양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찬양은 구원 받은 자들의 영적인 반응이다.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찬미는 제사라 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라 했다. 창조물을 통하여 사는 인생들은 모든 열방들 그에게 창조함 받은 모든 것들도 찬송하라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종들, 구원 받기로 작정되어 부름 받은 모든 자들은 찬송하라고 했다.

 

 

4. 찬송은 은혜를 입는 방편이었다.

 

찬송가는 구약의 성소에 등대의 생활이기도 하다. 성소를 밝히는 등대이다. 등대는 불을 밝혀 기쁨을 드리는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된 생활의 열매이기도 하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기쁨을 찬양으로 드렸다. 홍해를 건널 때 모든 민족이 찬양했고 또한 미리암이 여성들과 함께 소고를 들고 찬양했다.

 

찬송가는 믿는 자들의 영적인 힘을 입는 양식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첨령할 때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불며 성을 맴돌았고 도한 나팔 소리와 함께 외칠 때 성이 무너졌다. 그런면에서 영적인 힘을 입는 방편이기도 하다.

 

찬송가는 은혜를 전제하기 때문에 눈물 속에서도 위로의 기쁨이 있고 고난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힘과 용기를 준다. 곡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감사 도는 소원을 아뢰는 노래이다. 그 찬송가를 통하여 때로는 어려울 때 기적도 일으킨다.

 

행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V. 찬송가와 복음성가.

 

지금 교회가 드리는 예배가 인간 중심의 예배로 세속화 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배 시간에 드리는 기도 찬양이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교회를 타락하게 하는 것이 이단이나 적그리스도 뿐 아니라 세속주의 신앙 인본주의 신앙이다. 대다수의 교회가 성경 중심의 신앙 말씀 중심의 신앙을 외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인간 중심 세속주의 신앙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1.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했다.

 

(요 4:23-2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의 기본 요소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다. 교회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으로 성경 66권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설교인데 그런데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자기 의도에 하나님의 말씀을 포장하여 전해지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전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각내어 자기의 의도에 맞추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탤런트를 강단에 새워 말씀 대신 전하도록 하기도 한다. 기도 역시 정중하게 하나님께 드린다 하면서도 사람들을 향한 기도가 많고 심지어 기도로 성도들을 가르치는 기도도 있고 하나님께 항병하는 기도도 있다.

(롬 16:17-18)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특히 가장 많이 변질된 것은 찬송가이다. 복음 성가가 활발해지면서 교회 안에서도 찬송과 혼돈되어 심지어 예배 때에 찬양으로 드려지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 찬양대를 없애버린 교회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적인 예물로 드려지기보다는 인간 즐거움의 방편으로 삼고 인간 듣기에 즐거우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한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다.(사 56:7)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막 11:17-18)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2.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힘써야 한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나 찬양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고 하나는 생활 속에서 범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기위해 회개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찬양은 곡있는 기도라 할 수 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인간 자유이다. 그러나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가인은 자기 좋을 대로 제사를 드렸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명하신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다. 가인 아벨 제사를 드렸으나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인간의 자유이지만 제사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창 4:4-7)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롯과 분가하고 네게브에 이르러 제사를 드렸을 때 횃불로 응답하셨다.

창 15:17.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더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주신 불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게 되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태울 때에 하나님이 주신 불로 태워야 한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주신 불씨를 간수하지 못하고 꺼뜨리자 일반적인 불로 태우려 했다. 하나님의 불 인간의 불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레 10: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제물로 드려야 한다. 아무 짐승이나 드릴 수 없다. 제사 드리는 법도 하나님이 주신 제도 안에서 드려야 한다. 인간 좋을 대로 인간 편한 대로 드릴 때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론의 아들들이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는 사건이 있다. 그 다른 불이 무엇인가 대 제사장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려 받은 불을 말한다. 그 불을 화로에 보전 했다가 그 불로 제물을 태워야 하는데 아론의 아들들이 그 불을 간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을 보전하지 못했으면 자신의 불충성을 회개하고 대 제사장에게 다시 불을 구하여야 했다.

신약 시대에 예배는 구약 시대에 제사를 영적으로 전환하여 드리는 것이다. 구약의 희생제물인 제물을 십자가의 대속으로 입음을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 믿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성소에 나아가기 전 물두멍의 성결을 세례로 이루심을 믿는 의인의 신분을 가진 자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대면하는 성소에 들어가 향연 떡상 등대를 켜는 성소의 생활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3.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적인 제사이지 인간이 즐기는 종교 축제가 아니다.

 

제사를 통해 인간이 즐기는 축제의 제사는 바알 신앙이었다.(출 32:4-6)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 놀더라

출애급 때에 모세가 시내산에 계명을 받으러 갔을 때 40여일이 자나도 돌아오지 않게되어 백성 일부가 선동하여 송아지 우상 바알 우상을 만들고 낙성식 축제를 했다. 이러한 축제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점점 문화로 정착되면서 교회 예배도 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 예배가 점점 축제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4. 찬양과 복음성가는 대상이 다르다.

 

찬송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노래이고 복음 성가는 창조주 하나님과 대속의 구원의 복음을 사람에게 전하는 전도의 방편이다. 그런데 찬송가 복음성가 구별하지 않고 예배 시간에 찬양으로 드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예배의 경건성보다 드리는 자들의 즐거움에 맞추어 부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엘리아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만이 제물을 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왕상 18:37-38)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찬송가와 복음 성가는 성질상 다르다 찬송가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고 복음 성가는 대상이 인간이다. 찬송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의 예찬이고 복음 성가는 주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노래로 전하는 방편이다. 찬양은 예배의 대상이고 복음성가는 전도의 대상이다.

복음의 핵심은 우리 구주 예수님을 대속을 믿고 구원을 받읍시다. 이다 이 복음을 노래로 증거 하는 것이 복음 성가이다.

 

 

5. 찬양과 복음 성가는 작시 자가 다르다.

 

찬송가의 시는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작시되었다. 그러기에 삼위 하나님께 영광이다. 곡도 오락성이 아니라 섬김의 신앙과 경건 성으로 이루어진다.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조심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시 89:7)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 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 이다 (시 2: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4:4)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찬송가 노랫말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 대한 예찬과 감사와 간구이이다. 성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예찬, 우주 통치에 대한 예찬 그의 창조물 중에 인간을 통치하심에 대한 예찬, 구주를 주신 은혜에 감사, 인간을 사랑하심과 도우심에 대한 감사. 창조주 되시고 아버지께 경배로 인간에게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 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그 주신 은혜 안에서 창조주 되시기에 아버지 되시기에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겠다는 신앙 고백이다.

 

그리고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예찬인데 나를 구속하사기 위해 대속을 이루신 은혜에 대한 예찬과 감사가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승리의 찬가가 다수이다. 그리고 나의 왕 되시고 구주되심을 믿는 신앙고백, 영원히 주님과 같이 살겠다는 신앙고백과 주님의 제자 되어 살겠다는 나의 삶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서 승리 죽음에서 승리의 개선가이며 소망 안에서 위로이다.

또한 성령의 하나님께 대한 예찬인데 교회를 세워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언제나 교회를 이끌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나를 거듭나게 하신 은혜에 감사 감화로 능력으로 도우신 은혜에 감사 나를 감화하여 인도하시고 내 안에서 심판을 이루신 섭리에 대한 감사이다. 능력으로 도우시는 은혜의 감사이다 간구이다.

 

복음성가의 작시 자는 구별이 없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작시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은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누구나 작시할 수 있다. 그 작시 자 가운데는 이단성이 있는 것도 있고 불신앙 적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신학적으로 결여된 것들도 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찬양은 신령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 또한 지리를 통해 받은 은혜의 감사와 진리를 통해 깨달은 죄를 용서 받은 감사가 드려져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복음 성가도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져야 한다.

구약 시대에 찬양시는 하나님의 인정하는 신앙인들의 시이다. 다윗, 솔로몬 왕을 비롯하여 찬양시 작시자로 정해진 아삽, 여두둔 헤만 예수아 등에 의하여 작시되었고 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작시되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경건 생활했던 어거스틴누스나 그레고리등의 수도사들 사제들로 인하여 작시되었다. 그리고 종교 개혁 이후부터는 루터를 비롯하여 경건 생활 하는 자들로 하여금 작시 되었다. 그러나 복음이 자유롭게 전해지면서 은혜생활 하는 자들이 작시를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성경에 합당하고 진리에 합당한 것을 구별하여 찬송가로 구별해 놓았다.

 

콘스탄틴 1세 황제로 하여금 기독교가 공인되고 교회가 급성장 하면서 많은 성가들이 불리워졌다. 그중에 암브로시우스 교부가 그 가운데 폅집하여 예배에 불려지게 되고 특히 그리고리우스 1세에 의하여 예배용 성가가 편집되어 공식적 찬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6.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드려야 한다.

 

아벨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제사를 사제인 아버지 아담에게 배운 그대로 드렸다

.(창 4:4-7)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광야 어디에나 계시지만 한 곳을 정하여 성막을 짓게 하섰고 거기서 백성들을 만나셨다.

(출 33:7)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출 33:8)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출 33:9)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출 33:10)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출 33:11)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제사 드리려고 하다가 죽게 되었다.(레 10: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제물을 태우려 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것은 사죄권을 훼손한 불신앙 죄이기 때문이다. 제물을 태우는 것은 사죄를 의미하는데 사죄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의 불로 제물을 태워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이면 아무 불이든지 사죄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사죄자인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중죄였고 중죄였기 때문에 그들을 제사장으로 남을 수 없었다.

 

7. 성경 66권 정경 결정의 원리가 있다.

성경 말씀 66권도 구약 시대의 전통적인 계시의 말씀과 신약 시대 이르러 난발 되어 있는 많은 문서 가운데 엄격한 분리 원칙에 의하여 66권이 구분 되었다.

 

1) 영감성(靈感性)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하나님의 글이어야 한다. 영혼을 구원에 대한 말씀이어야 한다. 성경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영이신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글이어야 한다.

 

2) 신적 기원성(神的 紀元性 師徒性)이 있어야 한다.

신적 기원이라는 말은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참 선지자의 글이어야 하고 참 사도의 글이어야 한다. 선지자는 라비아(איבנָ)인데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자, 하나님의 명을 받은 자,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를 말한다. 공식으로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은 선지자이어야 한다. 사도는 아포스 톨로스(αποστολος)인데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르심을 받은 제자, 그리스께 보냄을 받은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자이다.

위의 선지자의 글과 사도들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님께 부름을 입은 자들의 글이어야 한다.

3) 교회의 보편성(敎會 普遍性)이 있어야 한다.

​구약 성경은 선지자들이 받은 글이어야 하고 회당에서 인정하고 사용된 글이어야 한다. 신약은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이 또는 그의 보냄을 받은 자들이 인정하는 말씀이어야 하고 초대 교회에서 사용된 글이어야 한다.

4) 진리의 통일성(眞理의 統一性)이 있어야 한다.

​동일한 창조주 하나님이어야 하고 한 하나님께서 그 뜻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진리이어야 하고 구속에 진리가 통일되어야 한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한 하나님 한 구속 한 율법이어야 하고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탄생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 부활의 사실과 심판의 약속 영원한 삶의 진리가 통일되어야 한다. 

5) 계시의 보존성(啓示의 保存性)이 있어야 한다.

​원본의 권위에 근거하여 본문이 변질이나 훼손됨이 없이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전수되는 과정에서 더해 질수 있고 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66권 정경 외에도 성경과 같은 문서가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① 에스스라 상, ② 에스드라 하, ③ 토비드, ④ 유딧, ⑤ 에스더 부록. ⑥ 솔로몬의 지혜서, ⑦ 집회서(시락의 자손 지혜 예수의 지혜서) ⑧ 바룩, ⑨ 예레미아 서신, ⑩ 아사랴의 기도와 세 청년의 노래, ⑪ 수산나, ⑫ 벨과 뱀, ⑬ am낫세의 기도, ⑭ 마키비 상, ⑮ 마카비 하,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정경 결정 원리에 맞지 않으므로 제외되었다. 그러나 참고로 쓰였다.

8. 예배 시 찬양도 정해진 찬양시로 찬양해야 한다.

 

찬송가는 전통적으로 전래된 것도 많지만 복음성가에서 편집된 것도 만이 있다. 복음 성가에서 편집 된 것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심의하여 선별하여 합당하다고 판단 된 것을 정립한 것이다.

신앙 고백도 우리가 다 아는 진리이지만 진리를 보전하기 위해 니케야 회의에서 정해서 그 신앙 고백을 기준으로 하여 진리를 보전해 왔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복음성가로 예배 시간에 찬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해진 에배용 찬송가는 성경과 함께 제본되어 있다. 찬양은 그 정해진 찬송가로 드려야 한다. 구시대 발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성경은 구시대의 말씀이다. 최고의 구시대 아담 시대 주신 말씀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 때에 주신 말씀이다. 보수 신앙이란 구시대에 주신 진리를 변질시키지 않고 그대로 믿고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편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본질이 변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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