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코리아 21.07.03 05:57
교회의 임무
그리스도는 지상에 몸 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해야 할 임무를 부여 하셨다. 그 임무가 여러 가지겠으나 크게 5 가지로 생각해 보겠다.
1. 하나님께 예배.
성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도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정하셨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창조하심에 감사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내 집은 만민이기도하는 집이라 했다.
(사 56:6-7)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마 21:11-13)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환난 날에 부르면 응답하신다 했고 환난에서 건지신다고 했다. 그리하여 어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다.
[시 50:14-15]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생활을 형식적으로 억지로 행했다. 그러자 너희가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했다.
[말 2:2]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요한 계시록 전체는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에 진행된다. 그리고 성도의 최후의 영원한 생활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이다. 그 나라에서 살아야 할 자들에게 이 땅에서 예배 생활은 그 영원한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생활의 기본이며 목적이기도 하다.
[계 21:1-4]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의 임무가 있다.
양육 의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분부한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을 양육하라는 말씀이다.
(마 28:19-20)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백성을 교회에 위임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양을 먹이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을 위하여 양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양을 먹이는 것이다.
3. 복음 전파의 의무가 있다.
복음 전파 의무
신약 성경 사도행전은 진리 전파의 역사이다 교회는 진리에 대하여 잠잠하면 안 된다. 진리 전파를 회피하던 요나를 생각해보라 스데반을 시작으로 하여 모든 주님의 재자들은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데 목숨을 바쳤다.
[막 16:15-16]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마28:18-20)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 전도이고 선교이다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는 우리 인간에게 복음을 맡겼기 때문이다.
(행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10:39-41)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 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는 고넬료의 사건에서 잘 알 수 있다. 가이샤라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고넬료를 택했다. 고넬료는 로마인으로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온 가족이 그리스도를 믿었고 구제도 많이 했고 기도도 많이 한 사람이다. 많이 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도이고 구제였다 이 사실을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런데 고넬료에게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해 오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으로 청하여 베드로는 와서 복음을 전한다. 주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이 복음을 전했다.
천사들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도 다 알고 있다 살아나신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천사가 그 사실을 고 복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했다. 이유는 이 복음을 천사에게 맡기지 않고 인간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
진리 전달이 바로 전도와 선교이다. 교회가 선교에 너무 인색하다. 이스라엘민족이 다 믿지 않았어도 선교했다.
4. 진리 수호의 의무가 있다.
(마7:15-19)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갈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임무인 구약 성경을 전수받아 지키며 보전하였다. 선지자들이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구약 성경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간직하여 인류에게 제공했다.
또한 교회 역사에서 중세시대에 진리가 무너져갈 때 종교개혁은 바로 진리수호였다. 진리가 무너져 가는 암흑시대에 진리 수호자들은 진리를 재산보다 처자들보다 자신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보호해 왔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했다. 이들은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하늘로서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 시대 교회의 슬픈 일은 진리를 소홀하게 여기는 처사들이다. 강단에 진리가 전달되지 못하고 현실의 것을 대치하는 모습으로 교회의 장래가 어둡다. 이 시대에 전해지는 제일 많이 전해지는 메시지가 축복을 받으라 하고 대부분의 메시지가 사랑하라 헌금 많이 하라 충성하라 봉사하라 로 일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믿는 자의 생활이다. 진리는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을 바로 전해야 하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바로 전해야 하고 우리의 구원의 도리가 바로 전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 구원받아야 할 인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 우리에게 역사 하시는 성령의 하나님, 역사의 종말, 우리의 생명인 부활, 우리의 소망인 영생과 찬국이 바로 확실하게 전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책임을 지고 인 진리를 전하는데 힘을 기우려야 한다.
진리가 없는 교회나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만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진리 위에 선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 하니라
(마16:18-19)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했다.
5. 윤리 이행의 의무가 있다.
윤리 이행 의무
기독교의 윤리 지침이 십계명이다. 그 십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실 때 돌판 하나에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돌판 하나에는 인간에 대한 계명으로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계명을 위로 하나님 사랑 아래로 이웃사랑으로 설명하셨다.
마 22:37-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으로 한분 아버지이시고 창조된 모든 인간은 이웃으로 또는 형제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독교의 윤리를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 인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기독교 윤리는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1) 첫째 윤리는 하나님 사랑이다.
하나님은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생명을 주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아버지 되신다.
창 2: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םדַאָ 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은 아팔(אֵרֵץ)이란 말인데 인간을 만든 흙이다.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셨다고 했는데 생기는 네풰쉬 카야(שפְנְ היָחַ)인데 숨, 기운, 영기(靈氣)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한 조각을 의미한다. 인간은 아팔이란 흙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의 한 조각인 영을 불어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흙 즉 사람이 된 것이다.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말은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므로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하셨다는 말이다. 흙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만드시고 기운을 불어 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셨다는 말이다. 인간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의 기운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버지 되시고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존 할 있도록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창 1: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고 복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허락하셨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계명을 주신 것이다.
(신 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사랑은 하나 되는 윤리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약속을 어기고 떨어져 타락했다. 타락 했다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다시 만날 수 없도록 떨어져 나가므로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하여 번제를 드리도록 했다. 번제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계명 윤리 이행이다.
2) 부모님 사랑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하여 회목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 번제는 제물을 하나님께 태워 드리지만 화목제물은 인간이 나누어 먹는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화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아버지 되시고 보모님은 낳아주신 아버지 되시고 어머니 되시고 그리고 길러주신 분들이시다. 내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기 까지 길러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 공경하는 것이다.
[출 21:15-17]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6)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17)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9)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엡 6:1-3]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 사랑은 이웃 사랑에서 최우선이다. 부모를 치거나 학대 하는 자는 사람을 납치한 자나 같이 여기므로 반드시 죽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가 죽는다 해도 자기 죄로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경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을 약속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다.
3) 형제 사랑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한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한 조상을 가진 민족이기에 모두 형제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 적인 면에서 같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모두 한 형제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믿는 자들은 서로 사랑하라 했다
(요 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구원하신 주님을 믿는 다면 형제 사랑을 마땅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요일 3: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사랑의 부재에서 된 것이라고 했다.
(롬 14:15)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자는 예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마 5:22-2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형제의 허물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용서하라고 했다. 용서는 화목의 방편이다.
[눅 17: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위의 말씀에 대하여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무조건 용서 하라는 말이 아니라 돌아와서 회개할 때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한 점을 생각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고 했다.
(요일 3: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지극히 적은 자 하나라도 실망시키지 말라고 했다.
[눅 17:1-2]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주님께서 장차 심판 하실 때에 지극히 적은 자의 사랑을 기준으로 하여 심판하시겠다고 했다. 이 말씀은 오른 편에 있는 양과 왼편에 있는 양들을 갈라놓으시고 오른 편에 있는 자들은 지극히 적은 자에게 사랑을 베푼 자들이며 왼편에 있는 자들은 지극히 적은 자들에게도 사랑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다. 이 사랑의 윤리이행 여부가 오른편 왼편양의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4) 원수 사랑이다.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물을 마시게 하라 했다.
(잠 25: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원수사랑은 믿는 자의 차원이 높은 사랑이다. 인간은 원수가 배고파하거나 목말라 하면 기쁘게 생각한다. 원수가 잘되면 속상해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기에 본성을 뛰어넘어 원수를 사랑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원수인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원수도 사랑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원수를 사랑할 뿐 아니라 축복하고 기도하고 선대하라고 했다.
[마 5:44-45]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눅 6:27-28]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를 박해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했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나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를 본받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에 원수들에게나 자녀들에게나 똑같이 빛을 비추며 비를 내려 존재하게 하시기 때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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