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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건강

코로나 백신 개발한 과학자, 말라리아 백신도 성공 임박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1. 04. 25. 09:23 

     

    [사이언스카페] 임상 2상서 77% 예방 효과 거둬

    말라리아 옮기는 얼룩날개 모기. 사람 피를 팔 때 말라리아 원충이 사람에게 전달된다./위키미디어

     

    코로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과학자들이 또 다른 치명적인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신무기를 개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애드리안 힐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랜싯에 “말라리아 백신이 임상 2상 시험에서 77%까지 예방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힐 교수는 앞서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 개발에도 참여했다. 논문은 아직 정식 출판 전으로 먼저 인터넷에 공개됐다.

     

    ◇ 해마다 40만명 아기 목숨 앗아가

     

        얼룩날개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한 해 4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옮겨간 기생 원충이 심한 고열과 오한을 유발하다가 심하면 목숨까지 빼앗는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서부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생후 5~17개월 아기 450명을 대상으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했다. 아기들은 세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고용량 백신. 두 번째 집단은 저용량 백신을 투여했다. 백신은 4주 간격으로 세 번 접종하고 12개월째 면역증강용 백신을 마지막으로 투여했다. 연구진은 두 집단을 광견병 백신을 투여한 세 번째 집단과 비교했다.

     

    임상 시험 결과 고용량 백신을 투여한 146명 중 말라리아 감염자는 38명이 나왔다. 즉 말라리아 예방효과가 77%였다. 반면 광견병 백신을 투여한 147명은 105명이 말라리아에 걸렸다. 저용량 백신 투여군은 예방효과가 74%로 조금 낮았다.

    임상시험을 진행한 부르키나 파소 보건과학연구소의 할리두 틴토 박사는 “이번에 거둔 예방효과는 지금껏 어떤 말라리아 백신도 달성하지 못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140건의 말라리아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됐지만 접종 1년 뒤 56%의 예방효과를 보인 게 가장 좋은 성과였다. 영국 제약사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가 개발한 이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 지원을 받아 2019년부터 말라위, 케냐, 가나에서 접종됐다. 하지만 WHO는 2030년까지 예방효과가 75%인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백신이 처음으로 WHO의 기준을 충족한 것이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올해 말부터 부르키나 파소와 말리,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 48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힐 교수는 “임상시험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내년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고 2023년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프라키 부르키나 파소에서 방역요원들이 말라리아 치료제를 배포하는 모습을 어린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말라리아는 해마다 4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피해자 대부분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다..AFP연합

     

    ◇ 맥주 발효균으로 백신 제조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맥주 발효에 쓰는 미생물인 효모를 배양해 말라리아 백신을 만들었다. 효모 유전자에 B형 간염 바이러스의 단백질과 말라리아 원충의 표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함께 끼워 넣었다. 효모가 만든 B형 간염 바이러스 단백질은 나중에 스스로 결합해 바이러스와 유사한 입자가 되는데, 표면에는 말라리아 원충 단백질이 튀어나온 형태가 된다. 이를 인체에 주입하면 면역반응이 일어나 나중에 원충이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세계 최대의 백신 제조사인 인도 혈청연구소(SII)와 손잡고 임상 3상 시험용 말라리아 백신을 만들고 있다. SII는 내년에 2억회 접종분의 백신을 생산할 계획이다. 백신 효과를 높여줄 면역증강제는 미국 노바백스가 코로나 백신에도 쓴 식물성 성분인 사포닌이다. 이 역시 노바백스가 코로나 백신과 함께 생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WHO 글로벌 말라리아 프로그램의 페드로 알론소 책임자는 사이언스지에 “매우 긍정적인 뉴스”라면서도 “아직 450명밖에 시험하지 않아 정말 흥분할 정보를 얻기까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대의 로엘 딘글라산 교수도 임상 결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번 임상 결과에 아기들에게 감염된 말라리아 원충의 유전정보 해독 결과가 나와 있지 않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앞서 개발된 백신들도 모기가 옮기는 원충을 목표로 했지만 종류가 다른 원충이 오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GSK 백신의 효과가 최근 36%까지 떨어진 것도 같은 이유란 것. 딘글라산 교수는 처음부터 원충의 유전자 형태에 맞춰 백신의 단백질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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