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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모성애(母性愛)

[오늘의 묵상 - 292] - 고귀한 모성애(母性愛)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6)

사순절 셋 째 주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 하면서 이 주간도 경건과 검소의 삶을 이어갑시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모성애입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 내어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엄마는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녀를 구하려고 물속이든 불속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따라서 세상에 모성애만큼 귀한 사랑은 없습니다. 엄마는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들 입에 먹거리를 넣어 주고, 자기는 헐 벗으면서도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입힙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허약한 몸을 이끌고 밤낮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보석과 같이 마음속에 늘 그리워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6.25 사변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때 강원도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미국 선교사 부부가 Jeep을 타고 부산을 향해 남하(南下)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다리 앞에서 눈  덮힌 다리가 안전한지 점검하기 위해 잠시 내린 선교사는 다리를 둘러보던 중, 다리 밑에서 갓난 애기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교사는 본능적으로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젊은 엄마가 벌거벗은 몸으로 자기가 벗은 옷으로 갓 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는데, 엄마는 이미 얼어서 생명이 떠났고 아기는 울고 있었습니다. 

 전쟁 통에 만삭의 엄마는 출산 준비도 하지 못하고 피란길에 올랐다가 산통(産痛)을 느끼고 다리 밑으로 내려가 혼자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쌓아 줄 포대기가 없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아기를 싸서 안고, 자기는 눈보라 속에서 결국 얼어 죽고 만 것입니다.

 선교사는 젊은 엄마의 품속에서 아기를 꺼내 차로 돌아와 부산까지 내려온 후에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미국 본가로 돌아 왔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이 아기를 입양하고 Jeff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Jeff는 선교사 가정에서 무탈하게 잘 자랐습니다. 

가끔 Jeff는 선교사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는 미국 사람인데 왜 나는 동양 사람이야?”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선교사는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그 때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Jeff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 한 Jeff는 조용히 엄마 아빠에게 말 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 했으니 약속한대로 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 했습니다. 

그 때 선교사 부부는 차분하게 1.4 후퇴 때, 강원도 어느 다리 밑에서 너의 생모가 너를 낳고 너를 감쌀 포대기가 없어서 엄마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너를 감싸놓고 엄마는 그 곳에서 얼어서 생명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가 너를 데리고 와서 양자로 삼았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Jeff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한동안 흐느껴 울었습니다. 한 참 후에, “Mommy, Daddy, 내년 여름 방학 때 제가 태어났던 그곳에 저를 데려다 주실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해 여름 방학 때, 선교사 부부와 Jeff는 한국으로 왔고, 옛날을 더듬어 그 다리가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옛날 다리는 이미 철거되어 없어졌고, 멋있는 철근 콘크리트 다리가 건설되어 있었지만, 강원도 산골 주변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 부부와 Jeff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그대로 있는 큰 바위 앞에서, “여기가 네 엄마가 너를 낳고, 엄마의 옷으로 너를 감싸 놓고 동사(凍死)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참을 묵묵히 서서 눈물을 흘리던 Jeff는 서서히 양복저고리를 벗어 바위 위에 폈습니다. 이어 바지를 벗어 그 위에 놓았습니다.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를 벗어 폈고, 이어 넌닝 셔츠까지 벗어 그 위에 펴 놓았습니다. 팬티만 걸친 채, Jeff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어머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어요.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어요.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나를 살리려고 대신 죽으신 나의 어머니!” 하면서 통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마침, 그때 미국에서 한국에 특파원으로 나온 어떤 방송사 기자가 그 곳을 지나다, 다리 밑에서 두 사람의 서양 사람과, 팬티만 입은 젊은이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기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Jeff는 한 동안 울고 나서 서서히 옷을 다시 입고, 올라왔습니다. 기자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선교사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기자는 미국에 돌아가서 그것을 특종으로 보도했고 그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대한 어머니의 모성애를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동사하면서까지 자기의 아들을 살린 이 일은 모성애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고 수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때가 많습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발가벗고 죽어간 엄마를 생각하며 입은 옷을 다 벗어 바위 위에 펴 놓고, 얼마나 추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며, 얼마나 아리고 쓰렸냐고 통곡한 Jeff와 같이 주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단 한 번이라도 통곡하며 울부짖었던 일이 있었던가요?

 정말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눈물 흘리면서 그 은혜에 감사한 일이 있으신가요? Jeff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죽은 것 같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시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Jeff의 어머니가 희생하여 Jeff가 살았던 것같이,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희생 시켰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 없이 나의 영생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진정으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참되고, 거룩한 삶을 이어 가야 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깊은 감격의 삶을 어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