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론
발행일2021.02.17필자구인회소속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전세계에서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2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모습들을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보낸 세월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상황에서 전개된 의외의 장면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 각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을 예언해온 어떤 전문가는 미국이 감염병 확산에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말로 자신이 받은 충격을 전하였다. 공적인 의료보장제도를 일찍이 발전시켜온 유럽 복지국가들이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실태를 전하는 외신 보도에서 느끼게 된 당혹감도 잊기 어렵다.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인 감염병 대처는 선진국들의 참담한 실패와 놀라운 대조를 이룬다. 정부는 성공적인 초기방역으로 감염자 숫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였고, 그러한 성과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도 큰 몫을 하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는 마이너스성장을 보였지만, OECD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성과였다.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플러스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렇게 코로나19 대처에서 나타난 성공과 실패는 각 사회의 건강성을 드러내 준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은 인종차별로 내부가 갈라진 지 오래됐지만, 계층 간 불평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세계화의 수익을 독점하는 지배엘리트와 쇠락하는 하층대중의 갈등이 브렉시트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각국 정부들의 공공예산 삭감 등 긴축정책의 고통을 감내해온 대중들의 불만은 국수주의적 극우파 정치세력의 진출로 이어졌다. 이러한 서구와는 달리 산업화의 성공과 민주주의의 진전 속에서 부상해온 중산계층이 21세기 아시아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한국이 있다.
한국의 성공, 어디까지 이어질까?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낙관주의는 오랜 기간 우리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었지만, 최근에는 불안과 불만의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금보다 미래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보이는 응답자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자신보다 자녀세대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같이 줄었다. 지난 20년간 양극화가 심각해진 현실에서 계층상승의 성공담은 저 먼 곳에 있는 남들의 이야기일 뿐 자신에게 남는 것은 자괴감뿐이다. 이런 차에 코로나19 감염병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
재난의 위협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다가갈지 모르지만, 재난의 고통은 심하게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취약층은 코로나19 감염을 피하는 것도 힘겨웠지만, 대유행이 몰고 온 경제적 충격에는 더 약하였다. 작년 봄 고용통계에 따르면, 감염 확산 두어 달 만에 1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의 대다수는 임시, 일용직, 특수고용 노동자,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들이었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 최악의 경제위기 때에도 대량실직이 일어났지만, 당시 희생자들이 금융권과 대기업의 안정된 고용층이었던 점과 대비된다. 정부지원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실업수당으로 생계를 보장받은 서구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우리의 코로나19 실직자들은 사회안전망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였다.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으로 우리 실직자들은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한국의 초기방역 성공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사회를 갉아먹는 불평등 바이러스
얼마 전 국제비영리기구인 옥스팜은 “불평등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종과 성에 따른 격차를 증대시켰고,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켰다. 세계의 백만장자 거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회복하는 데 아홉 달이 걸렸다고 한다. 이에 비해 빈곤층으로 전락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경제적 회복을 이루는 데에는 10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한쪽에는 IT와 플랫폼 경제의 대기업들이 평소보다 넘치는 수익을 올리고 부동산과 주가 상승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빚이 쌓여가고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궁지에 몰린 이들의 사정이 곧 좋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경제적 하락과 빈곤의 경험은 시간을 끌수록 사람을 갉아먹는다. 사회안전망의 지원 없는 사회에서 실직은 좌절과 가정불화, 사회관계 해체로 이어진다. 수입의 단절은 굶주림과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고, 절망과 고립을 낳는다. 이렇게 일자리와 소득의 상실은 많은 개인과 가족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전환기의 한국사회, 그 대책은?
한국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빨리 벗어났지만, 위기 과정에서 새로 형성된 사회시스템은 우리 시민 삶의 질을 낫게 하는 데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환경이 악화되면서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직장인들은 이른 나이에 조기퇴직 압력에 놓이게 되었다. 취업을 위한 무한경쟁은 대학입시 과열을 낳았다. 젊은 시절 고용이 불안정해지니 노후 생활안정도 어려워지고 심지어 자살률도 높아졌다.
이제 한국은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중반전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플랫폼경제 확산 등 고용의 다양화와 불안정 증대, 중간층 일자리 소멸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 등 기술변화 시대의 어두운 면도 커지고 있다. 중장년의 재직자들은 새로 요구되는 직무능력 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에 처하고, 청년 구직자들은 한층 좁아진 취업문턱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간 우리 사회 중산층의 일각을 차지하며 안전판 노릇을 하던 소상공인 자영업의 쇠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환의 시기를 직시하고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가?
작년 중반 정부는 디지털경제와 저탄소 그린경제 전환을 지원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한국판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감염병 유행의 시기에 새로운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한 것이나, 뉴딜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나 심상치 않은 시도로 보였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에 빠진 미국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사회의 개조 프로그램으로서 뉴딜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에 지금까지 발전해온 미국의 주요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이 출범하였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조치들이 이루어지는 등 여러 개혁조치가 실시되었다.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상황에서 전후 영국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 베버리지 보고서만큼이나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한국판뉴딜은 그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도전 앞에서 시민들의 사기와 힘을 북돋을 수 있을까? 한국판뉴딜이 아직 초기단계에 있고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비전은 고용안전망 제도 확충이라는 협소한 과제에 갇혀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한국판뉴딜이 시민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는 한국사회 개조계획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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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과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구인회소속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발행일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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