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 5. 29 매일경제
‘인터넷만 잘하면 대박이 나던 시대는 끝났다.’
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의 주장이 현지 소셜미디어상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 벤처캐피털인 파운더스펀드의 매니저인 존 루티그는 지난 4월 말 자신의 블로그에 ‘순풍이 사라졌을 때(When Tailwind Vanish)’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인터넷 또는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흐름에 올라타기만 해서는 스타트업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넷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은 시장에서 끌어줘서가 아니라 (Pull) 회사 스스로 엄청나게 열심히 해야만 (Push)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인터넷, 모바일 등의 산업이 이제 포화상태에 왔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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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부는 인터넷 버블 논란
그는 먼저 전 세계 인구가 이미 하루에 6시간 이상 인터넷을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은 18시간 정도인데, 그 중 삼분의 일 이상을 이미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PC방 등에는 6시간 이상 온라인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세계 평균으로 따지자면 6시간은 이미 포화상태에 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루티그 매니저는 “(구글 페이스북 등이 점유하고 있는 시간을 빼앗아 먹지 않는 다음에야) 새로운 인터넷 기업들이 탄생하기란 힘들다”고 말했다. 인터넷 산업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IT 공룡들과 스타트업들이 파이를 가운데 놓고 서로 경쟁하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100조원 정도 규모의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구글과 같은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면 이제는 인터넷 대신 바이오, 에너지 등과 같은 다른 산업을 노려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티그 매니저는 “내일의 실리콘밸리는 오늘날과 무척 다를 것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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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티그(사진=파운더스펀드 홈페이지)
이런 주장에 대해 실리콘밸리 현지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혹자는 스마트폰이 탄생하기 전 포화상태에 다다랐던 IT 업계의 모습과 지금이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서 새로운 공급이 열렸기에 망정이지,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인터넷 기업들은 지금의 위치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만일 애플과 같은 기업이 인터넷 산업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실제로 2007년 아이폰이 나왔던 애플과 가장 유사한 위치에 있는 기업은 자동차 기업인 ‘테슬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트위터상에서는 이 글이 공유되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 포화론’에 동의하는 이들의 말이 맞다면 현재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모두 과대평가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은 주가가 연간 순이익에 비해 100배 이상으로 형성돼 있다. 이는 아마존이 의도적으로 수익을 낮게 가져가면서 번 돈을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투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포화상태이며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이런 값비싼 주가가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스타트업과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생태계에서도 인터넷이라는 순풍이 사라진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까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성장 모델은 ‘순풍에 배를 띄운다’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드롭박스나 에어비앤비, 우버 등과 같은 유니콘 기업들이 성장한 것은 모두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거대한 기술과 경제 흐름 속에서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카카오 역시 그 성장 스토리는 ‘모바일’이라는 큰 흐름 덕분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컴퓨터만 쓰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갑자기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생긴 어마어마한 모바일 시장의 성장이 배경에 있었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생태계에서도 바람을 받아서 ‘파도’에 올라타듯 회사를 만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실리콘밸리 자금 흐름에도 변화 조짐
롤로프 보타 세콰이어캐피탈 파트너는 최근 테크크런치 이벤트에서 “스타트업을 볼 때 시장이 중요하냐 팀이 중요하냐에 대한 질문들이 많지만 일단은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성장하는 시장에 올라타는 것만큼 회사의 성장에 도움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배달음식 회사, 화상회의 회사 등과 같은 소위 ‘언택트’ 기업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인터넷이 포화상태라는 주장은 이런 성장의 거대한 흐름이 이제 멎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자금 흐름에 거대한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루티그 스스로도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이 이제 과거와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트업들도 인터넷이라는 성장의 조류 위에 올라탈 생각을 하기보다는 이제 아이폰을 만든 애플처럼 스스로 성장을 만들어 내는 거대한 혁신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루티그 매니저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현지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인구가 하루 6시간 온라인상에 있다는 통계는 아직 빈곤상태에 있는 수십억 명의 인구를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흥시장에서 인터넷 기업들의 성장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주장이 먼저 제기된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기업들이 인도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도 13억 명의 인구 중에서 아직 40% 정도밖에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은 실제로 수년간 ‘다음 십억 명 이용자들을 찾아라’라는 뜻의 ‘넥스트빌리언’ 프로젝트를 추구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은 아니라 하더라도 3D 프린터, 자율주행차, 로봇 등과 같은 또 다른 기계들의 인터넷 수요가 있기 때문에 디지털로 외연을 확장한다면 인터넷의 사용은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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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로프 보타 세콰이어캐피탈 파트너(사진=세콰이어 홈페이지)
대표적인 곳이 반도체 회사들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5월 14일(현지시간) 열린 자사의 콘퍼런스 GTC 2020의 키노트 연설에서 자동차 회사 BMW가 자사의 로봇 플랫폼인 ‘아이작’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BMW가 56초마다 하나씩 만들어내는 자동차를 수요에 맞게 최적화해서 주문자 맞춤형으로 생산해낼 수 있게 만든다. 공장 내에 수천 대의 로봇들을 설치해서 고객이 주문한 자동차 옵션들에 맞게끔 부품을 제때 조달하여 일사분란하게 인공지능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BMW의 30개 공장에서는 56초마다 한 대씩 차량을 만들어낸다”며 “모두 40개의 서로 다른 모델이 있고 수백 개의 옵션들이 있으며 3000만 개의 부품들이 2000개 이상의 협력회사들에게서 날아오는데, 이런 작업들을 빠르게 하려면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곳곳에 들어간 BMW 공장을 연결하는 것은 결국 인터넷이고 반도체다. 따라서 인터넷 산업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커질 것이라는 게 엔비디아의 생각이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이날 데이터센터가 자사의 회사 비전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은 성장할 것이고, 더 강력한 연산능력이 탑재된 강력한 데이터센터는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구글도 마찬가지의 관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구글은 ‘오피스용 부동산은 사지 않아도 데이터센터 투자는 늘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원격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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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발표한 로봇 플랫폼 아이작이 BMW 공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엔비디아)
이 논란을 접한 한 원로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에도 인터넷 포화론은 나왔었죠. 인텔이 사람을 무섭게 해고시킬 때가 있었고요. 2000년대 초에도 닷컴버블이 있었죠.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역시 인터넷 포화론이 대두됐어요. 하지만 그 시기마다 위대한 기업들이 탄생했습니다. 1980년대 인터넷 포화론이 나왔을 때 선마이크로, 시스코 등이 탄생했고, 닷컴버블 직전에 구글이 나왔죠. 2000년대 후반에는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모바일 시대를 열었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인터넷이 설령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실리콘밸리에서는 또 다른 혁신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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