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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기독교" 이제는 "그리스도교"로 바꾸어야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편집자 주
  한국의 그리스도교(영어: Christianity in Korea)는 크게 보면 두 집단으로 나뉘는데,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 2015년 기준 약 980만 명의 개신교와 약 380만 명의 천주교로 구성된다.
우리 예장뉴스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을 배경으로 한 인터넷 언론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을 비롯한 개신교 전체를 총칭 ‘기독교’라고 부른다. 반대로 천주교는 우주적,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가톨릭’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구교’라고도 부른다. 이는 ‘개신교’에 반대되는 뜻이다. 천주교는 중국말로 하나님을 ‘천주님’이라는 데서 왔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용어를 이렇게 개신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 문제의 서두를 이렇게 제기해보자 학생들이나 초신자들, 불신자들이 “기독(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즉시 답변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 용어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기독교’라는 용어 문제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분이 있어 화제다. 광주북문교회를 섬기는 김형곤 목사가 한일장신대에서 발행하는 논문집 '신학과 사회' 제33집 3호(2019년 8월 30일에 펴냄)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필자에 대한 소개는 논문 끝부분에 있음)

 

“기독(교)’[基督(敎)]이라는 용어의 형성과정과 이 용어 사용에 대한 반성적 고찰”

김형곤 목사(광주 북문교회, 전 한일장신대 교수)

1. ‘기독(교)’이라는 용어의 형성과정
    중국 한자어 ‘基督(敎)’[기독(교)]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그리스도교 선교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형성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음역어이다.
중국의 그리스도교 관련 역사는 635년 시리아 교회의 선교에 의한 경교(景敎)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중국을 향한 그리스도교 선교의 거대한 물결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선교이다. 1294년 최초의 가톨릭 선교사인 몬테코르비노(G. Montecorvino) 신부에 의해 선교가 시작된 뒤, 본격적인 선교는 16세기 후반에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특히 그들의 문헌적 성과와 함께 당시 가톨릭교회의 공인어인 라틴어 ‘Iesus Christus’(예수스 크리스투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음역어가 나타났다.

‘예수’는 1584년 문헌에 등장한 음역어 ‘예수’(熱所, 열소)를 거쳐 1610년대에 음역어 ‘예수’(耶穌, 야소)로 바뀐 뒤 이 용어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는 1584년 문헌에 ‘키리스두[도]’(契利斯督, 계리사독)로 음역된 뒤, 1636년 문헌에 ‘기리스두[도]’(基利斯督, 기리사독)로 음역되었고, 1700년경에 ‘기스두[도]’(基斯督, 기사독)로 축약하는 징조를 잠깐 보이다가, 1707년경부터는 첫 자와 끝 자만으로 축약된 ‘기두[도]’(基督, 기독)가 나타났다. 그 뒤 ‘기리스두[도]’(基利斯督, 기리사독)와 ‘기두[도]’(基督, 기독)는 중국 가톨릭 용어로 정착되었다.

한편, 1807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모리슨(R. Morrison, 馬禮遜) 목사를 통해 중국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었고, 그가 완역한 중국 최초의 신약성경 『耶穌基利士督我主救者新遺詔書』(야소기리사독아주구자신유조서, 1814)와 밀른(W. Milne, 米憐) 선교사와 함께 번역한 구약을 합친 『神天聖書』(신천성서, 1823)에서 그는 주님의 칭호를 ‘기리스두’(基利斯督)와 같은 발음의 변형된 한자어 ‘基利士督’(기리사독)으로 번역했고, 여전히 같은 축약어 ‘기두’(基督, 기독)를 사용했다. 그리고 제2차 아편전쟁 중인 1858년에 맺어진 중국과 미국 사이의 조약문서에서 개신교회에 대한 호칭으로 ‘기두’(基督)라는 말에 ‘갸오’(敎)를 붙여 ‘기두갸오’(基督敎, 기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1932년 표준중국어 언어정책 수립 이후, 그리고 특히 공산화되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수립 이후, 베이징관화(官話)를 표준관화(Standard Mandarin)로 삼은 현대중국어 普通話(보통화)에서 지금은 ‘基利斯督’(기리사독)을 ‘지리스두’로, ‘基督’(기독)을 ‘지두’로, ‘基督敎’(기독교)를 ‘지두쟈오’로 발음하고 있다. 언어의 변천에 따라 고유명사인 ‘그리스도’의 칭호가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용어를 사용할 때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속에는 주님 ‘그리스도’(기리스두)가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이러한 ‘중국어’식 음역어가 19세기 후엽에 우리 나라에 ‘우리말’식 ‘기독(교)’이라는 용어로 유입되었다. 다만, 1884년 이후 우리 개신 그리스도교 선교과정에서 다행히 성경 용어로는 주님의 칭호를 신약성경 그리스(헬라)어에 가깝게 음역했다. 로스(J. Ross, 羅约翰) 선교사는 1882년에 펴낸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에서 ‘그리스도’의 호칭을 ‘키리쓰토’로 표기하였고, 이수정 선생은 1885년에 펴낸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에서 ‘耶穌基督’이라는 한자어 위에 ‘예슈쓰크리슈도스’라고 표기함으로써 그 뒤 한국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 개신교회가 주님 ‘그리스도’의 칭호를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표기함으로써 되찾아드린 셈이다. 그러나 성경 밖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는 아직 되찾아드리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의 직능적 칭호를 독립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다행히 ‘기독’이 아닌 ‘그리스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용어가 다른 명사와 합해져 복합 명사화될 때에는 ‘기독’으로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기독교’라는 말은 더욱 그러하다.

2. 기독(교)’이라는 용어 사용의 문제점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중국에서 중국의 언어로 형성된 ‘基督(敎’[기두(갸오) 혹은 지두(쟈오)]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 발음마저 우리말식 ‘기독(교)’으로 굳어진 채 지금까지 사용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게 되었다.


첫째, 우리말식 ‘기독’은 외람스럽게도 ‘그리스도’라는 주 예수님의 직능적 칭호와 이름의 변질된 모습이어서
       ‘그리스도’의 정 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스도’((Xριστός)는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뒤 보내주신 바로 ‘그 메시아’(the Messiah)이신 예수님의 직능적 칭호를 고대 신약성경 그리스(헬라)어로 의역한 고유명사이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음역하여 축약한 ‘基督’에서 중국인들은 분명 축약되기 전의 ‘基利斯督’(기리스두)를 생각하며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그 용어에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식 ‘기독(교)’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주님 ‘그리스도’의 칭호와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유추해낼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차용언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적 없는 용어일 뿐이다.


둘째, 앞의 정체성과 결부된 문제로서 주님 ‘그리스도’의 칭호와 같은 고유명사는 원래의 이름대로, 아니면 적어도
       원래의 이름에 가깝게 불러드려야 한다.
이름은 곧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이라는 용어는 주님의 거룩한 칭호를 부지불식간에 바꾸어버리는 처사이다.


셋째, 선교적 차원에서 ‘기독교’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명칭 속에는 신앙의 대상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선교이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용어로는 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다. 이 용어로는 신앙의 대상이신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인식시킬 수 없고 오히려 흐릿하게 하거나 놓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이 용어는 그리스도교 선교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넷째,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적 차원에서 ‘기독(교)’이라는 용어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것은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적 차원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이 논문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대로 만일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나 손주가 “기독(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라고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중국에서 시작된 명칭의 유래와 형성과정을 설득력 있게 밝혀주면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 그렇게 설명해줄 수 있다고 해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그 근본문제가 해결되겠는가? 따라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다섯째, 용어에 대한 신학적·해석학적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
          뜻글자인 한자어 ‘基利斯督’이나 ‘基督’을 사용함으로써 주님의 칭호 ‘그리스도’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강화하거나 선명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독’이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무한한 성경적 신학적 의미를 오히려 제한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근원으로 향할(ad fontes) 뿐이다.


여섯째, 성경상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의 통일성 문제이다.
          우리 말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칭호가 원래의 칭호에 가깝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언어에서는 사실 ‘그리스도’를 ‘기독’으로 늘 바꾸어 부르고 있는 셈이다. ‘기독교’ ‘기독인’ ‘기독 학생’ ‘기독 청년’ 등 ‘기독’이라는 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언어는 사고(思考)를 표출하는 도구이지만 거꾸로 사고를 유발하고 형성하기도 한다. 대화에서 ‘기독교’라는 표현을 계속할 때와 ‘그리스도교’라는 표현을 계속할 때 나타나게 될 현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스도교’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누리며 인격적으로 만나며 그분의 통치 안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일곱째, 용어 사용자의 언어 주체성 문제이다.
          이제는 주님 그리스도를 우리의 언어와 정서를 가지고 정확하게 표현하여야 한다. 특히 표의문자인 중국어로는 정확한 발음을 나타낼 수 없는 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이라는 자음 14자와 특별히 풍성한 모음 10자를 가지고 있기에 어떠한 발음도 다 표기해낼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우리의 언어로 주님 그리스도의 칭호를 직접 표기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3. 간곡한 제안

   모든 문물의 전달과정이 그러하듯이 이 땅에 그리스도교 복음이 들어 온 당시로서는 이미 중국에서 형성된 ‘基督(敎)’이라는 용어를 우리말식 용어 ‘기독(교)’로 차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기독(교)’이라는 용어는 그동안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직능적 칭호와 이름 ‘그리스도’를 되찾아드릴 때가 되었다. 우리가 더이상 동아시아식 축약형 칭호인 ‘기독(교)’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말 성경에서처럼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도 주님 그리스도의 칭호를 바르게 부르며 그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드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독’이 앞에 붙는 복합명사들은 ‘그리스도’나 ‘그리스도교’ 혹은 ‘그리스도인’으로 옮겨 붙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기독인’은 ‘그리스도인’으로, ‘기독청년’은 ‘그리스도교청년’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수정된 언어생활을 통해서 삶의 현장에서 주님 그리스도의 인격과 신분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인식하며 누리며 주님의 임재하심과 다스리심(통치) 앞에 순간순간 무릎을 꿇고 순종함으로써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며 살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운동에 이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그것은 주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확고히 누리며 바르게 전하기 위해 고유명사인 주님의 칭호 ‘그리스도’를 회복하여 원래 음역어로 삼았던 ‘기리스두’(基利斯督), ‘기두’(基督), 그리고 ‘기두쟈오’(基督敎)라는 언어로 주님의 칭호를 불러드리자는 바람이다. 중국 교회 안에서 먼저 그렇게 부르게 될 때 교회 밖의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고 진정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주님 그리스도의 이름을 칭호로부터 시작하여 삶을 통하여 더욱 거룩하고 존귀하고 영화롭게 해드리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눅11:2b, 새번역성경)

 

 

필자 소개

  김형곤 목사는 법학을 공부한 뒤(법학박사), 장신대(M.Div., Th.M.)를 마치고 미국 프린스턴신학교(Th.M.)와 보스톤대학교(Th.D.)에서 수학했다. 이후 한일장신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윤리학’을 가르친다. 그리고 지금은 광주북문교회 위임목사로 섬기면서 ‘기독(교)’이라는 국적 불명의 차용언어 사용을 중단하고 고유명사인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4회 총회에 헌의되어 현재 교육자원부의 특별위원회에서 연구 중에 있으며 오는 제105회 총회에서 결의될 예정이다.


위키피디어의 설명


'기독'의 어원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의 중국어 음역인 '기리사독'(基利斯督)의 줄임말)은 현대 북경어 발음으로는 '지리쓰두'이지만, 구개음화하기 전의 옛 발음은 '기리스도'에 가깝다. 청나라 때에 '기'가 '지'로 전반적으로 구개음화하는 변화가 있었는데, 만주족 발음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예.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주장)이 있다.


그리스도교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에서 유래하였고, 신약성경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한국어로는 '예수 구세주' 또는 '예수 구원자'의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헬라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공식 석상에서 기름을 머리에 붓는 행위는 중동지역에서 직위를 수임받을 때 널리 사용되던 방식이었다. 왕이나 제사장들이 기름 부음을 받은 이들이었다. 세상을 구원할 왕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로는 '예호슈아 마쉬아흐'이고, 헬라어 표기는 '예수스 크리스토스'이고 한국어로는 예수 그리스도다. 히브리어는 이미 1세기경인 예수 시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사어(死語)가 되었고,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은 아람어와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다. 헬라어 '예수스'는 사어인 히브리어 '예호슈아'에 유래한 아람어식 발음인 '예슈아'를 헬라어식으로 발음한 이름으로 1세기 당시에 팔레스타인에서 통용된 이름이었다.

헬라어 '예수스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예호슈아 마쉬아흐'를 번역한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아람어인 '예수아 메쉬아'의 번역이다. '크리스토스'는 마쉬아흐(메시아)에서 전래되어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이다. 예호슈아는 '야훼의 구원'이라는 의미가 있고 마쉬아하는 '기름을 붓다, 바르다'의 의미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가 세워질 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구원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세기 당시 예수는 사어가 되었던 히브리어인 예호슈아라는 이름보다는 지배층의 언어인 헬라어식 '예수스'나 평민들의 언어인 아람어식 '예슈아'로 불리었을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인들의 말 또는 유태인들의 말로 기록된 언어는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이다.


기독교 교회의 명칭

'기독교'(Christianity)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개신교(Protestant)만을 일컫는 말로 흔히 사용되나, '기독교'의 실제 의미는 주요 분파인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개신교회 등을 포함해 유일신 야훼를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모든 종교단체들을 두루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