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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대화기술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김학수

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2020년 01월 03일(金)

                                                             김학수 DGIST 석좌교수·커뮤니케이션학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름’

                                                             

태어나 자랐던 곳에 아담한 집

                     

꿈과 시련 견딘 55년 만의 귀향

                   

나를 키운 것은 구 할이 ‘시름’

                     

칠십객이 되어서야 여유의 삶

                      

새해도 별의별 시름 안고 살 터

                    

시름만큼 발전하는 힘 없으니…                          


   55년 만이다. 

꿈과 시름의 세월을 견딘 귀향이다. 

등잔불 아래 ‘할매’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매’는 내가 입을 나일론 ‘빤스’ 하나하나에 주머니를 지어주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험악한 곳이라고 누누이 일러주었다. 

다음 날 입고 갈 빤스 주머니에 비상금을 찔러 넣으면서 서울 깍쟁이에게 다 털리더라도 이것만은 뺏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1965년 2월, 한·일 수교(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나라가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던 때다.

까까머리 시골뜨기가 고교 진학을 위해 한양 유학길에 오르면서 떠오르는 온갖 시름은 이미 차고 넘친 상태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문경은 조선 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科擧) 보러 한양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문경새재를 넘는 험한 버스 길보다 서울까지 12시간이 더 걸리긴 하지만 김천까지 내려가서 서울로 올라가는 안전한 열차 길을 택했다. 

그렇게 새벽녘 간이역에서 가족과 이별했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키운 건 구 할이 시름’이라고 바꿔 읊고 싶다. 


간이역을 떠날 때까지, 태어나고 자랐던 바로 그곳에 아담한 집을 지어 해를 넘기기 며칠 전 마침내 등기를 마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할 수 있게 되기까지, 55년 긴긴 세월은 시름의 연속이었다. 


이 순간도 삶의 걸림돌을 둘러싸고 일렁이는 모든 시름을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을 해탈하자고 나섰던 부처, 예수, 달마, 아우구스티누스, 노자…, 

이른바 모든 성인이 결국 실패하지 않았는가? 


거꾸로, 시름만큼 생존에 동력(動力)이 될 수 있는 게 또 무엇이 있는가?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1992년 작 ‘흐르는 강물처럼’은 미국 시카고대 영문학 교수 노먼 매클린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두메산골 중 하나인 몬태나주(州) 미줄라에서 숭어 낚시를 즐기던 시골뜨기가 동부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이별하고, 나중에 시카고대 교수로 은퇴한 뒤 고향 강가에서 다시 낚싯대를 잡는, 지극히 잔잔한 이야기다. 


이삼십 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영화를 서너 번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 얼굴에 진 깊은 주름들에서 그가 도회(都會)에서 겪었을 온갖 시름을 진실로 헤아리고 싶었다. 


고향에 새집을 짓기로 했을 때, 건축가는 내가 어떤 식의 여생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한 의견을 담은 한 쪽의 에세이를 희망했다. 

경북 문경의 깊은 산골에 자리 잡은 마을 주위의 높디높은 산세와 임란(壬亂) 후 살기 시작한 역사는 선조들이 얼마나 고달프게 생존을 이어왔을지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옛일에 괴로워하기보다, 집 안에 들어서면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고 옛 동무들과 오순도순 더불어 지내고 싶은, 덧붙여 세계를 떠돌면서 받은 상처들을 달랠 수 있는, 조금은 한국적인 감성(感性)의 스페이스를 꾸며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층 서재에서는 자연을 향한 관조(觀照)에 곧바로 빠져들 수 있고, 온갖 세념(世念)이 사라지면서 순수한 이성을 살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모아진 심사(深思)를 통해 세상의 시름들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창안하고 그것을 글 알갱이로 토해낼 수 있는, 조금은 서구적인 지성(知性)의 스페이스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건축가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빛의 집을 구현했고, 지역의 신망 높은 시공사가 일을 맡았다. 그러나 집을 짓다 보면 예상치 못한 시름들에 시달리면서 10년 일찍 늙는다는 전설(!)을 실감했다. 

고향 땅에 새집을 지으면서 겪은 이런 일들이 아니더라도 생을 다할 때까지 시름을 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 시름을 해결하기 위한 ‘어떻게(How)’라는 또 하나의 시름에 더 괴로워하지 않을까.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간다는 말은 사실상 후자의 시름에 대한 시달림을 함축한다. 

그래서 삶의 힘은, 삶의 보람은, 나아가 삶의 행복은 그 ‘어떻게’에 대한 사전 안무(按舞)에서 나온다는 원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귀청을 때렸다. 

출근길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다. 

전직 대학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도록 나는 그런 노래가, 그런 가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조교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무척 놀라워했다. 그제야 아름다운 음악마저 잊고 너무 오래 바쁘게 살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칠십객이 돼 비로소 어릴 적 즐기던 자연의 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재잘거리는 참새 소리, 심지어 겨울밤에 빛나는 달님과 별님의 소리마저 듣는 듯하다. 벌써 봄이 오는 소리를 기대하고 있다면 너무 성급한가! 


2020년 새해에도 나는 별의별 시름을 품고 살리라 다짐한다.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 시름에서부터 나라와 세계의 시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극복하기 위한 ‘어떻게’에 대한 또 다른 시름만큼 인간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 주고, 발전시켜 주는 힘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네 개의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강조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는 그 ‘어떻게’가 유도하고 몰아치는 힘이 결국 생존을 좌우한다.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도 그것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바람의 노래’가 노래한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하는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새해에 닥칠 어떤 시름도 기쁘게 맞이하리라,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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