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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CEO

‘가짜친구’ 중국

신보영 정치부 차장
위기가 닥쳐야 적과 동지가 구분되는 법이다. 2019년은 대한민국 외교에서 이를 재인식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2018년은 ‘6·12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물론 미·일·중·러 모두 한반도 평화·안정을 한목소리로 노래했지만, 올해는 북핵 프로세스가 경색 국면에 빠지면서 동북아 외교 전장에서 ‘강압’ ‘합종연횡’ ‘이간계’ 등이 난무했고, 피아(彼我)가 갈렸다.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동지’보단 여전히 ‘적’이었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등과 같은 막말 비난을 했고,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되지 않는다며 ‘중매자’ 탓을 했다. ‘늘 든든한 친구’였던 미국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돈’ 문제로 비위가 상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게 증명됐고, 올 하반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로 갈등을 빚은 일본은 여전히 ‘껄끄러운 이웃’이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국가는 ‘가짜 친구’ 중국이다. 올해 중국은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처럼 보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공감했다. 이런 중국이 지난 14일 미국과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하자마자 돌변했다. 지난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는가 하면, 지난 22일이 마감시한이었던 북한 노동자 추방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주요 인사들의 ‘오만’은 심각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4년 만에야 방한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사드 보복조치인 한한령(限韓令)을 해제하기는커녕, 미국을 비난하면서 한국에 간접 경고를 던졌다. 시 주석이 지난 23일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재거론하고,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 가능성을 사전 경고한 게 절정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정치권은 침묵하고 있다. 홍콩·신장위구르 시위에 대해 문 대통령이 “내정 문제”라고 밝혔다는 중국 언론의 왜곡 보도에도 청와대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만 밝힐 뿐 공식 항의하지 않았다. 지난달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에게 “총독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던 정치권도 유독 중국 행보는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사장비 배치 문제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중국이야말로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과거 중국 전제정치 시대의 황제나 하는 행동이 아닌가.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통해 꽉 막힌 북핵 협상을 풀려고 하는 문 대통령에게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북핵이 하루아침에 뚝딱 해결될 문제도 아닐뿐더러, 북핵 때문에 다른 국익까지 훼손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특히 중국은 내년에는 시 주석이 지시한 ‘주동작위’(主動作爲·주동적으로 일을 도모하라) 외교지침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태세다. 여기에 맞서는 한국의 2020년 대중 외교지침은 ‘당당한 외교’여야 한다. 이게 ‘가짜 친구’에게 농락당하지 않으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