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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직업교육

명문대보다 직업계고.. '공무원 열풍'에 선호 학교 지각변동

명문대보다 직업계고.. '공무원 열풍'에 선호 학교 지각변동

이재은 기자 입력 2019.12.08. 06:00 
고학력 청년 니트족(NEET) 여파로 중학생 때부터 국가기관·공기업 취업 준비하는 이들 늘어.. 직업계고 인기↑
/사진=뉴스1

#A군은 고등학교 진학 관련 고민이 많다. 명문대 졸업을 앞둔 형이 취직을 쉽게 하지 못하는 걸 보고 대학이 중요한 시대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A군은 "대학은 언제든 갈 수 있기에 취직이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업계고를 가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청년실업률이 지속되면서 일자리가 안정적인 공무원과 공기업 취직이 최고라는 인식이 커졌다. 학교 선호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대학 졸업 후 노량진에서 공시생(공무험 시험 준비생) 과정을 거치는 건 매한가지라며 대학을 가는 대신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종합고)로 진학해 공무원의 꿈을 이루는 학생이 늘고 있다.

8일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청년층(13~29세)이 선호하는 직장은 Δ공무원(국가기관) 22.8% Δ공기업 21.7% Δ대기업 17.4% 순이었다.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을 다닐 경우 고용 안정성을 느낄 수 있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는 직장이므로 일 가정 양립이나 육아휴직 등의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고 보는 청년들이 늘어서다.

청년들이 '도전'보단 '보수적'으로 직업을 찾는 건 낮지 않은 실업률 때문이다. 지난 10월 기준 한국 청년층(15~29세)의 고용률은 44.3%, 실업률은 7.2%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구조 때문에 미취업 상태의 청년들은 더 암담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학력 청년(15~29세) 니트족(NEET·학업과 일을 하지 않고, 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층)는 16.6%로 추정됐다. 이는 2017년에는 OECD 평균(13.4%)보다 3%나 높은 것이다. 특히 전문대(20.4%)와 대학교(17.7%)의 교육수준을 가진 이들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니트족이 되면서 대학 졸업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소위 SKY 명문대로 꼽히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스펙(직장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을 괜히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고려대 문과대학 졸업생 김모씨(27)는 "주변에 취업을 쉽게 한 사람이 없다"면서 "대기업 취업을 노리다가 취직이 안돼 대학원을 간 친구나, 취업이 안돼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한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기들끼리 모이면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안 오고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걸 그랬다'는 자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에 중학생 때부터 미리 국가기관이나 공기업 등을 위주로 취업을 준비해야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좋은 대학 진학에만 치중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취업의 기회 노리는 특성화고 학생들. 서울·경기 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이 4일 오전 서울 용산전자 상상가 Y벨리에서 스타벅스와 JA코리아가 함께 개최한 특성화고 대상 잡페어에서 실제 면접을 보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이 같은 인식 변화에 지방에 위치한 직업계고를 중심으로 직업계고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서 직업계고 출신 학생들을 뽑으려는 정책도 이 같은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직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선발시험에서 직업계고 졸업예정자 210명을 뽑았다.

직업계고 출신 9급 공무원은 2012년 고졸 출신 공직 진출 확대 등을 목적으로 일반 공채와 별도로 뽑기 시작했다. 학교장 추천, 필기시험(국어·영어·한국사), 면접 등을 거쳐 선발하며, 일반 공채 대비 경쟁률이 최고 10분의1 수준으로 낮다.

대전여상 관계자는 "최근 우리 지역에서도 직업계고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원서접수시 중학교 내신성적 만점이 300점 중 299점일 정도로 상위권 학생들까지 우리 학교에 지원을 할 정도다"고 말했다. 그는 "급여라든가 근무여건이 좋은 공무원, 공사, 공단 등을 우리 학교에서 준비하고자 하는 학생이 늘어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전여상은 최근 4년간 평균 취업률 78.1%로 공공기관 및 공무원, 금융권, 대기업 사무직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45%를 넘는다. 올해 공무원 합격자는 6명이었다.

다른 직업계고의 상황도 유사하다. 천안여상 관계자는 "5일까지 원서접수를 했는데, 중학교 내신성적 200점 만점 중 197점, 192점을 기록한 학생들이 우리학교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9급 일반 공채의 7%정도가 직업계고 출신인데, 인사혁신처가 2022년까지 20%를 직업계고 출신으로 채우겠다고 한 만큼 앞으로 인기가 더 높아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