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 전승훈 기자
2019년 10월 16일(水)
자기기만, 자신의 과오와 책임 피하려는 유혹의 산물
■ 인지심리학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② 내가 나를 속일 때
‘나는 실력있고 정당하다’ 스스로 속임으로써 다른 사람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
거짓 드러났을 땐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비싼 비용 치러야
도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일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과오를 없었던 일로 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그 과오가 알려져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쉽게 피할 수 있는 매우 유혹적인 방법이다.
사실 누군가를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보이스 피싱을 비롯해 각종 사기와 부정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더 얻기 위해서 필요 없는 책을 사야 한다고 거짓말하거나 늦잠으로 인한 지각을 피치 못한 사고나 질병 탓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처럼 느껴진다. 부정 입시, 부정 계약, 탈세를 비롯한 각종 경제 비리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국가 간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기만과 거짓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거짓을 말할 때는 사실을 말할 때와 다른 신체 반응이 나타난다.
우선 우리 마음을 담당하는 뇌가 사실을 억제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야 하는 추가적인 인지적 부담을 갖게 되고, 거짓이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정서적 긴장과 압박으로 자신도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얼굴이 붉어지고 침이 마르거나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도 이런 원리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사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 신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탐지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거짓말의 종류나 그 영향력에 따라, 혹은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 거짓말 탐지가 안 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같은 거짓말을 반복해 연습하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실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수도 없이 상상한다면 거짓말 탐지기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짓말 탐지기를 속이기는 더욱 쉬울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는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으로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그렇고 경제와 문화가 그렇다. 기업이나 국가 간 정보 전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먹잇감에게 들키지 않게 접근하는 것은 많은 포식자가 즐겨 사용하는 생존 전략이며, 먹잇감 역시 포식자들을 속이기 위한 다양한 위장 전술을 사용한다. 힘센 우두머리 몰래 짝짓기를 하는 침팬지부터, 일부일처제라고 생각했던 새들조차 최근 유전자 검사를 통해 많은 새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 역시 번식을 위한 전략으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결국 우리 인간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이나 사회, 국가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부정직은 주된 악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해 왔다. 그 이유는 거짓말이 그 조직이나 사회, 국가가 생존하는 데 해를 끼치고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 대한 부정직은 가정을 와해시킬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거짓 보고를 하거나 기업의 기밀을 빼내는 일은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행위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간첩이나 이적 행위부터 각종 탈세, 위법적 병역 기피, 위장 전입, 문서 위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짓에 대해 국민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속이려는 자에게 속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여러 곳 각각의 차원에서 많은 노력과 장치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과학이나 학문 영역에서도 각종 위조나 표절, 데이터 조작과 같은 속임으로부터 자신이 하는 과학이나 학문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가정에서 배우자가 지난밤 누구를 만나 늦게 귀가했는지에 대한 관심(?)부터 먹거리의 원산지나 유통기한, 각종 생필품의 성분, 첨단 과학 기술이나 금융과 군사 정보에 대한 감시나 보안의 강화도 속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윤리가 강조되고 거짓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만큼 부정과 속임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정직을 강조하는 문화는 정직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속이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누군가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몰라야 제대로(?) 속이는 일이 된다. 즉, 누군가가 속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속이는 행위는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속이려면 속이는 자신이나 속고 있는 자신도 속이고 있다는 것이나 속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워 보이는 일을 우리는 종종 한다.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주변을 돌아보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에게 극도로 재미없고 지루한 작업을 한 시간 동안 하도록 했다. 작업이 끝나고 나가는 참가자에게 실험자는 “나가시면서 밖에 기다리고 있는 다음 실험 참여자에게 이 실험이 정말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얘기해 주시겠어요?”라고 부탁하면서 어떤 참여자에게는 1달러를, 어떤 참여자에게는 20달러를 줬다. 실험자들은 나중에 사람들에게 실험에서 했던 작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했는지를 물어봤는데, 1달러를 받은 참가자와 20달러를 받은 참가자의 대답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참고로 이 실험은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였고, 그 당시 1달러와 20달러는 요즘 우리 돈으로 각각 1만5000원과 30만 원 정도다. 여러분은 얼마를 받은 참가자들이 이 실험에서 했던 과제가 더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회상했을 것이라 예상하는가?
일단 이 실험에서 분명한 사실은 실험자가 참가자들에게 재미없고 지루한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다고 거짓말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이 실험에서 거짓말을 시키지 않은 일부 참가자에게 이 실험에서 한 작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회상하게 했는데, 대부분 참여자는 정말 재미없고 지루했다고 사실대로 회상했다. 흥미로운 것은, 1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과 20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 이 두 집단 중에 한 집단에서 자기기만이 발견된 것인데, 한 집단은 거짓말을 시키지 않았던 참여자들처럼 자신이 했던 과제가 재미없었다고 회상했던 반면 다른 집단의 참여자는 자신이 했던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회상한 것이다. 어떤 집단에 자기기만이 일어났을까?
실험 결과, 큰 보상을 받은 20달러 집단의 참가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참가자들처럼 자신이 했던 과제가 재미없고 지루한 과제라고 대답했던 반면, 오히려 1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그 과제를 정말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즉, 1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에게서 자기기만이 일어난 것이다. 그 과제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구체적 증거(그 과제를 해 보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이 평가한 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달러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그 과제가 재미있고 유익한 과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거짓말을 하고 많은 돈(20달러)을 받은 참가자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만큼 큰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데 대해 충분한 핑곗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1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을 적은 돈(1달러)을 받고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정말 그 과제가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이런 정신적 과정은 의식적 자각 없이, 즉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야 제대로 된 자기기만이다. 그 과제가 정말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회상하는 1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으면 분명 뭔가 이유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가령, 그 과제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과 인내심을 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는 식으로…….
사기꾼에게 속은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사기임을 알려줘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다. 특히, 그 사기꾼에게 이미 많은 재산과 정성을 쏟아부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인류 심판이 특정한 날에 온다고 외치는 종교 집단에서 그날이 지나도 심판이 일어나지 않으면 속았다며 해산할 것 같지만, 오히려 다른 이유를 만들어 신앙심을 더 강화하기도 한다.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그동안 투자한 자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사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일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차단하든지, 별거 아니라 생각하든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하버드대의 조에 찬스(Zoe Chance)와 동료들의 실험·연구는 자기기만이 과거의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능 검사에서 부정행위를 통해 좋은 점수를 받은 대학생들이 나중에 비슷한 난이도의 시험에서 몇 점 정도를 취득할 수 있을지 예측하게 했을 때에도 자기기만에 의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런 과대평가는 미래에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도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런 결과는 스스로를 완전히 기만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왜 스스로를 속일까? 자기기만을 통해 자존감을 지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속여야 다른 사람도 쉽게 속일 수 있다. 자신이 실력도 있고 부정행위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스스로 믿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이 드러났을 때 자기기만처럼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행위도 없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기만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과 객관적인 자료 간의 간극은 좁을수록 좋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과학은 사실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를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 자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모두 과학자가 돼 보자.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 설명
자기기만(self-deception)
어떤 생각이나 믿음에 반하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생각이나 믿음. 혹은 반대되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믿음.
하버드대 찬스와 동료의 실험
연구자들은 대학생들에게 수학 문제 8개를 풀고 채점한 뒤, 나중에 같은 난이도의 문제 100개를 푼다면 몇 문제를 맞힐 수 있을지 답하도록 했다. 실험에선 무작위로 일부 시험지 하단에 정답이 적혀 있었다. 실험 결과 하단에 정답이 적혀 있는 문제지를 푼 집단의 점수와 미래 예상 점수가 모두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10% 높았다. 분명한 사실은, 정답이 적힌 시험지를 푼 학생들 중 누군가는 하단의 정답을 참고해 답을 썼고, 이 때문에 평균 정답률이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부정 행위를 통해 정답률이 올라갔지만, 미래를 예측할 때엔 자신이 정답을 봤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실력 덕이라 믿어서 미래 예상 점수도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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