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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설교작성 10단계

10단계 설교작성법에 기초한 설교작성 과정

                                                                                       2019. 8. 13

1. 본문 선택

    설교의 시작은 본문의 선택입니다. 

제대로 선택된 본문은 설교자와 청중에게 말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제공합니다. 때로는 본문을 선택하고 연구하든 중 생각하던 설교의 방향과 잘 맞지 않아 본문을 바꾸고 싶은 유혹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본문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강해 단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의 주제거리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고 그것은 때로는 문장 가운데 때로는 문단 그리고 문맥에서 찾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서 1장 전체를 잡았습니다. 요나서는 장별로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 본문을 나누기 쉽습니다. 1장은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요나와 하나님의 심판, 2장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 3장은 요나의 선포에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장면 그리고 4장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요나의 항변이 나옵니다. 설교는 1장에서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도망하는 모습과 요나를 집요하게 찾아오셔서 결국 그를 꺾으시는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동시에 요나가 구원 받은 2장의 말씀과 4장의 항변하는 모습을 함께 다루었습니다. 


설교 본문을 성경의 한 권 전체를 택하거나 몇 장을 함께 택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룻기를 설교하거나 빌레몬서를 설교할 때 성경의 한 권을 본문으로 택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내러티브 본문은 때로 몇 장을 동시에 택해야 이야기의 줄거리를 전체적으로 다룰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 때 본문을 전체로 택하고 모두 읽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본문은 전체를 택하고 중요한 구절을 읽든지 아니면 중요한 구절만을 택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성경을 읽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예배의 균형에 좋습니다


2. 본문 묵상

     본문 묵상은 본문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로 경건하게 읽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급적 본문을 묵상할 때는 다른 주석서를 참고하지 말고 본문과 나와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만 해도 이해되도록 기록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런 간격이 오늘도 성경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다르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경건한 읽기를 하면서 처음 5번 정도는 정독하시고 그 다음부터는 펜을 들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이 본문에 나오는 중요 인물이 누구인지 살피고, 본문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본문의 분위기와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고찰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본문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읽기를 반복하면서 본문을 어떤 대지로 나누면 좋을지 생각하고 적절한 예화와 적용을 찾으면 설교 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본문을 10차례 이상 읽으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면 본문이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와 하나님이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도망하는 요나,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요나, 마침내 바다 속으로 던져지는 요나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차례대로 등장합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요나의 심경과 요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묵상했습니다.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인데 그가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오늘날 나에게 니느웨와 같은 곳이 어디이며 누구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나와 같이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대상에서 제외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니느웨일 수 있습니다. 나의 입장으로 니느웨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니느웨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배 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요나를 깊이 묵상해 보는 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선지자라고 부름 받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하면서 잠들 정신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면서 고통스런 순간을 잊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공들이 힘써 배를 저어 육지로 돌리려고 하는 장면도 묵상해 보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여주는 가르침은 하나님과의 문제는 하나님과 해결해야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의 내면에 요나와 같은 모습이 너무나 깊이 베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최선과 방법을 찾아보려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3. 본문 주해

    본문 주해는 주로 문자의 의미 연구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후에 배경 연구와 문맥 연구 그리고 중요한 신학적 이슈들을 본문과 성경 전체에서 연구하여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저자의 의도를 찾아야 합니다. 문자 연구는 원어를 이해하면 매우 유익하겠지만 부족하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요즘은 Bible Works나 성경 연구에 도움되는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사전으로는 구약을 위해서는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Exegesis와 신약으로는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가 좋습니다. 


이 사전들은 단어를 파편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문장과 문맥 가운데 연구한 것이라서 본문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 됩니다. 본인이 직접 단어를 연구하지 않아도 경건한 주석서들은 잘 선별하여 읽으면 단어 연구를 잘 제공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설교에 두 단어 정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교인들에게 깊이 있는 말씀의 해석뿐 아니라 평소 잘 경험하지 못하는 신선한 느낌마저 들게 해서 관심을 모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했다”라는 표현과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신 것을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때 사용되는 용법이며 대풍을 내리는 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무엇을 세게 집어 던지거나 총알처럼 발사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요나의 철저한 불순종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때로 단어 하나의 연구는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부각시켜 설교의 효과를 높여 줍니다. 가능하면 본문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동사나 반복되는 단어를 먼저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단어 연구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배경 연구입니다. 요나서 전체는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가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앗시리아는 당시 잔학성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적대국으로 지내다가 결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민족이기도 합니다. 이런 적대국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납득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 여겨버린 선자자의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 역시 온 인류를 품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한계를 잘 보여 줍니다. 


4. 중심 사상 찾기

    설교를 듣고 나오는 교인들에게 오늘 설교의 중심 주제를 물어보면 대답하는 사람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교가 무엇인가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전하는 자가 의도하는 주제와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주제 간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때로는 본문이 말하는 주제와 설교자가 발견하는 주제가 다를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주제란 성경의 본문에서 중심으로 다루는 것을 설교자가 바르게 파악하여 설교에서 강조할 때 교인들이 그 말씀에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중심 사상을 찾는 일은 본문의 주제를 찾는 과정입니다. 초등학교부터 우리는 국어를 배우면서 먼저 주제 찾기를 배워 왔습니다. 사실 주제를 찾는 훈련보다 제시된 주제를 암기하는 훈련에 가까웠습니다. 설교를 위해 본문을 읽으면서 주석서에서 제시한 주제를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의 설교에서 주제를 가져오는 것은 설교자로서의 가장 영광스런 특권을 놓치는 일입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는 특권뿐 아니라 말씀을 연구하면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먼저 들으며 은혜를 누리는 특권도 주어진 사람입니다. 주석과 설교집은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과정을 돕기 위해 필요한 도구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명이 주어졌을 때 도망하는 요나와 그를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마침내 사명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가 부각됩니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요나와 하나님 사이의 숨바꼭질 같은 긴장을 살려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요나와 요나의 행동에 대응하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인내와 사랑으로 사람을 훈련시켜 결국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중심 사상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명자라도 끝까지 찾아오십니다." 설교학적으로 이렇게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사명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앞에 순종하며 나아갑시다."


설교 제목은 본문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같이 교리 같은 제목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설교의 제목으로는 "도망할 곳은 있어도 피할 곳은 없습니다"로 정했습니다. 끊임없이 피하고자 발버둥치는 요나를 지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제목이라 생각했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교하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설교한다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설교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구속사적 설교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시는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놓여져 있기 때문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부각되는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나타나고 계시되는지, 성령님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혹은 구약을 전할 때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계시가 어떻게 주어지는지 살피면 인간 중심으로 본문을 보지 않고 구속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면에는 하나님께서 요나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을 위해 한 사람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도망하는 요나에게 폭풍으로 찾아오시고 마침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주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은 요나의 생각과 행동을 잘 묘사하지만 전체 그림을 그려가는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충분히 부각되는 본문은 그대로 설교해도 무방합니다만 본문에서 장차 나타나실 예수님과 연결시키는 것은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유익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구약 말씀을 두고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 구약의 말씀도 예수님과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폭풍 가운데 물고기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죄악의 길 가운데 서 있는 우리를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시는 것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원수라는 감정 때문에 불순종한 요나는 원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과 확연한 대조를 이룹니다. 


6. 설교의 형식

    연역적 설교 형식을 따를 때는 중심 사상을 설명하고 명제를 증명하고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이나 잠언서 또는 교리나 주제를 중심으로 설교할 때는 연역적 설교 형식이 적당합니다. 귀납적 설교는 먼저 주제를 설명하지 않고 마지막에 주제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귀납적 설교에서는 청중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로 이야기 형식으로 설교되기 때문에 본문을 눈에 보이게 잘 묘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혼합식 설교 방식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응용한 것으로써 시작은 귀납적으로 하고 전개를 귀납적으로 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필자는 혼합식 방법이 한국인의 심성에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설교가 명쾌하면서도 긴장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 설교하든 본문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명확하게 전달되고 청중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고 변화를 경험한다면 그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형식은 본문을 전달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형식에 설교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전달 형식을 취하더라도 피해야 할 첫 요소는 청중을 지루하게 만드는 설교입니다. 프래드 크래독은 청중을 이를 설교자가 범하는 죄라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는 ‘듣든지 말든지’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반드시 듣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전해야 합니다. 


이번 설교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설교했습니다. 본문의 흐름을 살려서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설교하려 했습니다. 내러티브식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본문의 내용에 줄거리를 살려 긴장감 있게 설교한다는 말입니다. 논지를 설명하는 것보다 본문의 흐름이 눈에 보이게 만들어 줌으로써 듣는 사람이 본문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7. 설교의 개요

    개요가 분명하면 설교를 한 눈에 보게 합니다. 

좋은 글은 전체의 윤곽이 선명해야 합니다. 설교도 마찬가집니다. 개요가 분명할 때 전하는 사람도 본문을 쉽사리 그릴 수 있고 청중도 본문을 한 눈으로 보게 합니다. 분명한 개요는 설교자가 본문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가능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반복하여 묵상하면서 어떻게 설교의 순서를 진행할 것인지 머리에 그리면 원고에 집착하지 않고도 설교가 가능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개요는 먼저 본문의 의미를 설명한 후, 그 본문의 설명을 실감나게 보여주거나 증명할 수 있는 예화를 들어주고 청중의 삶으로 적용하는 형식입니다. 대지 설교는 설명, 예화, 적용이라는 공식이 가장 명쾌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합니다. 본문의 흐름을 살려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런 형식을 따라 설교하면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설교가 분명하게 각인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드라마 작가가 오늘 본문을 극화시킨다면 매우 실감나게 만들어 낼 것입니다. 아마도 시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대목에서 안도감을 쉬게 할 것입니다. 설교자가 추구해야 할 청중의 관심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드라마의 생명은 청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는 긴장입니다. 설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더 감동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하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생생하게 일어나는 역사의 현장을 맛을 잃은 논리처럼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대지 설교를 하듯 나눈 대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교를 진행했습니다. 


첫째 이야기: 말씀하시는 하나님 (1-3절)둘째 이야기: 찾아오시는 하나님 (4-10)셋째 이야기: 구원하시는 하나님 (11-17절) 


8. 예화

    설교를 들으면서 교인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조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일날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온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한편 왜 저렇게 조는지 살펴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설명이 지나치게 길어질 때, 본문을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접근할 때, 본문에서 떠나 다른 이야기를 오랫동안 쏟아 놓을 때, 혹은 실생활과 관계 없이 설교할 때가 그렇습니다. 


때로는 교인들이 설교자와 함께 호흡하면서 머리를 끄덕일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삶으로 적용하거나 생활에서 발견되는 예화를 들 때입니다. 설명만 듣다가 예를 들어줄 때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화의 힘입니다. 열 마디로 설명하는 것보다 하나의 예화가 더 실감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대한 설명 없는 설교란 없습니다. 설교 자체가 진리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것인가 입니다. 본문의 문자적 의미나 문맥을 살피고 성경 전체에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고 때로는 비교와 대조 등으로 본문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삶으로 적용하여 실감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 예화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필자는 두 가지의 예화를 들었습니다. 도망하면서 배 밑에서 잠이 든 요나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 사랑하시는 자를 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필자의 경험을 통해 예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예화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하여 실제로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머를 가미하여 사용했습니다. 설교에서의 유머는 우는 아이를 미소 짓게 하는 곶감과 같습니다. 유머는 농담과 다릅니다. 유머는 본문의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 흥미롭게 표현하는 것이고 농담은 본문과 관계없이 청중을 웃기기 위해 하는 코메디와 같습니다. 강단에서의 유머는 쓸수록 좋은 것이고 농담은 금물입니다. 


9. 적용

    설교의 목적은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청중의 생각과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말씀으로 임해야 하고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삶을 향한 결단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좋은 설교란 오늘 말씀이 의도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설교의 목적은 말씀의 바른 해석을 통해 시작되고 적용을 통해 완성되어야 합니다. 적용이 없는 설교란 주해에 불과할 뿐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적용을 강조하면서 "적용을 향하여 나아가는 강해설교"라고 부릅니다. 


현대 설교 (New Homiletic)의 조류는 적용은 설교자가 할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맡기자고 합니다. 대단히 잘 못된 주장입니다. 설교자는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해서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훈련시키고자 노력합니다. 나름대로의 이론을 지녔다고 하지만 경건한 평신도에 미치지 못하는 엉뚱한 신학자들도 많습니다. 목적 없는 설교가 없듯이 적용 없는 설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적용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질문하기도 합니다. 적용은 필요할 때마다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지 설교를 할 때는 본문을 설명하고 예화를 들고 적용하는 순서가 적당합니다. 적용으로 시작하여 설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설교 마지막에 정리하여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즉각적으로 듣고 순종할 것을 전반부에 강조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문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 앞에 나아가 관계를 회복하고 사명인의 인생을 살고자 결단하게 한다면 성공적인 설교가 될 것입니다. 


10. 서론과 결론과 전환

     오늘 설교는 본문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내러티브 형식의 경우 본문을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다면 본문을 서론으로 소개해도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면서 뜻 밖에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요나를 통해 상황의 반전을 기하려 했습니다. 평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을 보임으로 사람들의 생각에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유진 로우리는 이를 "평행 뒤집기"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설교에서의 이러한 긴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 이런 갈등이 생겨나는지 이 갈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해소되는지 잘 보여준다면 본문을 드라마틱하게 설교할 수 있습니다. 


결론 부분에서는 오늘날도 성경을 통해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했습니다. 패역한 선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아직도 그를 통해 이루셔야 할 사명이 있기에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을 기억하고 오늘 하루 우리에게 호흡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다면 주님을 위해 다시 한 번 불꽃처럼 타오르는 인생을 살 것을 촉구했습니다. 


설교의 전환은 설교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앞뒤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째, 둘째와 같이 번호를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교인들이 설교를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합니다. 앞뒤를 대조적으로 연결하는 표현도 전환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응답 받지 못한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는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이러한 대조적 표현은 지금까지의 설교를 정리해 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내용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전환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질문입니다. 질문은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느낌에서 벗어나 청중과 호흡하는 교감을 높여 주고 관심을 끄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요나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 "도망하는 요나.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요나가 어느 정도로 타락한 선지자이기에 이렇게 반응한단 말입니까? 정말 타락하여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선지자가 되어 버렸을까요?" "그러나 요나는 오늘 여호와 얼굴을 피해 도망하기로 결단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요나가 정말 하나님을 피하고 싶어서일까요?" 다음에 나올 내용을 질문하면서 설교하면 청중도 함께 관심 있게 본문으로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나올 때마다 질문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청중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끝).


류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