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을 최근 만나 1965년 한·일 협정부터 일본 경제 보복까지 설명을 들었다. 요약하면 '일본이 외교 문제로 무역 보복을 하는 건 잘못이지만 문재인 정부도 일을 방치하다 이제 와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였다. "조국식 선동이 먹히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힌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글을 써보라고 했더니 일제히 손사래를 쳤다. 친일파 낙인 찍기 무차별 공격에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비슷한 얘기를 방송사 지인으로부터도 들었다. "한·일 관계 토론을 하려 해도 패널을 못 구한다"는 것이다. '의병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취지로 말한 방송사 앵커는 교체됐다. 다들 '그냥 입 닫고 말자'고 체념하는 분위기다.
▶ 나라 안팎이 엄중한데 역사와 세상사를 공부한 지식인들은 고개를 파묻고 있다. 짠맛 잃은 소금처럼 지식인이 침묵한다. 자크 아탈리는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했고, 매천 황현은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다"고 했다. 지식인 정의가 동서고금에 다양하지만 핵심은 '지식만 가졌다고 지식인이 아니다'가 될 것 같다. 역사에 기억되는 지식인은 어두운 밤에 외로이 등불을 들었다. 우리 지식인은 술자리에서 개탄만 한다.
▶ 일본이 경제 보복에 이른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자고 말만 꺼내도 '토착 왜구'로 매도되는 풍토에 지식인이 숨 쉴 공간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인 교수는 20년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해왔다. '왜 일본인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한국 기자가 물으니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일본만 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에 근거하고 논리를 갖추면 받아들인다고 한다.
▶ 일본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그제 본지 인터뷰에서 아베 내각이 "한국을 적(敵)으로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치다 변호사를 비롯해 일본 지식인들은 경제 보복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받는데 20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들은 성명에서 "한국이 적이냐"고 아베 정부에 물었다. 일본도 국민 60%가 아베의 경제 보복에 찬성하는 등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우치다 변호사 등을 '일본의 양심'이라고 추켜세우는 우리 사회에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일본이 적이냐"고 묻고 "정부는 반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지식인이 누가 있나.
- 이동훈 논설위원 [만물상] 조선일보 2019.07.31. 오전 3:17
2019. 7. 31. 8:42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을 최근 만나 1965년 한·일 협정부터 일본 경제 보복까지 설명을 들었다. 요약하면 '일본이 외교 문제로 무역 보복을 하는 건 잘못이지만 문재인 정부도 일을 방치하다 이제 와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였다. "조국식 선동이 먹히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힌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글을 써보라고 했더니 일제히 손사래를 쳤다. 친일파 낙인 찍기 무차별 공격에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비슷한 얘기를 방송사 지인으로부터도 들었다. "한·일 관계 토론을 하려 해도 패널을 못 구한다"는 것이다. '의병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취지로 말한 방송사 앵커는 교체됐다. 다들 '그냥 입 닫고 말자'고 체념하는 분위기다.
▶ 나라 안팎이 엄중한데 역사와 세상사를 공부한 지식인들은 고개를 파묻고 있다. 짠맛 잃은 소금처럼 지식인이 침묵한다. 자크 아탈리는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했고, 매천 황현은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다"고 했다. 지식인 정의가 동서고금에 다양하지만 핵심은 '지식만 가졌다고 지식인이 아니다'가 될 것 같다. 역사에 기억되는 지식인은 어두운 밤에 외로이 등불을 들었다. 우리 지식인은 술자리에서 개탄만 한다.
▶ 일본이 경제 보복에 이른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자고 말만 꺼내도 '토착 왜구'로 매도되는 풍토에 지식인이 숨 쉴 공간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인 교수는 20년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해왔다. '왜 일본인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한국 기자가 물으니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일본만 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에 근거하고 논리를 갖추면 받아들인다고 한다.
▶ 일본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가 그제 본지 인터뷰에서 아베 내각이 "한국을 적(敵)으로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치다 변호사를 비롯해 일본 지식인들은 경제 보복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받는데 20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들은 성명에서 "한국이 적이냐"고 아베 정부에 물었다. 일본도 국민 60%가 아베의 경제 보복에 찬성하는 등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우치다 변호사 등을 '일본의 양심'이라고 추켜세우는 우리 사회에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일본이 적이냐"고 묻고 "정부는 반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지식인이 누가 있나.
- 이동훈 논설위원 [만물상] 조선일보 2019.07.31. 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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