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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여행

애증의 바티칸 여행

                                                             -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 




바티칸을 보기 위해 가장 편리하고 적당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개인적으로 티켓 끊고 들어가서 돌아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숙련된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속 편하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바티칸은 특히 더 그러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투어 상품이 많이 있으니 그걸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티칸에 하루를 다 투자하더라도, 그 어마어마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우리가 죄다 예습하기란 어려운 일. 보고 느끼고 해석해야 할 예술품들이 너무도 많은데, 거기에 연결된 화가, 의뢰인, 상징들, 시대적 배경, 화법 등등 온갖 전문적인 정보들을 소화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하자. 여행 일정이 정해지면 곧바로 해당 날짜에 바티칸 투어 상품을 인터넷 예매하자. 필자에게 추천하라면 ”유로 자전거나라 투어“를 권하겠다. 소속된 가이드들이 열정적이고, 수준도 꽤 높다. 그러나 이런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들과 그 현장을 직접 만나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답사가 될 것이다.


바티칸 시국 입장하기

투어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 바티칸 국경을 넘어 입장하는 티켓을 한국에서 미리 사두면 편리하다. 이곳도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기 때문이다. 사람도 많지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성수기에는 두 시간을 기다린 사람도 있다고 하니, 웬만하면 여행 일정을 확실히 정하고, 그에 맞춰서 티켓을 예매하자.

일반적으로 관광 상품을 이용하면 입구에서 가까운 미술관(중세 회화관)부터 보게 되는데, 개인 자격으로 입장했더라도 건너뛰지 말고 꼭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살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 등 거장의 작품을 코앞에서 제대로 만날 엄청난 기회다. 필자는 감수성이 별로 풍부한 사람도 아닌데, 이 그림 앞에서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솔방울 정원, 조각 정원, 지도의 방, 서명의 방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모아둔 엄청난 석상과 조각상들이 정원 곳곳에 빼곡히 서 있다. 교황들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를 보면서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을 동원한 선전을 통해 위세를 떨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하고 씁쓸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다비드상과 라오콘, 토르소 등을 볼 수 있는데, 조각가들의 실력에 경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런 호화로운 장식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소모됐을 것이고, 이런 비용을 모으기 위해 부자들의 후원금을 받았다지만, 그 돈이 결국 어디서 왔을까...
이어서 본격적인 박물관 투어가 시작되는데, 복도를 따라 여러 종류의 방을 하나씩 지나가면서 관람을 하게 되어 있다. 지도의 방에 가보면 화려한 천장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전 세계에 있는 로마 가톨릭 소속 성당들의 위치를 지도에 나타냈다고 한다. 성직자라기보다 전사에 가까웠던 교황 율리우스 2세(율리우스 2세는 자신을 미켈란젤로가 묘사하면서 성경을 손에 들고 있도록 그린 것을 보고, 성경 대신 검을 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다.)는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던 서명의 방을 그림으로 꾸몄다.


시스티나 성당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이고, 교황을 선출할 때 사용되는 예배실이다. 촬영도 못 하고, 떠들면 혼(?)난다. 관광객이 웅성거리다 보면 소음이 커지는데, 지키고 서 있던 사제 한 명이 근엄한 목소리로 ‘Silence!’라고 외치면 순식간에 조용해지곤 했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당연히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제단화이다.





쿠폴라에서 천국의 열쇠를 확인하기

시스티나 성당을 빠져나오면 투어가 종료된다. 필자의 추천 코스는 베드로 대성당 관람 전에 먼저 성당 꼭대기 쿠폴라에 오르는 것이다. (쿠폴라 입장 시간에 제한이 있어서, 쿠폴라 먼저 보고 대성당을 나중에 보는 것이 좋다) 물론 체력이 좀 필요하다. 500개 넘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리프트를 타고 가면 200개 정도만 오르면 되는데(유료) 그것도 쉽지는 않다. 갈수록 좁아지는 좁은 복도와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허리를 한쪽으로 꺾으면서 올라가야 한다. 그래도 꾸역꾸역 오르다 보면, 계단은 끝이 난다.
쿠폴라 꼭대기에 도착하면 내려다보이는 바티칸 광장을 꼭 사진으로 찍자. 구글맵에서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광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광장은 천국의 열쇠 구멍 같고, 성당은 거기에 꽂혀 있는 열쇠 손잡이처럼 보인다. 그것을 직접 확인해보자.

천국의 열쇠는 천국 문을 여닫는 권세로써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의 모임에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교회의 치리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로마 국교화 이후, 대형화/계급화된 교회는 복음보다는 세속권력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런 자들이 교회의 주류가 되면서 교회는 당연하게도 부패했다. 당시 교회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 천국의 열쇠를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개인’에게 주셨다고 해석했고, 그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삼아, 그 후계자들에게 천국의 열쇠가 전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베드로의 순교지이자 무덤이라고 알려진 자리에 성당을 세우고, 교황을 성직자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었을 때, 이런 시스템과 사상을 유지하고자 교회가 했던 일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열쇠 모양의 베드로 대성당 증축 사업이었다. (그리고 이 사업에 면벌부 판매대금이 들어갔다는 것은 충분히 추론 가능한 이야기다.)


애증의 베드로 대성당

쿠폴라에서 내려와 베드로 대성당 내부를 구경하자.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은 정말 거.대.하.다. 크기도 놀랍지만, 그 큰 공간의 구석구석을 메운 온갖 조각상과 아름다운 장식에 넋을 잃고 구경하게 될 것이다. 기계도 공구도 발전하지 못했던 수백 년 전에 이런 건축물을 지었다니... 이게 다 사람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성당의 맨 앞쪽, 높이 솟은 제단 위 천장을 장식하는 창문에서는 이탈리아 특유의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빛은 성당 내부의 어두운 공간을 서치라이트처럼 밝힌다. 그러면 관람객들은 그 빛 속을 거닐며 신비감마저 경험한다. 세속의 삶에서 성스러운 성당 내부에 들어섰을 때, 그 차이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성속이원론에 입각한 놀라운 건축 설계이다. 그뿐만 아니다. 성당 구석구석에 마련된 채플 실에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걸작품인 조각상과 벽화들이 여러분을 맞이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직접 조각한 피에타도 바로 이곳에 있다.

성경 말씀 없이도 종교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이 문제 앞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노력을 다한 결과물이 바로 이곳 베드로 대성당이다. 금은 채색으로 번쩍거리고 영험한 성인들과 천사들의 형상이 온통 정신을 휘감아버리는 이런 공간에서, 신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규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었지만, 역사는 야속하게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종교심’을 오늘날에도 끌어내기 위해, 한국 교회는 지금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건축과 무대 장치, 인테리어 등에 성도들의 헌금을 소비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지금의 한국 교회를 생각해본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그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우리로서 부끄러움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이러한 현실 앞에서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고자 싸웠다. 화려한 문명을 경험하고 자라난 현대인인 우리들조차 압도될 정도로 놀라운 로마 바티칸의 위세 앞에서, 그 속에 공교히 비치된 성상과 성화들 앞에서, 중세의 신자들이 느꼈을 그런 카타르시스를 은혜요 신앙이라고 속여 왔던 중세 교회의 강력한 권세 앞에서, 오직 말씀을 가지고 저항한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동참했던 수많은 신자들... 어둠이 얼마나 깊었길래 그들은 그런 용감한 선택을 했던 것일까.

어지러이 공중파 뉴스를 타고 있는 타락하고 부패한 조국 교회의 현실. 이것은 우리가 중세 교회로 자진해서 돌아갔던 탓이다.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거절하기, 그것이 우리 시대의, ‘우리 몫의 종교개혁’이 아닐까. 우리가 종교개혁 탐방의 첫 순서로 로마를 선택하고, 또한 특별히 이곳 바티칸을 경험해야 할 이유는 바로 이런 고민을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끌어내어 나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함이 아닐까.

이제 바티칸과 작별하자. 다음에 볼 곳은 판테온 신전이다. 고대 로마의 신전이 종교개혁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직접 가보기로 하자.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