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책과 다른 구별된 책인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세상 책을 읽는 방법만 가지고는 안 될 것이다. 성경해석에는 독특한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파악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성경해석이 무엇인지 먼저 그 개념을 정확하게 하고 나서, 성경해석이 왜 필요한지와 혼용되고 있는 성경해석에 관한 용어들에 대하여 정확한 의미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 성경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과 해석학의 뜻 성경해석(Biblical Interpretation)을 말하기 전에 '해석'이란 용어의 뜻부터 살펴보자. 해석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뜻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해석이란 일종의 행동으로 볼 수 있으며 자동적으로 '해석학'이라는 학문과 결부되어지게 된다. 따라서 해석학(Hermeneutics)이란 해석과 관련된 이론과 방법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학이라는 뜻의 영어 Hermeneutics는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말과 글의 신인 헤르메스(Hermes)에서 연유하였다. 로마 신화에서 머큐리(Mercury)에 해당하는 헤르메스는 다른 신들의 사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므로 신의 뜻을 해석하여 전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해석이라는 뜻으로 발전한 것 같다. 해석학의 여러 분야 해석과 해석학은 성경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의 문헌들은 현대인들에게 문화적, 역사적으로 생소한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해석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며, 법률이나 철학, 과학 서적 등을 전문가의 해석 없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 방면에서도 해석이 필요한데 음악해석, 미술해석 등의 분야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덱거는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존재를 파악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존재의 해석'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이 해석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해석의 특수성(이해와 적용의 양면성)
이상에서 '성경해석'은 성경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서 이해시키는 것이며, 이를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성경해석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뜻을 아는 것으로써 해석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신앙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역시 인간의 글자로 내용이 표현된 점은 다른 책과 다를 것이 없으나,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아닌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으므로 성경은 이해과정으로 그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였다면 나의 삶에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성경해석의 특수성(성령의 안내)
또한 성경해석은 통상적인 해석학의 지식으로써만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물질과 현상계 속에서 제한적으로 살고 있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초월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해석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알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Comprehension)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일반적인 독해의 기술은 가질 수 있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가 아닌 자가 성경을 읽을 때 절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읽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기적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이성과 합리주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경을 읽고 이해한 것들은 진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한다는 말을 직통 계시와 같은 어떤 신비적인 현상에 의존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령의 안내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혜와 인격을 건전하게 사용하여 말씀을 이해하되 그러한 방법들에 과오가 없도록 기도하면서 지혜가 부족하지 않도록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 원리와 성령의 인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즉, 성경을 이해하려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것과 여러 가지 연구된 건전한 이론과 방법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실상 성령의 안내는 이해하는 과정에서보다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 더 많이 요청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해석의 건전하고 올바른 방법들을 통하여 이해한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하여 묵상할 때 하나님께 기도로써 교통하면서 뜻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학에서 말하는 건전한 해석방법이란 다른 분야의 해석방법과는 다른 요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해석의 정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해석'과 '해석학'이란 용어는 구태여 구별하지 않고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어에서도 Hermeneutics와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이 서로 간에 구별 없이 사용되어지며, 비슷한 이유로 성경해석과 성경해석학에 대해서도 Hermeneutics와 Biblical Interpretation 어느 것으로 표기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Hermeneutics만으로 성경해석학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까닭은 성경해석은 모든 해석의 왕도이며, 성경해석학이야말로 해석에 관한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전통을 가진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개념을 구분하자면 '해석학'은 학문이며 '해석'은 하나의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해석학(Hermeneutics 또는 Biblical Interpretation)은 성경을 대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 이해시킴과 동시에 본문 이해를 바탕으로 삶에 적용케 하는데 따른 여러 가지 원리와 실제적 방법들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해석학은 학문적으로는 주경 신학(Exegetical Theology)의 한 기초 과목으로 되어 있으나, 어떤 신학이라도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신학을 하기 위한 기본 준비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해석(Interpretation)이란 성경해석학에서 다루는 내용으로서 용어의 정의로는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해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성경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가 자신이 읽고 이해한 본문을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원리와 방법들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Ⅱ. 성경해석의 필요성과 목적 성경해석의 필요성
해석이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해석은 당연히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을 읽는 자는 성경의 해석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올바른 성경해석방법부터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성경을 읽기만 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그러한 성경 읽기는 올바르고 건전한 해석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사실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성경의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기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많이 지배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단(異端)들도 한결같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똑같은 성경을 두고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계속해서 이단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잘못된 신앙도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해석에 입각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성경해석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언어에는 문화와 역사, 사상과 관습 등이 담겨 있으므로 성경의 기록 당시와 독자들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하여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많은 사본들과 번역본이 있기 때문에 어떤 본문을 택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더욱 어려움을 주고 있다. 다음은 시간적,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로서 과거의 문서인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타인과 근동 지역 그리고 헬라 반도와 로마 등에 대하여 생소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다음은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인데 성경 기록자들과 우리들간에 지식과 경험이나 문화와 상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끝으로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가 있다. 성경은 많은 문학 장르를 포함하고 또 그 내용과 표현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함으로써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외에도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위에 제시한 것들 때문에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성경해석의 역할과 목적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한 성경해석의 역할은 마치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갈 때 안내자가 필요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누가 모르는 어떤 길을 처음 가게 되었다고 할 때 그 길에 관하여 전혀 지리를 모르고 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가야 한다면 가는데 실패하거나 아니면 가긴 가더라도 꽤 고생을 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무척 많이 낭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자세히 물어보고 또 지도를 보면서 간다면 훨씬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길을 가는데 안내자가 필요하듯이 성경을 읽을 때도 그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성경해석은 성경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잘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해석이라는 안내자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구체적 이유로는 성경이 씌어진 시점과 읽는 자들 간에 엄연한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또 언어적, 문화적, 지리적, 종교적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해석의 목적은 이러한 시간적․공간적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읽는 자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도록 하는 동시에,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두 가지 방향에서 성경해석에 관한 이론과 실제적인 방법들에 대하여 설명하여 갈 것이다. |
성경해석의 용어들의 관계
용어의 혼용과 구별 성경해석학에는 주석(註釋), 석의(釋義), 주해(註解), 주경(註經), 강해(講解), 해석(解釋), 해석학(解釋學)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는데, 이들 용어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말 같아서 많은 경우에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용어들 간에도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미묘한 개념 차이는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여 용어의 혼동을 피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해석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관련된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용어들이 나타내는 개념은 무엇이며 서로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해석학, 해석
성경해석과 관련된 용어들의 상관 관계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석에서부터 석의, 주해, 강해 그리고 해석, 해석학의 순서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해석학은 Hermeneutics 또는 Biblical Interpretation 이라고 하며 해석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해석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석은 영어로 Interpretation이라고 하며 광의적으로 해석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하므로 다시 주해와 강해로 구분한다. 주해(註解)가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강해(講解)는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을 나누는 것은 앞에서 성경해석의 목적이 나눠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석의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것 같다. 학문적인 정의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해석이란 주해와 강해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해석이라고 할 때는 적용(Application)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즉,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해를 가리키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이란 용의에 대해서는 광의적인 개념과 협의적인 개념이 혼용되고 있으나,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사용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어떤 경우에는 일반적인 용어 사용법을 따라서 주해를 해석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가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주해
주해는 주경(註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Exegesis 라고 하는데 어원은 '길을 안내하다, 설명하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 엑세게오마이(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From의 뜻의 에크( ) 전치사와 인도하다라는 뜻의 헤게오마이( ) 동사가 합성된 말인데, ~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만일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 사상을 개입시키면 주해가 아닌 외삽(外揷)이 된다. 외삽은 Eisegesis라고 하는데 헬라어 접두어인 에이스( )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해는 말뜻에서 보듯이 Into가 아닌 From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해의 원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 철학, 신조, 교리 등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안 되며, 오직 성경에서 비춰져 나오는 빛을 겸허하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여야만 한다는 말이다. 주석, 석의 주해는 다시 세분하면 주석과 석의로 나뉘어 진다. 주석과 석의라는 용어는 서로 많이 혼용되지만 실제로 의미상에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말이다. 이들은 범위에 따라 개념이 약간 다른데, 주석이 일반적으로 석의라는 말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주석(註釋)이란 영어로는 Explanation이라고 하며 무엇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 주석은 어느 일정 본문 내에서 단락 내지는 어느 일부 구절들을 택하여 뜻풀이를 하는 진행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본문 전체가 아닌 한 구절씩을 어귀의 뜻풀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석의보다 좁은 의미를 가지는 주해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석의(釋義)라는 용어는 Commentary라고 하며 주석을 통하여 구절들의 뜻풀이를 모아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석의는 주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두 가지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강해가 말씀을 적용하는 측면이라면 석의나 주해는 성경 본문의 최초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해와 주석과 석의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해는 강해에 대조되는 큰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주해의 세부내용은 다시 어귀 해석의 주석과 본문 해석의 석의라는 개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강해 다음, 강해(講解)란 영어로는 Exposition인데, 뜻풀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도록 설득시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즉, 강해 설교(Expository Message)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주해가 본문이 최초 의미하였던 것을 드러내는데 주력함으로써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Historical Particularity)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본문의 최초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곧 강해는 본문과 나와의 관련성(Contemporary Relevance)을 발견하고 현재 나에게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실존적 이해를 다룬다. 주해와 강해의 관계 이상에서 말할 것은 결국 주해도 해석이고 강해도 해석이라는 뜻이다. 주해는 단순히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강해는 주해를 바탕으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주해가 성경 말씀을 가능하면 성경이 기록되어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현재적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강해는 그러한 주해를 바탕으로 삶의 증거들과 연관지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해석은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해와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를 모두 포함하여야 완벽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평형을 잃게 되며, 건전한 해석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뜻을 아는데 그치고 실천이 약한 '지식적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수 있고, 강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신앙의 기복이 심한 '감각적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해석은 주해와 강해를 병행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안 유 섭 목사 (아르케 아카데미 원장, 반석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