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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직업교육

[태평로] 멀쩡한 高卒 취업 길 막고 공무원 늘리는 정부

[태평로] 멀쩡한 高卒 취업 길 막고 공무원 늘리는 정부

조선일보 
  • 안석배 사회정책부장
  • 입력 2019.01.28 03:15

    취업률 높아 인재들 몰리는 특성화 짓밟고 세금 들여
    공무원 더 뽑겠다는 정부의 '일자리 헛꿈'이 걱정스럽다

    안석배 사회정책부장
    안석배 사회정책부장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나쁘지 않았다. 전전(前前) 정부에서 도입한 마이스터고로 고졸 취업 분위기가 되살아나 최근 5년간 취업률은 꾸준히 70% 중반을 유지했다. 특성화고에 학생들이 몰렸다. 우수한 인재가 오니 기업은 반겼고, 학교 취업률은 다시 올라갔다. 매년 100% 취업률을 보이는 학교도 생겼다. 게다가 특성화고 학비는 면제였고 군대 가서도 전공 살려 복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생 84%가 대학 가던 사회에서 "꼭 대학 가야 하나" 하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경북 울진에 있는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입학했다. 이 학교는 원전(原電)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국내 유일의 마이스터고다. 학생 대부분은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 주변에선 대학에 가라고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반대하는 부모님도 설득했다. 전북 임실에서, 충남 논산에서, 서울 중계동에서 인재들이 모여 '원자력 일꾼'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여름 경주에서 열린 '국제 원자력 안전 포럼' 때 일을 학생들은 기억한다. 회의 도중 캐나다 학자가 학생들에게 오더니 "한국에서는 이렇게 체계적으로 원자력 인재를 육성하느냐. 놀랍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학생회장은 "그 순간이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대학 가는 길을 스스로 포기했지만 더 밝은 길이 아이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요즘 취업난으로 절망에 빠졌다. ()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업계 취업문이 닫힌 것이다. 학생들은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원전 안전은 저희가 지켜나갈 테니 탈원전 정책을 다시 생각해 달라'고 했다. 요즘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전학(轉學) 가겠다는 친구들도, 남은 학생들도 모두 흔들린다. "그러길래 일반고 갔어야지"라는 말을 주변에서 들으면 학생들은 "우리가 뭘 잘못했지"라며 스스로 움츠러든다.

    지난주 정부가 고졸자 취업 대책을 내놨다. 갈수록 떨어지는 고졸 취업난을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작년 75%였던 특성화고 취업률은 지난해 65%로 떨어졌고, 올해는 더 안갯속이다. 그런데 정부 대책(對策)이란 걸 보니 세금 쏟아부어 공무원 늘리겠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국가직 공무원 9급 시험 지역인재전형에서 고졸 채용 비율을 2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지방직 공무원 중 특성화고 선발 비율도 20%에서 30%로 확대하고, 공공 기관에는 고교 졸업 예정자만 응시할 수 있는 전형이 생긴다고 한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매년 10만명씩 사회로 나온다. 공무원 몇 명 늘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민간에서 일자리를 많이 늘려야 하는데 기업은 지금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무 같은 일방통행식 정부 정책에 "신입 안 뽑겠다"고 맞서고 있다. 본질을 보지 않은 정부는 그래서 이번에도 '공무원 늘리기'를 밀어붙인다. 이렇게 일관되게 독선적, ()창의적 일자리 정책을 펴기도 힘들다. 그러면서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특성화고 학과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 생태계는 짓밟아 취업길 막아놓고 어떤 새 학과·분야를 키운다는 건지, 그걸 왜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지, 그렇게 하면 정말 일자리가 생긴다고 믿는 것인지. 탁상(卓上) 정책이 아슬아슬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7/20190127014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