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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직업교육

[스크랩] 40년 전 조국의 모습이던 ‘수단’의 빈민촌에서, 朴 대통령 재발견

40년 전 조국의 모습이던 ‘수단’의 빈민촌에서, 朴 대통령 재발견

40년 전 조국의 모습이던 ‘수단’의 빈민촌에서, 朴 대통령 재발견
[ 이준석·1968년 서울 출생·직장인 ]

유년 시절, 朴 대통령에 대한 기억
소년기에 흑백 TV를 통해 보았던 朴正熙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74년 육영수 여사께서 마지막 가시던 길에 청와대 문 앞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시던 모습, 뉴스 시간에 보았던 각종 행사에서의 모습, 강단(剛斷) 있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외국 국가 원수들과 비교해 유난히 작아 보이던 키- 이런 것들이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朴正熙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고교 시절부터는 朴正熙 대통령을,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국을 위해 헌신, 봉사한 거인으로 존경하게 됐다. 하지만 소위 386 세대인 내 주위에서 朴正熙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의 위대함은 나라 밖에서 재발견할 수 있었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나는 비교적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 1997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수단과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 한국에서의 업무시간과 수단 현지의 업무시간을 맞추려면 소파에서 토막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름을 보내고 피곤에 지친 나는 내전중인 수단의 열악한 통신사정을 핑계로 본국과 연락을 끊고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우선 하고 싶었던 일은 모자라는 잠을 실컷 자는 것, 두 번째는 유년시절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란 TV프로에서처럼 랜드로버 지프차를 타고 야생동물들이 뛰노는 초원을 달려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프차를 타고 야생동물들이 뛰노는 초원을 달려보겠다던 낭만적인 꿈은 물 건너 가고 말았다. 차를 타고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로 나가보니 ‘동물의 왕국’대신 끔찍한 빈민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헐벗은 아이들, 하늘만 가린 집, 이방인만 보면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들,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생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 오늘 나가서 무엇을 보았소?”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 온 숙소에서 나는 농림부에서 정년퇴임한 후 수단에 농업기술고문으로 나와 계시던 60대 어르신을 만났다. 우리가 교외로 나간다고 할 때, “가 봤자 관광할 것도 없다”고 만류했던 그 분은 우리 일행에게 물으셨다.
 
  “젊은이들, 오늘 나가서 무엇을 보았소?”
 
  우리는 보고 느낀 대로 말씀을 드렸다. 우리의 얘기를 들은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본 그 모습이 40 여 년 전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잘하시고 가족과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항상 생각하는 젊은이가 되십시오. 우리 세대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니 조국의 미래는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순간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오늘의 조국을 이룩한 부모님 세대와 그 시절을 이끌었던 朴正熙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젊은 시절 만주군 경력을 들먹이며, 그분을 ‘친일파 청산’의 앞자리에 올려놓으려는 이들이 있다.
 
  나의 증조부께서는 3·1운동 당시 청주 인근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시고,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 소각해 건국훈장을 받으신 분이다. 그런 분의 자손으로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일제에 맞서 싸웠던 내 증조부나, 5·16혁명을 일으켜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한 朴正熙 대통령이나 지고(至高)의 나라 사랑은 마찬가지였다”고

출처 : 맹호의 추억
글쓴이 : 맹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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