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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3:1-6
예중교회/김철현 목사

온 지구를 뜨겁게 하던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스스로는 높아진 국가 위상에 기뻐하며 나름대로 성공한 월드컵을 자축하기도합니다.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 주는 큰 역할을 월
드컵이 해냈습니다. 그 가운데 긍정적인 하나의 변화가 있는데 그것은 한국축구의 4강 신화
를 이룬 장본인인 <거스 히딩크(Guus Hidink)>감독의 조국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과 국
가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은 외국 여행 희망지 중에 단연 네덜란드를 손꼽는다
고 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양국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네덜란드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마는 옛날부터 네덜란드하면 가장 대표적
으로 떠오르는 유명한 풍물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풍차(風車 :
windmill)]입니다. 풍차가 무엇인지는 다 아실 것입니다.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바람의 힘
을 이용해서 동력을 얻는 기계"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날개들이 돌아가며 힘을 만들어
내고 그 힘이 물을 뿜어 올리기도 하고 방아도 찧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거대한 풍차를
돌리는 것이 바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불어 주지 않으면 이 풍차는 무용지물(無用之
物)입니다. 만약 사람의 힘으로 그 풍차를 돌린다고 생각해 보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절대
로 안될 것입니다.
믿음의 삶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나름대로는 날마다 잘 해 보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쉽게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어 보기도 합니다. 의지를 다져 보기도 합
니다. 결심을 새롭게 해봅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또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도 쉽게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우리의 날개가 쉼 없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돌릴 바람이 있
어야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돌려 나갈 수 없는 믿음이라는 풍차를 돌릴 수 있는 그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소년이라
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9-31)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입니다. 그런데 아
무리 바람이 불어도 풍차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이겠습니까? 풍차의 방향
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풍차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바람을 향해서 서있어야 합니다. 방향
만 바람 쪽으로 향해 있다면 가만히 있어도 풍차는 힘차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하나님을 향해서만 있다면 그래서 하나
님이 주시는 힘으로 산다면 우리의 삶은 강한 힘을 받아서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자기만의 평가에 의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기평가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가
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세 단계의 평가 기준을 거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삶에 의해
자기를 평가합니다.
먼저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과거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과거를 참 중요하게 여깁
니다. 묻어 두었던 옛이야기 보따리를 꺼내어 하나씩 풀어놓기를 좋아하는 습성들이 이 때
문입니다. 그 과거가 절망이었든지, 아픔이었든지, 실패였든지, 그래서 때로는 지우고 싶은
과거일지라도 소중히 여깁니다. 그 내면에는 오늘의 내가 있기에 그 과거는 소중한 것입니
다. 그래서 그 옛날을 돌아보며 나를 평가합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는 현재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인 현
재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이는 가정이 있어 즐겁습니다. 가족이 있어 인생의 참 의미를 느
낍니다. 자식이 있어 소망이 있습니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합니다. 반면에 불행하다 생각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겐 모든 것이 늘 부족합니다.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보다 좀 더 나은 미래가 있기를 조
급하게 기다립니다. 얼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렇듯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삶의
평가에 행, 불행의 기준을 둡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미래의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한층 더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어선 또 다른 세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따라옵니다. 과거보다는 말할 나위 없이 나은 미래여야하고 현재보다도 더더욱 나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는 만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피곤합니다. 성취하는 길만
이 내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여기기에 그 미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
니다. 때로는 인격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윤리와 도덕이 무시되는 <총체적 인간
성 상실>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를 인정 받고자합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다
좋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여 인정 받고자 하는 열성은 대단한 것
이라 합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있으니 이게 문
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불평
과 원망은 잘하지만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불평과 감사는 할수록 커집니다.
내 과거의 삶을 돌아 보건대 정말 감사한 일 뿐입니다. 그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아무짝에
도 쓸모 없을 나 같은 못난 인간이 이렇게 까지 왔다는 사실이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내 삶이란 더욱 눈물로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
습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리라고 꿈속에서나 상상해 보았습니까? 여러분, 미워하
지 마십시오.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밉다해도 가만 생각해보면 이 보다 좋은 사람
들이 없습니다. 특히 이 세상에는 내 남편보다 좋은 남자는 없습니다. 내 아내보다 좋은 여
자는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사람끼리 짝지어 놓으셨기 때문입
니다. 비단 인간관계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불만이 너무 많습니다. 요구가 너무 많아요. 원망
이 지나칩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덴버(Denver)>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자동차 안
에서 졸도해 있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자동차 가스인 일산화탄소가 차 속으로 스며드는 것
을 모르고 문을 잠그고 잠든 채 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졸도한 것입니다. 달려온 구조대는
잠겨진 차안에서 두 사람을 구해내기 위하여 결국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사람을 꺼내
어 인공호흡을 시키고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구조대의 재빠른 조치로 두 사람은 죽음을
간신히 면하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기가 막힌 일이 발생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청년이 경찰서에 들어오더니 청구서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 청구서는 다름이 아
니라 구조대가 그들이 목숨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린 것을 수리하고 가
지고 온 청구서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용서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
습니다. 그런데 그 값진 구원을 거저 받은 우리들이 또 다른 요구들로 하나님을 괴롭힙니다.
말이나 됩니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제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이 불만입니까? 복중의 복인 죄 용서함 받고 구원의 복을 주었으면 감사할 것
이지 그렇지 못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는 깨알같이 적힌 <불만목록서>와 <청
구서>가 들려져 있습니다. 무슨 불만을 터뜨릴까를 잠들기 전까지 생각하다가 잠이 들고 눈
만 뜨면 자동판매기처럼 쏟아냅니다. 하나님께 청구하려고 하는 것과 불만이 정말 가한 것
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교회가 너무 적어서 기분 나빠 못 다니겠습니다. 큰 교회에
가서 좀 폼 나게 예수 믿어 볼랍니다"."하나님, 사람들이 이 위대한 나를 알아주지 않아서
불만입니다."."하나님, 대박 한번 터져서 벼락부자나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예수 한
번 진하게 믿어 보겠습니다."혹여 이 정도의 유치한 불만과 어리석은 청구가 아닌지 모르겠
습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들에게 한 마디로 정신차리게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살
전 5:16-18)
여러분 언제나 감사가 먼저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깨달음에 있습니다. 깨
달음만이 아니라 좀 더 나아가서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 곧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습니
다. 사람이 어떠한 여건에 있든지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그는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영국의 설교가요 성서학자인 <메튜헨리(Matthew Henry)>는 어느 날 평소에 자기가 지나
는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매를 맞아 많은 피를 흘리며 겨우 집
에 도착을 했습니다. 놀란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10여 년 동안 똑같은 골목길을 지나면서 아무 사고가 없었던 사실에 대한 감
사가 없었습니다. 그저 무사히 집에 돌아온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에 감사가 없었
습니다. 주님, 저의 무지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부터는 그 골목길을 지나 무사히 집으로 들
어올 때마다 감사하는 여생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루함을 느
낄 정도의 자신의 평범한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기적이라는 깨달음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범죄 심리학자인 <소퍼(Soper)>박사는 교도소에 있는 복역수와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의 차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한다. 그러나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울타리에 갇
힌 사람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불평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감사란 <깨달음>과 <겸손>에서 오는 것이고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흔히 감사의 차원을 셋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리적인 감사>입니다. 다른 말
로는 <조건적인 감사>혹은<반사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하
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일반적인 감사입니다. 둘째 감사는 <철학적 감사>가 있습니
다. 이것은 가난하다가 부해져서 하는 감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서 깨달음이 깊어진 것
입니다. 전에는 은혜인 줄 몰랐는데 깨닫고 보니까 은혜요, 전에는 복인 줄 몰랐는데 깨닫고
보니 복이란 말입니다. 전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제
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있고 셋째는 <신학적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예수께
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죄를 속량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이 은혜요, 기쁨이요, 복
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감사가 있다면 바로 이
세 번째 감사일 것입니다. 이 감사를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읽었던 시23편은 너무나 유명한 다윗의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총체
적인 감사를 보여줍니다. 그의 과거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현재의 삶
에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노래며, 장래 자신에게 베푸실 놀라운 하나
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보다 마땅히 감사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8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형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 목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블레셋]의 전사
인 <골리앗>을 죽이고 그 포상으로 <사울>의 딸을 얻은 후 <사울>의 시기 대상이 되어
이곳 저곳으로 도망 다녀야 하는 어려운 시절을 겪게 됩니다. 더군다나 잠시 흐트러졌던 그
의 생활이 <밧세바>를 범하게 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계획적으로 살인하는 죄에 이르
게 합니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그의 삶에 무엇이 감사 할만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이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잊지 아니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이 신앙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감사의 극치가 오늘 그의
노래에 담겨져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은 다윗의 감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주시는 총체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이 보다 더 어
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이런 빈 잔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심령 속에 깃들
여 있는 이 빈 잔은 영원한 가치가 아니면 채워 질 수 없는 잔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이
세상의 어떤 것들로도 채워 질 수 없는 잔입니다. 여러분은 영혼의 잔을 무엇으로 채우려합
니까? 무엇으로 인하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감사 할 수 있습니까? 이 [맥추 감사주
일]에 여러분의 영혼의 빈 잔이 여전히 비어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가치 없는 잡
동사니들로 가득 차서 감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보다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의 빈 잔에 가득 찬 시기와 질투와 허영심, 그리고 미워하는 마음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불 신앙적인 자기 자신의 벽들을 허물
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마땅히 채워야 할 영원한 가치들을 채우지 못하여 허기진 영
혼의 빈 잔을 감사의 조건들로 가득 채워서 오늘 다윗 같은 찬양을 끊임없이 드릴 수 있기
를 바랍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출처 : 레드 컴퍼스 Red Compass
글쓴이 : e-no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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