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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스크랩] 로마서(26) 거룩하기 원합니다 - 13년 10월 5일 주일설교

거룩하기 원합니다.

 

 

로마서 615-23

 

 

로마서 6장을 가지고 네 번째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6:8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죄의 유혹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죄의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은 죄가 싫습니다. 죄를 뿌리치고자 하는 새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와 싸웁니다. 그리고 죄와 싸우는 성도는 반드시 죄를 이깁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거룩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바울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들입니다. 흔히 말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읽는 개역개정 성경으로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것이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로 보면 맺었으니라는 단어가 현재형입니다. 즉 계속해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성경에서는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마음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큼 우리에게 힘과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좋습니다. 성도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나빠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비록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거룩함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룩함을 말하면 고개를 돌립니다. 고리타분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질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거룩함이라는 주제는 성도들에게도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관심이 많은데, 그에 비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의 첫 번째가 거룩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봅니다. 그때 스랍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도 환상 중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속 장차 오실이시라.”(4:8)

거룩하다고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한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랍들이, 네 생물들이 그렇게 찬양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실 뿐 아니라 거룩함이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이 도우슨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의 거룩하심이라 믿는다. 사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자비를 이해할 수 없다.(자비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기 전에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측량할 수도 없으리만큼 깊은 그분의 사랑을 깨달을 수도 없다.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더불어 막힘이 없는 온전한 교통 속에서 지내셨던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악 된 이 세상에 오신 그 사랑,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더러운 죄를 친히 담당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알지 못하면 구속의 깊이, 즉 거룩한 하나님이 그러한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이 도우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예수전도단, pp, 41-42)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도 거룩하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르면 십자가의 사랑도 하나님의 심판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왜 그렇게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습니다. ‘눈은 당신을 닮았는데, 코와 입은 나를 쏙 빼닮았어.’ 하며 좋아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은 부모의 본능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들을 보면서 하나님 당신의 모습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함을 보실 때마다 기쁨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들을 봐라. 어쩌면 이렇게 나를 쏙 빼닮았을까?’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만드신 사람이 죄로 인하여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모습은 없고, 온통 마귀의 모습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이 마귀의 종이 되어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죄로 인하여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씻어주시고 우리의 거룩함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거룩함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그 마음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전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또 거룩한 삶은 구원받은 자만이 맺을 수 있는 열매이고, 또 구원받은 자가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22절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맺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과 거룩한 삶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과 거룩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의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함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의 마지막이 영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봅시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이 구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로마서 3:24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은 칭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2절은 칭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칭의 다음에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라는 구절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지난 주일에 나누었던 로마서 6:12-13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것은 성화입니다.

그 다음에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영생은,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22절은 성도의 칭의와 성화와 영화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칭의를 알고 영화를 알지만 그에 비해 성화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이 세상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사는 것 대신에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을 집어넣었습니다. 여기에는 목사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이 성도들을 바로 가르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목사들은 이렇게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면 수많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는 길이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박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어떤 환난을 만나도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사는 성도의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삽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죄를 끊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정리할 것은 미련 없이 정리하고, 돈을 잃고 명예를 잃고 성공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도답게 거룩하게 살자는 말씀을 들고 강대상에 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준비한 원고대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면서 교인들의 안색이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불편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불편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 목사님 안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죄를 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분명 하나님의 뜻인데, 준비한 원고대로 계속 설교하면 많은 교인들이 시험에 들 것 같고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준비한 원고대로 설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를 전하지 못하고 타협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결국 설교자의 이런 태도가 한국교회를, 한국 그리스도인을 병들게 했다고 탄식했습니다.

 

형제교회 목사님의 영성일기입니다.

권사님이 일방적으로 주일을 두 번이나 범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전화를 걸었더니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고 하시며, 일본인 남편이 일본교회로 가면 자기도 일본교회로 가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로 섬기던 교회를 떠나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했지만, 분명 그것을 구실로 내세워 다른 교회를 가려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고 우리 교회로 옮겨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말씀에 많이 부딪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을 알고 주님만으로 살자고 외치니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 출신이라서) 권사님은 안수하면 복만을 기도 해 주어야 하고 죄에 대한 말씀보다 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온전하지 않아도 복을 구하면 복을 받아야 된다는 그런 기복주의 신앙입니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돈 나와라! 뚝딱! 하면 돈이 나와야 하는 식입니다. 신앙생활은 본이 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는 세상 복 다 받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런 신앙관을 갖고 있기에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만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타협도 하면서 상황에 맞추어서 믿음도 그렇게 가져야 한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외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말씀대로 살아내는 그런 성도들을 세우고 싶은 것이기에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은 세상 성공이 곧 좋은 믿음인양 복! ! 만을 외치게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볼수록 이제는 남은 목회에 오직 주님만을 외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어떤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음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강하면 부러지기 싶다고 하는데, 말씀이 말씀되게 하지 않으면 부러져야 할 것은 부러져서라도 복음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복음만으로 충분합니다! 복음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복음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오직 복음으로 돌아가고 말씀으로만 살아 내는 그런 목사가 되게 하시려는 주님의 계획 앞에서 영적전쟁을 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앞세우며 제 안에 계시는 주님만을 따라가겠습니다. (문맥상 몇 군데를 수정했습니다.)

 

목사들의 잘못이 큽니다.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부담스러워하고 복 받는다는 말씀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타협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주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믿음 없는 성도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하면 교회를 떠날 질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믿음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죄를 끊고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합리화 하면서, 일단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예수 믿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라는 말씀대신 예수 믿고 복 받습니다.’ 라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에 다닌 시간만큼 자연스럽게 죄를 끊고 거룩하게 사는 교인이 되었습니까? 물론 그런 교인도 있습니다.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을 배우는 시간에는 거룩해지는 것 같은데, 세상으로 나가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신령한 복입니다.(1:3)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 복이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복이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복이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복입니다.(1:4-7)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받는 복은 하늘의 복입니다. 이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 세상에서 무병장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복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복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베드로전서 1:15-16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말씀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 중에도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나, 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구원받은 성도는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자의 마지막이 영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간절함 없이는 거룩하게 살겠다는 결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성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심령에 거룩하게 살고 싶다는, 거룩하게 살아야겠다는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책에서 읽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담배를 권했습니다. ‘한 대 피우시지요.’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못 피웁니다.’ 담배를 권했던 사람은 혼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옆에 있던 사람이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며 링컨에게 말했습니다. ‘한잔 하시지요. 혈액 순환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고, 여행할 때 술 한 잔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못 마십니다.’

그러자 담배와 술을 권했던 사람이 한심하다는 듯이 링컨을 바라보면 말했습니다. ‘어떻게 남자가 이런 것도 못합니까? 담배도 못 피우고 술도 못 마시고, 남자가 그래서 되겠습니까?’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9살 때, 임종을 앞둔 어머니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에게, 너는 예수님을 믿고 일생 동안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유언대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비록 9살 어린 나이였지만, 링컨은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그런 유언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링컨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어머니의 유언을 귀히 여겼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링컨에게 무거운 짐이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링컨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의 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 링컨에게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죄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자의 마지막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는 거룩하게 사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거룩함이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에게는 거룩함에 대한 간절함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거룩한 자로 만드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알면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불타는 소원이 생깁니다. 오늘 성찬을 받는 여러분 안에 거룩함에 대한 간절함이, 거룩하게 살고 싶은 소원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

출처 : 치바영광교회
글쓴이 : 김성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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