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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은사의 성격과 유형

성경 : 고전 12:4-6

제목: 은사의 성격과 유형

 

은사에 대한 성격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은사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살펴봐야합니다.

1) 은사를 위한 세 가지 표현,

2) 소유냐 나타나심이냐,


은사의 세 가지 표현

고전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직분은 여러 가지나, 사역은 여러 가지나,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사, 직분, 사역 이 모두가 다 성령의 은사를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를 3가지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4절에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카리스마타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 혹은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 다음에 직분이라고 나와 있지요. 5절에 직분은 디아코니아입니다. 이 단어는 섬김을 의미합니다.

페트라주석에 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보다 특별한 의미로는 어떤 의무의 수행을 뜻하여 사도들이나 전도인들이나 마가같은 조력자들이 맡은 책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나열하면서 직분들도 나열하고 있습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할하는 것이라


12:6,8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여기서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데 성령의 은사 중에 사도, 교사, 선지자, 능력행하는 자,

12장 가르치는 자, 위로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자 이렇게 나옵니다.

뭘 볼 수가 있느냐하면 직분은 은사를 통해서 감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고전12:6절을 보면 성령의 은사를 표현하면서 사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에네레 게마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에네레 게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에네레 게오라는 단어에서 에너지라는 영어가 나옵니다. ‘에네레 게오는 결과를 산출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역은 결과를 가져오는 효과적인 활동 의미합니다. 성령의 은사에서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소유냐  나타나심이냐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소유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지체로 태어난 것입니다. (고전12:12-13)

우리의 몸의 지체는 각각 그 기능이 다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각자에게 직능이 있다는 말입니다. , , , 등의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라고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구절에도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고전12:27-30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각기 가지에게 맡겨진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소유의 개념으로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해입니다. 그런데 몸의 기능으로서의 은사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기능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능이 한 가지만 아니라 몇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간이 해야 할 역할이 한가지만은 아닐 것입니다. 입이 해야 할 일도 먹고 말하고 맛보고 이런 역할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선물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주어졌는데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중요 합니다. 누가 선물을 주었는데 그 선물을 반갑게 받고 포장을 열어 어떤 선물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선물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놓고 열어보지도 않는다면 선물을 주신 분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그 은사를 확인해야 되는데,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동원합니다마는 먼저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 그리도 무엇을 행동하느냐 여기에 한 가지 또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 공통적인 것이 은사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를 발견하고 난 후에는 그 은사를 개발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분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사를 소유로 가지는 개념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소유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은사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유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난다할지라도 그 사람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기도한다고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하셔야합니다. 또한 가르치는 은사가 강력하게 나타난다할지라도 그 사람이 마음대로 원하는 때 가르치는 은사가 역사하도록 나타나지는 안 습니다.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이런 부분이 안 맞습니다. 두 번째로 성령의 은사를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14:12-13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냐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성령의 은사를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주어진 은사에 대해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구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서는 구하라고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를 나타나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전12:4-6  본문말씀 다음에 7절에서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해 문제제기를 좀 할까합니다. 먼저 우리의 은사가 소유적 개념을 가지고 있어도,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그 소유를 개발하고 헌신해야만, 즉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봉사와 헌신으로 실천해 갈 때 성령님이 도우시고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를나타나심으로 이해하는 분들의 위험성이 무엇이냐 하면, 은사를 구하라, 사모하라는 것 때문입니다


고전12;11 ‘이 모든 일을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 모든 일은이 모든 일은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그리고나누어주심은,’이나나타나심을 주심은현재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시간적으로는 지속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발견함이 없이, 기도도 훈련도 없이 그냥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현재 나타나되 소유된 은사가 때를 따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사모하면 무소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 기능과 직분과 은사와 사역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나타남이 문제가 되는가하면 이렇게 사모하면 받을 수 있는 방언을 왜 못 받느냐고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은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하나님께 때 쓰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방언 못 받는 사람, 사람 취급도 안하고 신앙적 평가를 하는 고린도교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타남의 또 다른 문제는 은사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갖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문제입니다. 은사는 주시는 자의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은사는 이천년 전에 역사나 오늘의 역사나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저를 통해서도 가르치는 은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여러분들도 그렇게 기도해 주기시바랍니다. 말씀의 은사는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통해서 사역과 직분을 맡은 것이지요, 말씀을 전할 때도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나타내셔야하고 또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도 성령께서 여러분들의 비췸으로 인해 말씀을 믿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외예는 있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되어 갔는데 그 분이 신유의 은사가 없더라도 복음을 위해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이 불가할 때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쓰는 경우는 있지만 이런 경우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전체적으로 인해하기위해서 은사의 4가지 유형(단계)을 살펴봐야합니다. 이 말은 성령의 은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은사, 직분, 사역 등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순종입니다.

               첫 번째 유형(단계)이 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사모해야 되고, 은사를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된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감당해야할 하나님이 사역입니다. 그 사역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공통적으로 사역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입니다. 이 부분은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역적 측면에서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전도의 은사가 있으신 분들은 다릅니다. 이 일에 사명을 가지고 이 일에 전적으로 충성을 다하며 특별히 개인에게 맡기신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전도의 은사는 복음을 전하는 자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 전도의 은사가 있는데 우리는 전도의 은사가 있거나 없거나 전도해야합니다 구제의 은사는 있거나 없거나 구제해야합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는 새 신자들을 양육하며 가르쳐야합니다, 물론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신 분은 교사로서 직책을 맡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 고치는 은사가 있거나 없거나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역을 전적으로 맡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협력해서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여기에서도 성령이 일하심으로 치유되는 은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유형은 합리적인 사고와 자연적인 능력에 속한 유형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청소하는 것 은사로 하기보다 사역적입니다. 식사당번, 안내, 친절함, 섬김, 나눔, 이런 것은 은사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셔야합니다.

이 유형에서 중요한 것은 신실함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을 충성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신실함입니다. 3:1-6절을 참조하십시오. 이 유형에서 상급은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내린 때나, 사르밧과부 집에서 숨어 있을 때나 상급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불을 내린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사건의 결과에 따라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상급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순종에서는 신실함이 중요하고 그리고 신실함으로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상급의 정도가 차이가 있음을 아셔야합니다.


두 번째 유형(단계)은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계획하시고 택하셔서 부르심에 함당한 사역을 위해 나타나심입니다. 예를 들어 전도할 때 우리의 능력으로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구제 또한 우리가 돈을 내지만 그 열매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이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보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복음을 전하니까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며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해 지혜의 은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분이 택하신 때 그 분의 방법으로 그 때 그때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이게 두 번째 유형입니다.

설교할 때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강하게 나타나야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전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것은 어떻게 준비할 것 인가?, 그리고 이 준비된 말씀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여기에 강력한 성령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일생일대의 중요한 예배, 생애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예배, 이 예배에 임재와 말씀의 공급함 없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회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목회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리면 목회를 위해서 목회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목회는 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회가 직업이 되어서 하는 전문직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유형(순종)을 따르는 사람일수록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는 자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력하게 구하는 자들에게 나타납니다.


세 번째 유형(단계)은 사역입니다. (Ministry)

              평신도사역의 관점에서 나누는 말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나갈 때 그 순종 위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유된 은사가 더 깊게 강력한 차원에서 타나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 사역을 맡기신 것입니다.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예를 들어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섬기는 일이 그 사람의 사역인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각자의 지체로서 각자의 기능이 있습니다. 눈이면 눈, 귀면 귀, 이런 것이 바로 사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할 몫이지요, 12:6-10말씀을 통해 성령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저에게는 가르치는 은사, 말씀의 은사가 나타나는데요, 강력하게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이것이 나에게 맡겨진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유된 은사지만 이것이 계발되고 또한 강력하게 그 분이 쓰셔야 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은사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주시고 우리를 사용하게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네 번째 유형(단계)은 직분입니다.

               교회가 소유된 은사가 발견됨으로 인해 그에게 직분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는 기능과 역할이 있는 것처럼 은사에 따라 직분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가 나타남을 보고 그 열매를 모고 공식적으로 직분에 임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12:28 말씀을 통해 전합니다. 은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여기서 세우셨으니이 단어는 단순과거형입니다. 12: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11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여기서 나누어주시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세우셨으니’‘나누어주시는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단순과거형으로 타나난 것이 그런 의미입니다. 그 직분이 세워진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직분인데 교회가 그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강력한 사역을 보고 열매를 보고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의 네 번째 유형입니다.

21:9-10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기서 빌립의 네 딸들을 언급하면서 예언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언의 사역이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다가 은사가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소유의 은사적 개념으로서 직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두로에서도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들에게 예언자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집사의 네 딸은 예언의 은사가 강력하게 자주 나타난 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의 사역이 주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보에는 선지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아가보의 예언하는 그 열매를 보고 그를 선지자의 직분으로 임명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네 번째 유형은 바로 직분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꾼이 세워져야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은사의 네 가지 유형들을 올바로 이해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가는 과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몸으로서의 기능에 대해서,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은사를 받아 직분을 받기까지 단계를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일반적인 주의 일을 순종하면서 주의 일을 하다보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빈번히 일어나고 자주 발생하면 그 사람은 그 쪽에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역을 통해 은사를 개발하고 직분을 받는 것입니다. 그기에 대한 가장 적합한 예가 사도행전21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은사 사역 직분을 통해 그 삶의 과정을 통해, 사역의 과정을 통해 교회에 감동을 나누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며, 교회가 든든히 서나가는 것이며,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총체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됨, 즉 교회에 내가 나됨을 발견하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즉 그 나라 소유된 백성으로서 당연히 순종해야하고, 당연히 연합해야하고 당연히 감당해야합니다. 왜요?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의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가대, 찬양대, 교사, 재정, 청소, 식사당번, 안내 차량운행, 전도, 기도,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몸이 내 몸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일 뿐이 됩니다. 명심하셔야합니다.


출처  영명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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