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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가면에 뜬 슬픈 맑음

가부키 가면에 뜬 슬픈 맑음

  

                                                                                유일 한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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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회를 만들자면 얼마든 일본에 갈 수 있었을 것이지만 굳이 방문의 역사를 엮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과거사를 부정하고 틈만 나면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그런 모순의 나라.

 

최근 조그만 인터넷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교사 한 분이 착하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학생에게 때때로 물심부름을 시켰다. 예절 바르고 공손하게 떠다주는 물은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그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그 학생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물에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감로수가 다름 아닌 양변기의 물이었다는 충격. 그 학생은 교사에게만 사실을 숨기고 학생들끼린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가슴에 쌓인 답답함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던 내겐 하나의 돌파구여야 했다. 우리의 교육은 어찌하여 저런 비인간을 속수무책 지켜보아야만 하게 되었는가. 나의 충격은 그 학생의 행동도 그러하지만 그걸 함께 지켜보며 즐겼다는 나머지 학생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적어도 내 어린 시절에는 그러한 비인간을 말리는 친구들이 있었으며 자기 힘으로 정 안 되면 교무실에 알리는 양심과 양식이 살아 있었다.

 

출발 당일 맑은 오후 햇살 속 부산국제크루즈터미널은 일단 시원했다. 그러나 항구에 정박해 있는 이만 오천 톤 급 후지마루를 바라보는 내 머리 속은 시원할 수 없었다.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는 무너진 공교육의 현장에 주소지를 둔 채 비뚤어진 한일 양국의 오늘 속을 거닐어 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공연히 짐 하나 더 얹어 돌아올 이 탐방 여정을 대체 나는 무슨 마음으로 응했던 것일까. 어째서 세상엔 이렇게도 비틀린 일들 투성이란 말인가.

 

쨍하게 좋은 날 설레는 여행을 앞두고 내 가슴은 그랬다. 갈수록 강퍅해져 가는 우리 학생들의 성정을 인간의 마음으로 되돌려 길러주지 못하는 게 무슨 교육일까. 갑자기 예전에 만난 일본인들을 떠올린 건 그때였다. 내가 그간 개인으로 만났던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매우 친절하고 예절바르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렇게 잘 교육된 개인들이 모인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는 어찌 또 그리 쉽사리 모순된 행태를 보여주는가 궁금했다. 어떻게든 전환이 필요했던 내가 어렵사리 여행의 동기와 의욕을 마련하는 순간이었다.

 

밤을 도와 대한해협을 지나고 현해탄을 건너 해 뜰 무렵 닿은 일본 땅 첫 기항지는 규슈 지방 하카다항이었다. 드디어 시작되는 탐방길, 버스에 오르며 나는 머리를 단순하게 정리했다. 탐방이란 화두를 들 때는 오직 역사만을 생각하자. 한 번 행차하면 8개월에서 2년이 걸렸다던 조선통신사절단의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공감하자.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도래인의 비운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던 선조들의 심정을 느끼자. 돌아갈 고국이 없는 아픔을 승화시켜 뛰어난 선진 문화 전승의 열정을 열매 맺은 그 유적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자. 오직 그것으로 족하다.

 

말로 들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본 거리의 깨끗함은 놀라움 자체였다.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규슈의 시골 마을 구석에서조차 쓰레기 하나를 보기 어려웠다. 청명한 봄 하늘 쏟아지는 밝은 햇살에 어울려 산과 나무들마저 다듬어진 게 아닐까 보일 정도였다. 비슷한 정도로 깨끗함을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막대한 벌금과 감시 체계로 그런 청결함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청소 인력조차 따로 없다는 일본은 그런 감시와 처벌 없이도 오히려 더 깔끔한 환경을 조성해 내었으니 더욱 대단하다.

 

 다자이후 정청 터와 후나야마 고분을 둘러본 첫날의 여정에서 그렇게 나를 강타한 것이 바로 일본인의 청결함과 그걸 지켜내는 책임감이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점심을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그들답게 조밀하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도시락이어서 꽤 맛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려 버스는 잠시 휴게소에 정차하였는데 놀랍게도 도시락 회사의 차가 그곳에 와 있었다. 빈 도시락 곽과 쓰레기들을 수거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나는 여기서 일본인들의 생활 속의 수행을 본 듯하여 전율이 일 정도였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근대 통일 일본의 권력을 장악한

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나는 그가 오늘날 일본의 뼈대를 세운 사람으로 평가한다. 일본의 오늘의 번영을 터 닦은 이가 바로 그인데 <대망>이란 소설에 의하면 그는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부자유를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것은 없는 법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고통을 견디는 수행자적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실제적인 실천의 힘이 담긴 교훈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모노세키를 거쳐 우베항에서 다시 배로 옮겨 탔다. 일본의 지중해라는 세토나이카이를 좌로는 본토인 혼슈, 우로는 시코쿠를 바라보며 밤새 항해하여 새벽에 오사카항에 입항하였다. 이곳에서의 첫날 가장 크게 기억에 각인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한 호류지였다. 우리에게는 벽화를 그린 이가 담징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는 근거가 희박하다 한다.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보다는 그곳에서 삼국 시대 절의 흔적을 알아보는 일이 중요했다. 좌우로 펼쳐진 토담에 볏짚을 섞어 만든 것, 수막새 연꽃의 문양, 암막새의 인동 당초 문양 등은 백제의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했다. 또한 기둥 끝 주두의 소로 받침대는 고구려 벽화와 닮았으며 배흘림기둥 또한 우리의 양식과 빼닮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때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소한 행위 하나로 갖가지 과오로 인한 부담을 덜어버릴 수 있다. 독일이 이미 그러한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잘못을 반성하고 유대인을 괴롭힌 과거를 사과하고 있다. 그런 행위들로 독일인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독일인들의 진정성이 세계인의 인정을 받고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숨김으로써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자연스레 터키의 기독교 유적을 돌아본 기억이 떠올랐다. 초기 기독교와 로마의 유적은 터키 지방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터키인들은 그 사실을 안내판에 충실하게 적어두어서 그 당연한 흐름을 조작하려는 어떤 시도도 읽을 수 없었다. 또한 그런 인정이 자존심과 아무런 연계도 갖지 않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여정은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라는 도다이지였다. 1년 내내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혼잡을 이룬다는 안내 책자의 표현 그대로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더욱 서부로 몰려든다는 추세에 마침 일요일이어서 모여든 상춘객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클랙슨 소리 들리지 않고 고함 소리조차 없는 무서운 질서의 세계.

 

지극히 예절 바른 일본인의 이면에는 질서에 대한 존중이 자리한다. 교수님 해설에 따르면 일본인은 남에게 폐 안 끼치기, 남의 눈에 띄는 행동 하지 않기, 시간 지키기의 세 가지 덕목을 존중하며 어릴 때부터 훈련될 때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그런 교육이 사람의 바다 속에서도 혼란이 일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거꾸로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닌 대접을 받는다. 주차장에서 관리 요원이 인도 아래 차도로 무심히 내려선 우리 탐방단을 깜짝 놀랄 만큼 거칠고 사납게 밀어붙이는 장면에서 그것을 고스란히 겪으며 느꼈다. 개그맨의 표현 그대로 기초 질서를 위배하는 인간은 사람이 아니므니다인 것이다.

 

탐방 지역의 유명한 사찰들은 거의 모두 67세기 경 창건되었는데 그 내력은 직간접으로 쇼토쿠 태자와 연관되어 있다. 일본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의 하나인 그는 절마다 나이대별 그림이나 형상으로 모셔져 있다. 그만큼 큰 내공의 인물임은 분명한데 그에게 전해진 도래인의 피를 주목하는 일본인은 역시 드물다.

 

최근에 일본인이 쓴 <일본변경론>이란 뛰어난 저서를 읽은 일이 있다. 저자는 변경인인 일본인들은 근본적으로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열등감을 돌려 자긍심으로 바꿀 필요를 느끼고 그걸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 쇼토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일본인의 영웅으로 있음은 위에 적은 바대로 곳곳에 모셔진 다양한 연령대의 무수한 조각과 그림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으로 일본인의 영웅이 된 존재라는 아이러니의 인물인 것이다.

 

그는 뛰어난 지혜를 바탕으로 일본을 탄탄한 제도의 국가로 발전시킨다. 내가 열등감을 해소할 목적이라 판단한 바, 해가 뜨는 나라의 황제가 해가 지는 나라의 황제에게 보낸다는 식의 오만한 국서를 수나라에 보낸다. 당연하게도 수나라 황제는 미친 놈 취급하며 답서를 보내지 않지만 그의 묘수는 그것으로 족했다. 후손들은 그가 바라는 대로 그 표현에서 자존심의 단서를 잡아내었으며 그것을 사골 국물 우리듯 천 년을 넘어 다시 천 년 우려먹고 있다.

 

역사를 조금만 공부한 중학생 수준이면 수긍하듯 동양의 주류 문물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었다. 이는 심장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장기를 거쳐 손발 끝으로 전달되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손발 끝의 피들이 어느 날 자신이 혈액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고 해 보라.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을 동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되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많은 평범한 일본인들이 이를 믿고 있음이 답답했다. 그래 놓고 그를 바탕으로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부르짖는 극우 정치인들과 일부 어리석은 학자들의 괴성이 서글프다. 그리고 일단 국가적 테제가 되면 유명한 일본인 영화감독의 지적처럼 그것이 붉은 신호등일지라도 일사분란하게 건너는, 개인일 때는 엄두도 내지 않던 행동을 서슴없이 해내는 일본인들의 전도된 집단의식이 안타깝다.

 

사슴의 천국인 도다이지 근처 공원은 평화로웠다. 우리와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사슴 전용 센베를 제작하여 팔고 있었는데 일본인답다고 생각되었다. 한국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사슴들을 바라보며 우리와 분명하게 차이나는 점들을 짚어본다. 용마루에 물고기의 꼬리 형상을 이고 있는 거대한 지붕의 모습은 목조가 대부분인 건물들이 낙뢰로 불에 타는 사례가 많아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식으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우리의 동도서기(東道西器)는 매우 닮은 사고방식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양을 모방하여 그것을 능가하는 경지를 만들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반면 허세에 그친 우리는 그에 미치지 못함도 서로 다른 점이다.

 

오늘날 일본의 전형적 풍경 중 하나가 사람들이 식당에서 벽을 바라보며 혼자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한다. 인간답지 못하다며 매우 비판적으로 언급되는 이 요소를 나는 다르게 평가한다. 허세를 배격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실력을 간파하여 겸손하게 출발하는 그들의 현실 감각이 바로 이런 내면 지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좀처럼 주제넘게 나서지 않는 그들의 태도를 좀스럽다고 비웃을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든 맡은 바를 해내고야 마는 그들의 성실성 앞에서는 감히 쉽게 넘볼 수 없는 힘을 느낀다.

 

근대 일본을 세운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교토에 웅장한 규모의 니조성을 세운다. 한 바퀴 돌며 참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성의 내부, 신을 벗고 드넓은 마루를 돌아다니는데 밟을 때마다 나는 꾀꼬리 울음소리가 서글펐다.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한 의도라는 그 소리는 관계에 대한 불신이요 인간에 대한 불안이었다. 바로 그 점은 깨끗하고 깔끔하고 정결한 일본인의 내면에 깃든 원초적인 불안의 요소를 엿본 듯한 느낌과 통했기에 슬펐다.

 

일본인만이 공감할 듯한 그런 불안이 묻지마식 집단적 동인을 만드는 듯하다.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을 다룬 책을 쓴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이것이 안타까웠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어떤 나라의 국민도 그런 어리석은 집단행동에 동조하여 가스 살포라는 극악의 행위를 쉽게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독도가 자기 나라 땅이라는 근거 부족의 집단적 주장을 말리는 그의 지성은, 그래서 돋보이는 예외적 일본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쇼토쿠의 국서 오만은 그의 무수한 장점을 능가하는 결정적인 단점이다. 그들이 지닌 빼어난 장점인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요소만으로 일본인은 충분히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쇼토쿠 태자의 지나친 애국적 열정은 일본인들에게 그것이 조작임을 알더라도 인정하지 못하는 뿌리 깊은 결점 유전자를 심고 말았다.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특성인 이중성을 혼네[本音]와 다떼마에[建前]라고 부르거니와 아무리 외국인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도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열등감의 혼네에는 이러한 결점 유전자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 건너기 쉽지 않은 심연을 건너야만 일본인들은 국가 차원에서도 정상인이 될 수 있을 것이.


  교사인 나는 일요일에 만난 옛날식 교복을 입은 수학여행 학생들을 잊을 수 없다. 일요일 그 헐렁한 교복들을 빠짐없이 입고 자원봉사자 노인들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그런 교복을 입으라고 하면 학교 자퇴하겠다는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일요일에 수학여행을 간다면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도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어떤 것이 과연 도에 가까운 마음일 것인가.

                                                                            

 그렇게 착실한 보통 일본인들이 역사를 잘못 배워 나쁜 국민이 되고 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심(道心)이 깊어지면 눈에서 멀어져도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일반인들에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기에 일반 국민들이 올바른 눈을 갖도록 이끄는 위대한 임무가 지도층에 주어지는 것이다. 나 먼저 우리 한국인 먼저 마음이 열린 인간으로 살고자 다짐하면서, 부디 착하고 배려심 많으며 예절 바른 평범한 일본인들이 제대로 눈을 떠서 마음이 닫히지 않은 인간으로 발전하였으면 좋겠다는 게 내 솔직한 바람이다.

 

탐방을 통해, 아직도 도래인의 존재와 역할과 기능과 전수를 숨기고 조작하려는 일본인들의 의도를 읽었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당분간 한일 관계의 진정한 정상화와 양국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는 친교는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우리의 탐방 또한 그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뤄진 어려운 활동이라 믿는다. 만일 일본인들이 진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순간 위대한 해탈은 이뤄지고 탄탄한 장점을 지닌 일본인은 전 세계에서 독일인 이상의 대접을 받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전범 세력은 말뿐인 대동아공영으로 한국과 중국의 인민들에게 무수한 생채기를 입혔다. 그 다떼마에의 수사를 벗고 그 말에 진심을 담고자 한다면 억지의 오만을 씻어내고 진실의 나라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족하다. 하지만 혼네를 밝히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본인에게는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이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운다. 아시아를 넘어 구라파를 지향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는 내가 볼 때는 열등감의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아시아인의 정체를 부정하는 순간 일본은 길을 잃었다. 일본인들이 쓴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외국 사람들이 지은 일본론을 나름으로 공부한 나는 일본인이 작은 것, 내면으로 수렴하는 것에는 강점을 지니지만 큰 욕심을 부리며 외부로 눈을 돌리는 순간 광적으로 표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당시 내세운 탈아입구는 그러므로 미친 짓이었다.

 

부산항을 출발하는 후지마루의 갑판에 서서 흔들리는 바다를 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그들의 아시아 탈출 몽상은 나를 벗어나는 탈아(脫我)가 되어야 하며 구라파로 들어가겠다는 헛된 망상은 아시아인들과 진정한 하나가 되려는 입구(入俱)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양변기 물을 마실 물인 양 아무렇지 않게 내미는 비인간의 마음은 개인의 모순이다. 일본에는 이런 차원의 비인간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조작을 거친 뻔뻔함은 차원의 거대함으로 볼 때 대양의 물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비인간의 모순임을 생생하게 실감한다.

 

이제 고류지에서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만나 뵌 일을 적지 않을 수 없다. 칼 야스퍼스의 언급으로 세계적인 미소가 된 그 불상 이야기다. 나는 일정상 시간에 쫓기면서도 불상 앞을 쉽사리 떠날 수 없었다. 너무도 유명해진 탓에 압도되는 속에서도 균형 잡힌 맑은 고뇌라는 표현을 얻어내었다. 나는 어쩌면 이 상호를 뵈오려 이번 탐방에 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간결한 몸체의 묘사, 우측 발과 팔의 묘한 사용을 통해 우로 약간 기운 미세한 기울기, 정면에서 본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절제와 드러냄, 그리하여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운 표현을 담고 있는 상호와 동작의 아아 삼국의 혼을 담은 부처님이시여! 비록 그들은 아직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 미륵보살께선 그 자비의 가피력으로 당신이 삼국 시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내력을 일본인들에게 알게 하실 것이다. 세계 대전 때 모든 일본의 도시들이 폭격으로 폐허가 되던 시절에도 교토는 폭격을 면했다고 한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리하여 그 상호를 뵈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 일행의 마지막 탐방지는 시텐노지였다. 시텐노지는 그 지역을 지배하는 사찰로서 학교, 역 이름 등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절 역시 쇼토쿠 태자의 창건인데 삼국 시대 백제의 양식을 본받고 있음이 이제 나의 눈에도 보였다.

 

월출산 밑 도갑사 근처에 왕인 박사의 생가가 있다고 한다. 논어 10권과 천자문을 전함으로써 시텐노지 지역에 선진 문화를 전파한 왕인 박사를 기리기 위해 그들 일행이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는 교수님의 설명에서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본다. 행사단은 박사의 생가 터에서 논어 10권과 천자문을 받들고 부산까지 걸어서 행진한 후 배를 타고 일본으로 오는 그 여정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솔한 일본인들이 힘을 얻으면 바로 거기서 한일관계 정상화는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일본에서는 가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사람을 헛웃음 짓게 만든다. 그 중 압권은 후지무라라는 그 방면의 권위적인 학자가 조작한 유물을 묻어두었다가 파내어 구석기 유물이라고 발표한 일이다. 이러한 망동을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하는 나라가 일본이며 일본의 이른바 지도층이다. 탐방단이 가장 먼저 방문한 규슈의 후나야마 고분은 백제인의 도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적나라한 증거였다. 하지만 탐방 책자가 전하고 있듯 발굴하면 곧 연구 발표가 이어지는 상식이 여기서는 부정된다. 왜냐하면 이곳은 고대사 왜곡의 나라 일본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가 충분히 심증으로 알고 있듯 백제 유물과 너무도 닮은 부장품 때문이었다.

 

원전이 멈춘 해 일본 수상이 전 국민에게 15 퍼센트 절전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자 국민들은 21 퍼센트의 절전으로 화답했다는데 그러한 단결력에 제각각 잘난 한국인들의 하나인 나는 경의를 표하고 그것을 배워야 함을 분명히 안다. 더욱이 어디에고 출몰만 하면 난장판을 만드는 우리 학생들의 괴물성은 반드시 일본 학생들에게 배워 고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축소지향일 때의 일본인의 장점일 뿐 국가 차원의 거대 담론은 아님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출항을 배웅하러 브라스 밴드가 음악을 연주한다. 세계 최대의 수족관 건물을 마주하는 높이의 갑판에서 탐방단은 오색 테이프를 그들에게 던졌다. 탐방 기간 내내 우리에게 너무도 자상하게 대했던 후지마루의 관계자들과 버스 운전기사들과 가이드들, 수족관에 놀러온 사람들, 그리고 다른 배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 모두 어울려 서로 손을 흔들었다. 배는 항구를 떠나고 갑판에 퍼지는 진솔한 목소리의 심수봉 노래가 그렇게 애절한 명곡임을 처음 알았다. 아직 내 입에서 일본어 인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과 일본인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내가 보였다. 그러자 나는 답을 알았다. 개인도 국가도 진솔함을 담보할 때 길은 열린다는 진리!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위에 적은 나의 생각들이 어설픈 논리이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왜냐 하면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더욱 가까워져야만 하기에 나의 부정적인 인식들은 속 좁은 교사의 오해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오늘 아침 뉴스를 통해 아베 총리의 망언을 접하면서 나의 지적은 그들 정치인들의 정확한 현주소를 짚은 셈이 되었다. 오히려 아베는 한국인들이 자신은 신사 참배에 빠진 진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불쾌해했다. 모기 오줌만한 생색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우주만한 허물을 가리겠다는 참으로 오만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뉴스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었던 전범 헤스의 묘지 터를 비추었다. 히틀러의 심복이었던 그의 유해는 이곳에 묻혀 있다가 얼마 전 유족의 동의를 받고 불에 태운 뒤 호수에 뿌려졌다. 전범의 묘소는 극우주의자들의 성지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였다. 똑같은 세계 대전의 전범이 자리잡은 야스쿠니 신사를 정부 고위층들이 집단 참배하는 일본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비슷한 무렵 전쟁을 일으켜 세계인들을 괴롭혔으되 지금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양국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는 비교와 대조의 사례로 이보다 더 적확한 게 없을 정도이다.

 

지난 1970년 당시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가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을 꿇은 이후 독일 정부는 한결같이 과거사 반성을  이어오고 있다. 1995년에서야 종전 5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가들에게 고통을 준 사실을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발표했다. 고작 이 정도가 외교적으로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의 과오를 사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후임 총리들은 하나 같이 그것을 부정하기에 바쁜 한심한 작태를 보여 주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속적인 과거사 인식을 바탕으로 2차 대전의 학살 희생자들에게 21천 억 규모의 배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강제 동원 피해자들과 위안부들의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좀 불경스런 표현일지 모르나 뉴스 화면에 비친 메르켈 총리는 여자로서도 예뻐 보였고 그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상당한 미남형인 아베의 얼굴은 매우 추하게 보였고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한 나라의 총리직에 있는 인물이 이웃 나라 백면서생의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정말로 안쓰러운 일이다. 그런 정도의 인사가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란 점에 대해서 많은 상식적인 일본인들이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날이 하루 빨리 와야 한다.

 

가부키 가면의 반듯하게 치장된 맑음은 봉산탈춤 말뚝이 탈의 표정과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쓰레기 한 장 찾을 수 없는 거리는 그 자체로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가부키 가면과 흡사하다. 따라서 그 맑음은 혼네를 드러낼 수 없는 다떼마에의 슬픈 맑음이다. 일본인들이 혼네의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데서 오는 슬픔을 벗어나 진솔하고 진정한 맑음으로 거듭날 날을 나는 기대한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글발이 그 날을 앞당기는 일에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다면 크나큰 보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