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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대화기술

[스크랩] 참 멋있게 나이를 드셨어요

참 멋있게 나이를 드셨어요

임종석  |  seok9448@daum.net

며칠 전 찻집에서 오랜만에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담소를 즐겼다. 별로 실속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어제 누군가로부터 “참 멋있게 나이를 드셨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며 립 서비스로 해 준 거라는 걸 알면서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했다. 하기야 그런 말을 들으면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치고 누군들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나도 덕담 수준의 칭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 비슷한 말을 듣고 속없는 마음에 정체 모를 기쁨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걸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멋있게 나이 든다’는 건 그리 쉬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늙으면 피부의 윤택이 사라지고 탈력도 없어지며 주름살만 늘어 깊어진데다가 검버섯까지 피는 게 정한 이치이니 공감이 아니라 어불성설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말로 하기 뭐하지만 추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노추(老醜)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그러니 늙었다 해서 외양 차림에 게을리 해선 안 되고 조금은 신경을 써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무엇을 걸쳐도 멋이 있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더 예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나이 많아지면 자칫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 쉬운 몰골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멋있게 나이 든다’는 이 말을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얼굴이 곱고 몸매가 잘생겨서가 아니다. 내면이 사람다워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멋있게 나이 든다’는 말은 사실이요 진실일 수 있다.

나이가 많아지면 그럴수록 그에 맞는 관리를 해야 한다. 외양도 그렇고 속사람도 그렇다.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지만, 과유불급이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인데도 머리손질에 몇 시간씩이나 품을 들이고 얼굴 주름살 제거를 위한 시술에 매달린다면 오히려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

때로는 시간이 모자라 손질도 못한 채 부수수한 머리로 자식들을 돌보느라 분주하게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잠결에 누군가가 처한 위험을 알고는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에게서 인간 최고의 존엄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 혹서와 설한풍이 반복됨으로 쌓인 연륜에 그 같은 일상(日常)과 심상(心狀)이 저변으로 놓일 때 사람들의 눈에 ‘멋있게 나이 드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속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도 외모보다 중심을 보게 되고, 속사람이 제대로 되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중심이 밖으로 배어나와 외모가 멋있음을 발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이 많아지면 그럴수록 외모에도 마음을 써야 한다. 귀찮다고 손을 놓아 버리면 남에게 불쾌감을 주기 쉽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써야 하는 것은 사람의 중심을 이룬 속사람이다. 속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겉만 번지르르하면 아름답기는커녕 추해 보인다.

졸부들이 추해 보이는 것은 갑자기 거머쥔 돈으로 외양은 치장할 수 있으나 속사람은 단시일 내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못되며, 돈이 오히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속사람을 짓눌러 망가뜨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추는 노욕과 아집의 다른 이름이다. 젊어서는 욕심이 과해지려 하면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여 그것을 제어함으로 심한 데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늙으면 그게 잘되지 않는다. 욕심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끝을 모르고 내리닫는다. 그래서 젊어 쌓아올린 됨됨이를 무너뜨리고 만다. 늙으면 심해지기 쉬운 아집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진다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욕심도 아집도 내려놓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 이 세상을 살날이 짧아지고 하늘나라에 갈 날이 가깝다 보니 그런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그렇기도 하다. 그러니 늙음도 은혜일 수 있다.

욕심과 아집을 내려놓으면 속사람 가꾸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욕심과 아집, 그것이 사람의 사람다움을 막는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린다고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쇠해지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거머쥐려 버둥거리는 것이 문제이다. 젊은 사람이라 헤도 그리 다르지 않지만, 나이 많아지면 놓아야 할 걸 놓는 데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러며 속사람 가꾸기에 진력해야 한다. 그게 이생의 끝자락을 사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주된 일이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속사람 가꾸기이다. 그것이 하늘나라로 가는 꽃가마를 타는 길이다. 외양은 수수하나 속이 잘 익은 열매로 가득한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걸을 때 사람다움의 멋이 배어나와 ‘멋있게 나이 드는 모습’이 된다.

“참 멋있게 나이를 드셨어요.”

 

임종석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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