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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CEO

“우리 핵심 가치 무엇인가” 기업 정체성 집중할 때 위기 극복

[Weekly BIZ: 베르사체·레고·쌤소나이트·몽클레르… 턴어라운드 성공한 글로벌 기업들의 네 가지 전략]

하진수 기자  편집 이창훈   입력 : 2016.10.02 08:1

기업 브랜드는 인생과 비슷하다. 업계 1위에 올라 소위 명품(名品)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업들도 어느 순간 쇠퇴기를 맞는다. 위기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기업의 진가가 드러난다. 과감한 결단과 뛰어난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소멸해버리는 기업도 있다.

위클리비즈가 지난 10년간 만났던 기업 중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에 성공한 기업들은 업종과 시대에 상관없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기업들은 대부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다. 경영인들은 회사의 존립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업을 살리는 데 정확한 원칙을 가지고 이해 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본업 소멸의 기로에서 멋지게 부활에 성공한 글로벌 기업 12곳의 전략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핵심가치(Core Value)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핵심가치 집중하라
베르사체, 고유의 디자인 부각
레고, 블록 마니아에 더 집중

1997년 베르사체 창업자인 지아니 베르사체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하자, 브랜드 그 자체를 잃어버린 회사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10년도 안 되는 사이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적자에 빠졌다. 2009년 7월 베르사체는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Ferraris)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CEO(최고경영자)에 오른 페라리스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직원 4명 중 1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페라리스는 패션 기업의 심장과도 같은 디자인과 제품 개발 인력은 단 한 명도 자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유행을 따라가던 디자인에도 대대적인 수술을 가했다. 디자인팀은 과거로 회귀해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하는 베르사체 고유의 디자인 DNA를 부각시켰다. ‘핵심가치’에 집중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베르사체는 최근 2~3년 사이 명품 업계가 불황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해마다 매출을 두 자릿수로 키웠다. 그가 취임한 해 2억7000만유로였던 매출은 2015년 6억4500만유로로 늘었다.

2004년 대규모 손실 탓에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레고그룹은 2015년 52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10년 연속 매출 증가를 달성했다. 2004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는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Knud storp) CEO는 “레고의 고객층이 넓어진 것은 대중성을 노리고 전 세계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할 때가 아닌 핵심 고객에게 집중했을 때”라고 말했다. 과거 새로운 고객을 영입하기 위해 블록을 쉽게 만들고 디자인을 바꾸는 전략이 오히려 핵심 고객층의 이탈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11년 개봉했던 야구 영화 ‘머니볼(Moneyball)’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Beane) 부사장은 ‘가난한 구단’에 초점을 맞춰 선수 영입 전략을 새로 짰다. 빈 부사장(당시 단장)은 기존에 정설로 여겨지던 타율 대신 출루율을 기준으로 선수를 영입했다. ‘안타나 볼넷이나 1루에 나가긴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클랜드는 2000~2003년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2년에는 메이저리그 최다승(103승)을 거두며 ‘머니볼 혁명’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2. 기업혁신(Innovation)
―흐름을 선도하라

세상 변화 읽어라
B&W, 아이폰용 스피커 만들어
다케다제약, 새 유통 채널 구축

영국 고급 스피커 회사인 바우어스앤윌킨스(B&W)의 하이킨(Haikin) 마케팅 부사장은 2014년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변화와 싸워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스피커 산업은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음악의 시대가 도래하며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때 B&W는 변화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많은 고급 오디오 브랜드는 디지털 음악을 쓰레기로 깎아내렸지만, B&W는 ‘제플린(Zeppelin)’이라는 아이팟·아이폰용 스피커를 내놓았다. 애플에 올라탄 셈이었으나, 가격은 고가 정책을 유지했다. 헤드폰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개척했다. 제플린은 50만개 이상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일본의 다케다(武田)제약은 창립 230년 만인 2010년 신약의 특허 만료가 줄줄이 다가오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다케다제약이 선택한 위기 극복 전략은 ‘글로벌화’였다. ‘잘 만드는 것보다 잘 파는 것이 중요한 시대’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유통 채널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스위스 회사인 나이코메드를 인수한 것도 신흥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였다. 다케다제약은 2014년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후지필름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던 2000년은 ‘필름의 시대’였다. 상황은 급변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2000년을 정점으로 전 세계 필름 시장 규모는 매년 20~30%씩 감소했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독일 아그파와 미국 코닥이 파산했다. 시게타카 회장은 이전까지 경영 목표였던 ‘세계 1위 코닥 타도’를 ‘탈(脫)필름 구조조정’과 ‘사업 다각화’로 바꿨다.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는 데 부족한 부분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메웠다. 후지필름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한 LCD 패널용 필름 사업도 이때 확장했다. 후지필름의 지난해 매출액은 필름 사업이 절정을 맞았던 2000년보다 170% 이상 증가했다.

3. 진정성(Authenticity)
―혼(魂)을 다해 직원 설득하라

직원 설득하라
"후배들에게 자리 내주십시오"
JAL 경영진, 3년간 직원들 설득

역대 일본 기업 가운데 가장 크게 망했다가 살아난 기업은 일본항공(JAL)이다. JAL은 2010년 1월 2조3000억엔이라는 빚을 안고 파산했다. 이후 1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JAL은 2012년 320억엔의 흑자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2조원대 영업 흑자를 내면서 증시에도 재상장했다.

침몰하는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은 IT(정보통신) 기업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명예회장과 오니시 마사루(大西賢) 사장(현 회장)이었다. 이들은 정년퇴직한 스튜어디스에게까지 연금을 월 500만~600만원 지급하게 만들어 놓은 강성 노조를 설득해, 전 직원 4만8000명 가운데 1만6000명을 내보내는 매머드급 구조조정을 단 1년 만에 끝내 버렸다. 감원 과정에서 이나모리 회장과 오니시 사장은 3년간 쉬지 않고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회사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JAL을 사랑한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세계 최대 여행용 가방 회사인 쌤소나이트의 팀 파커(Parker) 회장은 여러 회사를 되살리면서 ‘기업 부활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쌤소나이트에 합류했던 2009년 회사는 금융위기 여파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런 회사를 파커 회장은 취임 2년 만에 15억651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파커 회장은 취임 직후 1년 동안 대대적인 고정비용 삭감 작업을 벌였다. 전 세계를 관할하던 영국 사무소를 폐쇄하는 등 본사 직원 수를 줄이고, 세계 각지의 유통 점포들도 대거 폐쇄했다. 당연히 직원들의 동요가 뒤따랐다. 파커 회장은 “비용 절감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기업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기업은 반드시 성장한다’라는 확신과 상식에 근거한 판단이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은 달라진다고 믿는다.

4. 내부자산(Advantage)
―이미 가진 장점을 활용하라

자산 활용하라
구찌·몽클레르 전문경영인
기존 자산 활용해 회사 일으켜

세계적인 명품 패션 기업인 구찌의 마르코 비자리(Bizzarri) CEO와 몽클레르의 레모 루피니(Ruffini)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일수록 이미 가진 자산을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비자리 CEO는 취임 후 무명(無名)인 내부 직원을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보통 명품 회사들은 브랜드를 혁신할 때 외부에서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해 왔다. 그는 “내부 인사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기업에 대한 충성심도 갖고 있어, 변화를 잘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찌는 비자리 CEO 취임 이후 2015년 1분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2003년 3500만유로에 몽클레르를 인수한 루피니 회장은 10여년 만에 회사를 연 매출 6억9400만유로를 기록하는 거대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루피니 회장은 제품군을 늘리는 대신 ‘한 가지(거위털 재킷)만 제대로 하자’고 경영 목표를 수립했다. 등산가들을 위한 침낭 제작 업체로 시작한 몽클레르는 세계 최초로 거위털 재킷을 만들었던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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