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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건강

왜 근육은 피곤을 느끼나?

젖산은 피로물질이 아니다                                                       2008년 02월 21일(목)

21세기 과학난제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오랫동안 걸으면 우리 몸은 근육이 욱신거리고 쑤시는 피로를 느낀다. 근육이 피로를 느끼는 것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간뿐 아니라 근육을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근육은 피로해지는 것일까?

의학과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 답이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21세기 생리학의 난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조차 이 문제를 아주 쉽게 취급했거나 이미 해결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우리가 그 답을 모르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1929년 근육피로의 원인으로 젖산을 처음으로 A.V.힐. 그는 1922년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영국 생리학자였다. 
많은 사람은 근육의 피로가 젖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운동을 오랫동안 하거나 격렬하게 하면 젖산의 양이 점점 증가하는데, 그래서 피로가 온다고 것이다. 젖산을 피로물질로 지목한 사람은 영국의 저명한 생리학자 A. V. 힐이다. 힐은 근육에서 열의 생산에 관한 연구의 공로로 192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1929년 근육에 쌓이는 젖산이 근육피로의 원인이라고 처음으로 제안했다.

힐은 개구리에게서 떼어낸 근육에서 수분을 제거한 후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근육에서 젖산의 양이 늘어나면서 근육의 수축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근육을 식염수에 넣은 다음 젖산이 퍼져나가도록 하자 근육의 능력이 다시 향상되었다.

힐은 이후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은 후, 젖산을 근육피로의 물질로 최종적으로 지목했다. 힐의 젖산설은 1970년대 말 A. 파비아토와 F. 파비아토가 이론으로 정립하면서, 젖산은 명실 공히 피로물질로 못 박힌 듯했다.

그러나 이후 소수의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젖산설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한 예로, 근육에서 젖산이 축적되지 못하게 하는 효소를 제거했을 경우, 근육피로가 평상시보다 더 빠르게 나타나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젖산이 근육의 피로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학계에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1년,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의 생리학자 올 닐슨은 젖산이 아니라 칼륨이온(K+)의 과다한 축적이 근육피로의 주요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닐슨은 분리해낸 근육에서 칼륨이온의 농도를 높이자 근육에서 힘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닐슨의 실험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피곤해진 근육에 산성도를 높이자 떨어지던 근육의 힘이 역전이 되면서 회복되는 것이었다. 젖산은 산성물질이기 때문에 젖산설에 따르면, 근육의 산성도가 높으면 근육의 기능이 떨어져야 했다.

닐슨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젖산이 피로물질이기는커녕 근육운동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닐슨 연구팀은 젖산이 피로한 근육의 기능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들은 쥐의 근육섬유에서 젖산이 염화이온(Cl-)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염화이온이 근육의 수축에 필요한 활동을 지지해주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이 결과는 젖산설과는 반대되는 효과를 보이는 것이었다.

▲ 오랫동안 달리거나 격렬하게 운동을 하면 우리의 근육은 피로해진다. 왜 근육이 피로해지는지는 21세기 생리학의 난제이다. 
한편 올 2월 12일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근육피로에 대한 또다른 가설이 등장했다. 미국 콜럼비아대학의 앤드류 마크가 이끄는 연구팀은 근육피로가 근육세포 안의 칼슘이온(Ca2+)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보통 세포내 저장된 칼슘은 칼슘채널을 통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제하는 일을 맡는다. 칼슘채널이 열리면 칼슘은 근육 세포에서 방출되어 근육을 수축시킨다. 반대로 칼슘채널이 닫히면 근육세포에서 칼슘의 양이 줄어들면서 근육이 이완한다. 그런데 근육이 피로해지면 칼슘이 칼슘채널로부터 새어나와 근육수축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새어나간 칼슘이 근육을 피로하도록 효소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를 이끈 마크 박사는 흥미롭게도 생리학자가 아니라 심장병학자이다. 그런 그가 근육피로를 연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 마크 연구팀의 의도는 심장이 약한 사람들을 조금 더 잘 치료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미국인의 경우, 약 480만명이 심부전으로 활동에 불편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이들 심부전 환자에게 결정적인 순간은 심장마비나 고혈압으로 심장이 손상되는 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심장은 간신히 펌프질을 할 수 있어 환자는 방 안에서조차도 걷기 힘들어지고 5년 이내 50% 정도가 사망한다.

마크 연구팀은 심장근육이 왜 약해지는지를 이해하고자 연구에 돌입했다. 심장이 손상될 경우, 심장이 체내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려면 신경체계가 심장근육의 수축을 강하게 만드는 호르몬을 심장으로 흘려보낸다. 연구팀은 이 호르몬이 심장의 근육세포로 칼슘이 칼슘채널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때문에 강력한 근육수축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연구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이 호르몬이 혈액공급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장을 자극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서 뇌는 호르몬을 더욱 많이 분비시키고 결국에는 심장 근육 내 칼슘채널이 과다하게 자극을 받으면서 칼슘이 새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 기작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근육세포에서 칼슘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약물을 실험용으로 개발했다. 그런 다음 쥐에게 투여했더니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나왔다. 이 연구가 주목을 끌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뉴욕타임스 2월 12일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 약물을 올 봄부터 심부전 환자에게 직접 시험해볼 계획이다.

연구팀은 자신들이 심장근육 연구가 근육의 피로원인을 밝혀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심장근육이 다른 근육과 비슷하기 때문으로, 다른 근육의 피로 역시 칼슘에 의한 것으로 추측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근육피로에도 자신들의 접근이 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쥐를 기진맥진할 정도로 운동을 시키자, 다른 근육에서도 칼슘이 새어나왔다. 이 쥐에게 연구팀의 실험용 약물을 투여하자 쥐의 근력이 10-20% 정도 더 길게 유지되었다. 적어도 쥐의 경우에는 근력을 오래 유지할만한 해법이 하나 제시된 셈이다. 이 약물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면, 운동선수들에게 이 정보는 매우 솔깃할 것이다. 각종 운동선수들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근력을 키우려고 지독한 훈련이나 약물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근육의 피로는 근육세포의 여러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근육이 작용하기 위해 물질대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여러 물질들이 작용한다. 젖산, 글리코겐, 크레아틴 인산, 무기 인산염, 아데노신3인산(ATP), 칼슘이온, 나트륨이온, 칼륨이온 등이 피로가 나타날 때 관여하고 양도 변화한다. 이들 각각이 근육의 수축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연구는 단순히 어느 하나가 근육피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해진 것은 근육피로의 물질이 젖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젖산을 알아야 근육피로를 제대로 풀 수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운동전문가가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접근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점이다. 근육이 왜 피로해지는지, 그 비밀은 21세기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8.02.2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