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자료/교회

[스크랩]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축복(출40:34-38)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축복

 본문 : 출 (40:34~38)                        하용조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고통가운데 있었지만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는 좋은 환경가운데 사시는 분들은 축복을 잘 모르지만 고난중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축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밥 한그릇 놓고 감사하고 하나님이 새로운 축복을 주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환경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그들의 축복을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쓴물이 단물이 되고 하늘에서 비같이 만나를 내려주시는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바위에서 샘물이 터졌고 원수들이 공격할 때 하나님이 지켜주셨던 경험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말씀을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막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놓고도 받은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그만 것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야의 축복 중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축복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입니다. 저는 광야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을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미 장식할 광야의 축복은 불기둥 구름기둥 축복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에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9장과 40장을 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이 두가지로 요약 되어 있습니다.
첫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임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속에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축복을 가리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또 다른 의미는 마치 나침반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같은 세상에 삽니다. 우리는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는 배와 같습니다. 무작정 가는 것보다는 방향을 잡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황이라는 것은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살아도 목적이, 방향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했습니다. 광야는 내 마음대로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는 안내자가 있어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떠날 수가 없었고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 혼자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가다가 낭패를 당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이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과 함께 계셨고 또 하나님이 그들의 갈 길을 친히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열악한 광야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출애굽기 40장 34절에서 35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곳에 나오는 구름은 뜬구름이나 뭉게구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 찬 구름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오실때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타고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도 영광의 구름 가운데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은 언제 나타납니까? 34절을 보면 영광이 회막 위에 떠 있는 순간에 그 구름에 나타난 영광은 성막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이곳에 나타나면 임재는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 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두려움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이 빛나기 때문에 볼 수가 없어서 모세의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던 것과 같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얼굴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 영광의 구름이 나타나

34절을 보면 그 후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39장과 40장을 요약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이 미완성이면 구름이 뜨지 않습니다. 성막이 완성될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나타납니다.
이 성막은 두가지로 완성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순종이고 두번째는 기름부으심입니다. 이 두가지가 바로 축복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으로 데리고 가서 40일 동안 성막에 대한 자세한 청사진을 스케치 해 줍니다. 넓이와 길이와 기구와 모형과 색깔까지도 다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집을 짓다보면 설계보다 방을 좀 넓히고 싶거나 천정을 더 높히고 싶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시킨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39장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고

모든 일을 미리 다 알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고 나서 비로소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다 알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해 보고 나니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이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종과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해주실것 이니까 이길로 가면 분명할 것이다라고 믿고 그냥 가야 합니다. 그러면 가보니까 정말 내가 잘했구나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또 39장 42~4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명하신대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내 소견대로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자기 의견이 있습니다.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자기 의견을 믿으면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는 바로 자기 소견대로 했던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소견대로, 내 방법대로 , 내 경험대로, 내 세상의 지혜대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키신대로, 명하신대로 충성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배는 바닷가에서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라랏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말한 것이라면 짓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산 꼭대기에 집을 지었고 아브라함은 네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라는 말을 듣고 친척과 그의 배경이 되는 고향을 떠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순종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지으라는대로 지었습니다.
왜 여기에 집을 지을까? 왜 여기에는 방을 만들었을까? 도대체 이해가 안돼! 왜 이 모양일까? 왜 번제단을 만들까? 왜 물두멍을 만들까? 왜 향단을 만들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것 뒤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한동대학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작년에 많은 재원을 투입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생애에 가장 보람있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까 분명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잘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면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인간의 것인지 하나님의 것인지 성령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밤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자기 힘든 분들은 5분만 무릎꿇고 기도하면 잠이 옵니다. 고민하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전 모든 기구에 거룩함으로 구별되는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모두 순종했다고 구름이 떠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가지 더 있어야 합니다. 40장 9~11절입니다.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리고 13절을 보십시오.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굉장히 중요한 명령입니다.
시키신대로 모두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우리가 성령의 기름이라고 믿는 관유를 모든 기구에 다 바르라고 하십니다. 번제단과 물두멍과 심지어 제사장에 옷에까지 바르고 14절을 보면 제사장의 아들에게까지 다 기름을 바르라고 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거룩함으로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름 붓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이 본문을 발견한 뒤부터는 설교노트에도 기름을 바릅니다. 마이크에도 기름을 바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발라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냥 순종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 나오는 해골골짜기의 말씀입니다. 말라버린 뼈들이 잔뜩 있는데 하나님이 에스겔을 그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뼈들에게 명하라. 뼈들아 살아나라
그러자 뼈들이 소리를 내면서 다 제 짝을 찾습니다. 그 다음에 힘줄이 붙고 살이 붙고 가죽이 붙었습니다. 뼈들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는데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체에 불과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명령을 내리라고 합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생기들아 이 사망당한 자들에게 들어갈지어다 에스겔이 명령을 내렸더니 사방에 있는 생기가 죽은 시체같은 사람에게 들어가고 그러자 그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회복에 대한 유명한 환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5천년동안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지금까지 생존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을 버티게 하는 힘이 바로 이 회복의 힘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뼈만 모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성전에 모든 기구가 만들어졌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성전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39장과 40장에 있습니다. 이 일이 다 끝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광야에 사는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 자신의 성전이 완성되어야 합니다. 성전은 순종과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완성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성전 위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복 중의 복이 무엇일까요?
물론 쓴물이 변해 단물이 되는 것도, 만나를 주신 것도, 원수의 손으로부터 구해주신 것도 복입니다. 그리고 바위에서 샘물이 나는 것도, 말씀을 주신 것도, 성막을 받은 것도 모두가 다 복입니다.
그러나 복이라고 하는 무엇을 소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은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어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하면 행복한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 가져온 것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짜 행복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을 소유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내가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스라엘백성 보호하시고 나아갈 길 가르치는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은 성소안에 있었습니다. 성소안에 순종과 기름부으심으로 성전을 완성했을때 구름이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회막에 구름이 덮였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여서 모세는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마지막 축복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너무나 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럽고 배신과 배고픔과 갈등과 이기주의와 폭력으로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없다면 한 순간도 제정신차리고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36절과 37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축복의 구름이 이제 나타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보다 놀라운 사건은 36절에 보면 구름이 성막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겨워서 떠나고 싶어도 구름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움직이면 여러분도 움직이십시오. 하나님이 멈추면 여러분도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가 먼저간 후 하나님은 나중에 따라오라고 합니다. 일은 우리가 다 저질러 놓고 해결은 하나님보고 하라고 하는 것이 보통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때에도 몇가지 종류를 만들어 놓고 이것들 중 한가지를 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을 끌어 오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다니십시오.
사실 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때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4장에 이스라엘백성과 모세가 애굽에서 탈출했을 때 처음 만난 것이 홍해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무서운 세력으로 다가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시간을 벌기위해서 구름기둥을 보내줍니다. 구름기둥이 생기자 애굽과 이스라엘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구름기둥이었습니다.
구름기둥은 방향도 가르쳐줍니다. 위기 때에 하나님은 이 구름기둥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이 없어서 절망하고 있을 때 홍해를 육지같이 갈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홍해를 건넜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따라 오려고 하자 하나님이 불기둥을 보내주셨습니다. 애굽군대안에 불기둥을 보내서 애굽군인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막아 주셔서 일대 혼돈이 생깁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의 길을 건너는 인생의 최대의 문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 사람들이 자살하는지 아십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권력층, 지식층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살합니다.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제 스스로 목슴을 끊지난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본길이 다 막혔기 때문에 죽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홍해앞에서도 길을 만드셨습니다. 길은 반드시 열려 있습니다. 한 길이 막혔다는 말은 다른 길은 열렸다는 말입니다. 막힌 길 때문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길이 막히면 다른 곳을 보십시오. 다른 길은 열려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이 갈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구름기둥은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길이 뚫리고 진리가 내 손에 잡힙니다. 예수님을 보면 생명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길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을 보내주셔서 저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지중해에 가 보시면 상상할 수 없이 덥습니다. 특히 사막은 더욱 그렇습니다. 더워서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덥습니다. 그런데 일단 그늘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 사막, 작열하는 열기 앞에서 하나님이 구름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그늘 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가을날씨 같이 습기도 없는 시원한 산들바람 속에서 광야를 지나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불기둥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는데 오늘 성경을 보았더니 밤에는 불이 구름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호텔에 가보면 호텔에서 나와서 자동차를 타려고 기다릴 때 춥기 때문에 머리위쪽에 난로를 붙여놓아서 머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구름 속에다 열선을 깔아 온방장치를 만들어 그 범위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춥지 않고 따뜻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지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축복입니다. 세상은 파도가 치고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가 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곳을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광야에서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어차피 거칠고 저주스럽고 맹수와 독충이 있어 사람이 살수 없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열선도 보내주시고 그늘도 만들어 주시고 먹을 것과 물을 주셔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바뀝니다.
광야의 축복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신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그 날로 죽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엄밀하게 보면 하나님이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이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내 잘난대로 살다보면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늘이 되시고 구원의 뿔이 되시고 환난날의 위로가 되시고 내가 절망했을 때 소망을 주시고 내가 죄를 지었을 때 용서해주시고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예수님은 나의 길이 되시고 등불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더 확신이 생깁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예수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우리 삶에 근원과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광야의 설교를 마치는 날입니다. 광야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광야의 삶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입니다. 광야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에 비밀을 숨겨놓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의 비밀, 축복의 비밀, 만나의 비밀이 광야에 있습니다. 그것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광야에서 살동안 여러분을 하나님은 겸손하게 만드시고 낮추시고 때를 벗기시고 여러분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사 축복의 그릇으로 만들어 주셔서 여러분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고 지켜 주십니다.
저는 이 광야의 삶을 봅니다.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고 만나를 주시고 샘물을 주시고 원수를 막아 주시고 성막을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주셨는데 전체적으로 보니까 결국은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쓴물에 나무를 던져서 단물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나무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줄 믿습니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비같이 만나를 내려주셨는데 그 만나가 바로 생명의 떡인 예수님입니다.
바위에서 샘물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입니다. 아말렉군대가 공격을 했을 때 여호수아는 전쟁에 나가고 모세는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듯이 우리가 위기를 만날때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이 죽을 때 예수님이 서 계셨다고 했습니다. 너무 급할 땐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 자기 자녀가 순교를 당할 때 서 계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데 그 분이 곧 예수님입니다. 율법을 주었다는 말은 예수님을 주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막을 생각해보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십자가가 있고 지성소에는 예수님의 보혈이 있습니다. 성막의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함 받고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광야같은 세상에서 발견할 분은 오직 한 분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장르를 이렇게 그려보았습니다. 사막에서 물이 나와서 생수나 맥주파는 텔레비전의 광고처럼 사막에 식탁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예수님이 사막에 준비한 식탁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번 LA에서 우리 교인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분께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었더니 광야교회에 나간다고 하길래 그게 무슨 교회냐고 물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광야속 성도를 인도하는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

LA에는 자동차를 타고 한시간 정도 가면 사막이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목사님이 그 광야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자동차를 타고 허허벌판인 광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가면 따뜻하고 기분이 굉장이 좋다고 합니다. 풀 한포기없이 오직 모래만 있는데 거기서 이 사람들은 20-30명이 모여 그 모래밭에서 예배를 드린답니다. 참 멋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는 그 광야에 예수님이 식탁을 차려놓고 거기에다 시원한 샘물과 만나와 포도주와 떡을 잔뜩 차려놓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목말라서 사막을 기어오는 아이들,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추락으로 길을 잃은 사람같이 갈증으로 혀가 다 타버린 온몸이 피투성이고 굶주린 사람을 위해 예수님은 광야에 식탁을 차려놓으시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곳에 오셔서 목을 축이시고 굶주림을 채우십시오.
�이것이 바로 광야의 식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식탁의 자리로 오셔서 주님이 베풀어주신 음식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먹고 용기를 얻고 힘을 얻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광야같은 세상에서 살다가 언젠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광야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순종하십시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십시오.
이때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하나님은
식탁을
예비하시고
그렇게 목마른
저희들에게
샘물을 주시고
그렇게 배고픈
저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어
외롭지 않도록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과 성막을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이 복을 누리며 승리하며
살게 하옵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일만구역이상
글쓴이 : 충실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