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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대화기술

호칭 바꾸니 조직이 ‘말랑말랑’

 



《올해 초 서울 구로구 구로동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회의실.

9년차 정하명 과장이 굴소스 개발을 놓고 18년차 정헌웅 부장에게 말문을 열었다.

 

“정헌웅 님, 간장 굴소스에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매운맛을 내면 어떨까요.”

지난해 갓 입사한 신입사원도 정 과장을 거들었다.

“정하명 님, 굴소스를 간장처럼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면 매운 맛을 좋아하는 주부들에게도 어필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해서 선보인 CJ제일제당의 ‘백설남해굴소스’는 당초 기대보다 2배를 웃도는 매출 실적을 냈다고 한다.

정 과장은 “직급에 따른 중압감에서 벗어나다 보니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무급제와 맞물린 호칭 파괴 실험

국내 기업들 사이에 과장 차장 등 직급 대신 ‘님’ ‘매니저’ 등을 사용하는 ‘호칭 혁명’이 확산되면서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등 일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유교적 상하관계 의식이 여전히 적지 않은 한국적 현실에서 아직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업무 효율성-생산성 높이는 데 기여”



연공서열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한국적인 문화에서 호칭 혁명은 다소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수적인 업종에선 생산성 향상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호칭 파괴는 연공이나 직급이 아닌, 맡은 업무(직무)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직무급제와도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

CJ그룹은 1999년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상대방을 부를 때 직급을 떼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호칭 파괴를 실시했다. 이는 2000년 직무급제(역할급제) 도입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이종기 CJ 인사팀 부장은 “직무급제 도입과 호칭 파괴는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양사에서는 마케팅 기획을 담당하는 A 과장이 실수요 판매를 맡은 B 부장보다 연봉이 더 많다.

이는 마케팅 기획담당의 직무 등급이 4단계 중 가장 높은 ‘P1’으로 실수요 판매담당의 등급(P3)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명주 삼양사 홍보팀 부장은 “직무에 따라 월급이 천차만별이어서 승진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직원들도 직함에 연연하지 않고 성과 관리를 통해 직무 등급을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 “연공서열 중심의 한국에선 아직 어색”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호칭 파괴로 활력을 얻는 회사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SK텔레콤의 호칭 변화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난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직위 체계를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단일화하면서 위계질서가 중심이던 한국의 서열문화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분석이었다.

SK텔레콤 측은 “기존의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하는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W호텔은 언어가 업무 분위기를 바꾼다는 철학에 따라 영어식 이름 사용을 권장하는 한편 아예 직원은 ‘탤런트(배우)’, 호텔 내부는 ‘스테이지(무대)’로 바꿔 부르고 있다.

하지만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에 익숙한 한국의 기업 현실에서 호칭 파괴는 아직 부자연스러운 측면도 적지 않다.

실제 오리온그룹, 한국모토로라, 한국HP, DHL코리아 등은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한국 정서를 고려해 직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인사컨설팅 다국적기업인 타워스페린 박광서 사장은 “한국에서 호칭 파괴는 과도기에 있다”며 “직무급제와 맞물려 생산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호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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