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미션퍼블릭에서 출판될 이한규 목사님의 3번째 책 ‘40일간의 성령 묵상’에 나오는 '성령님의 사랑'이란 글 중에서 일부분을 발췌한 글입니다. >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상처’이다. 상처의 원인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비판’이다. 현대는 비판이 난무한 시대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찬 비판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매장량이 엄청난 유전처럼 비판으로 깊게 파일수록 더 많은 사랑이 흘러나온다. 누구인가?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비판을 두려워 말라.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비판 받을만한 높은 위치에 있다는 말도 된다. 비판을 받거든 “나도 꽤 컸구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태산처럼 흔들리지 말라. 비판을 들어도 가만히 기도하거나 묵상하면 성령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린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성령님의 손길 안에 있으면 비판의 화살을 억수같이 맞아도 기뻐할 수 있다. 그때 성령님이 더욱 함께 하기 때문이다.
상처의 중요한 또 하나의 원인은 ‘고독’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고독한 때를 가장 유익한 때로 만드신다. 나는 미국 유학생활 초창기에 큰 외로움에 젖었었다. 마치 외로움이 매일 고문하는 것 같았다. 하늘의 비행기만 보면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한국 사람의 얼굴 모습이 너무 보고 싶었다. 결국 처음 정착한 코네티컷에서 좀 더 한인이 많이 사는 뉴욕으로 이사할 작정을 했다.
어느 날 저녁, 당시 한인 신문광고를 보고 한 달에 방 하나를 빌리는데 300불씩 주기로 약속하고 뉴욕에 위치한 한 집에 앞뒤 살피지도 않고 들어갔다. 이틀 후에 알고 보니 그 집은 사설 절이었다. 그 절의 주인인 스님이 잠깐 한국에 간 사이에 세입자 중의 한 사람과 대신 계약해서 나는 그 집이 절임을 전혀 몰랐다.
1층은 절이었고, 2층에는 방이 3개 있었는데 한 방에는 스님이 살았고, 다른 한 방에는 한 불법체류자가 살았고, 나머지 한 방에는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는 노총각이 살았다. 그리고 3층에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에서 내가 지냈다.
그 3층 방에서 매일 기도와 찬송소리가 흘러나왔다. 외로움에 젖었던 내게는 그 일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었다. 1층을 통과할 때는 항상 큰 불상을 힐끗 보며 기도했다. “하나님! 선교사를 꿈꾸는 제가 절에 머무는 기막힌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상황을 피하게 하소서.” 매일 3층에서 기도와 찬양을 하니 스님도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 후 4달 만에 주지 스님이 절을 옮기겠다고 그 집을 팔고 코네티컷으로 이사 갔다.
그때 “내가 이겼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긴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그 상황을 이겨내게 하신 것이었다. 그처럼 성령님은 고독한 사람과 함께 하며 그 상황을 이겨내게 한다. 무엇이 축복인가? 빛 속에서 혼자 걷는 것보다 어둠 속에서라도 성령님과 함께 걷는 것이 축복이고,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혼자 걷는 것보다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성령님과 함께 걷는 것이 축복이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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