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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과학과 종교의 진리를 서로 비교할 수 없는가?"

제4회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포럼 취지문
인간과 예술, 사회를 만난 과학기술이 이번에는 종교를 만난다. 과학기술부(부총리 김우식)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나도선)은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포럼을 3월에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와의 연속 대화 중 4번째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취지문과 기조강연이 사이언스타임즈에 미리 게재되고, 포럼 관련자들이 댓글로 달리는 독자들의 의견을 참조해 실제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며, 첫 번째로 제4회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포럼 취지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註]

▲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알다시피 과학과 종교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도 또는 갈등 관계로도 파악된다. 현대과학의 탄생이 기독교 사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커다란 도전이 되었고, 데카르트의 철학이 과학적 우주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뉴턴의 역학이 실증의 길을 넓혔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으로 인해 기독교적 인간관은 더 큰 도전에 직면했다.

과학이 이성의 산물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과학이 종교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 문화의 발달을 의미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18세기 말에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신의 개념을 인간 이미지의 상상적 확대로 설명하려 하였고 역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마침내 신의 죽음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이 종교를 버리기는커녕 더 열광적으로 믿고 있으며, 세계 여러 곳에서 일종의 커다란 종교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종교가 없어지리라는 주장이 전제한 것과는 반대로 과학과 종교가 서로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즉, 같은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해답이 나올 수 있듯이 같은 사물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식, 즉 이론으로서의 과학이 일종의 설명이라면 또한 종교도 일종의 상이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것은 갈릴레이의 지동설, 뉴턴의 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보어의 양자역학 등은 완전히 관측될 수 있는 사실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한 번도 관측되지 않고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전제와 추측 등에 근거하고 있어 종교적 믿음이 경험과 관측과 관계 없어도 과학적 진리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즉 진리가 반드시 실증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과학이 도달할 수 없는, 즉 실증적으로 진리와 허위가 거론될 수 없는 비실증적 세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주가 논리적으로 실증될 수 있는 세계, 즉 과학이 대상으로 하는 세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우주 밖에 있는 세계도 상정해야 할 것이다. 물리적 한계를 넘은 비물리적 무한한 우주, 물질적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비물질적. 시간적. 존재 기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서로 비교될 수 없는 별개의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이 나왔으면 좋겠고, 동시에 과학과 종교가 상보적인 무엇을 추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07.03.04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