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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학교장 훈화자료

농담엔 공격 심리가 배어 있다

농담엔 공격 심리가 배어 있다

                                                                                                        신동호의 발견의 즐거움
                                                                                                        Science Times 2007. 1. 2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친 김동성 선수가 NBC TV의 '투나잇쇼' 진행자 제이 레노에 의해 비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김동성 선수가 화가 나서 집에 가서 개를 걷어차고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농담이 가뜩이나 금메달을 빼앗겨 마음이 상한 한국인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제이 레노는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지만 우리에게는 조롱으로 들렸던 것이다.

좋은 농담은 건강의 묘약이고, 동료나 가족 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접착제이자 윤활유이다. 하지만 상대가 농담에 익숙하지 않거나 또는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 농담을 하면 조롱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30배나 더 많이 웃는다. 15개의 얼굴 근육이 수축하면서 소리를 내는 무의식적인 이 반사 작용은 소화기관을 자극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한다. 또한 ‘자연의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생성하고,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해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20초 동안 웃는 게 3분 동안 격심한 조정 경기를 하는 것만큼 심장에 좋다는 얘기도 있다. 웃음요법 치료사들은 한 번 웃는 운동량이 에어로빅을 5분 동안 한 운동량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흔히 배꼽 빠지게 웃으면 조깅을 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의사는 임상 경험을 통해 하루 15초를 웃으면 수명이 이틀 더 연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자주 웃으면 혈압도 떨어진다. 하루에 45분을 웃으면 고혈압을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건강한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과 조롱이다. 이런 웃음의 밑바탕에는 동물적인 공격성이 짙게 깔려 있다. 매사추세츠 공대 스티븐 핑커 교수 같은 진화심리학자들은 웃음이 집단적 공격과 조롱 행동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본다. 원숭이들은 떼를 이루어 적을 공격 또는 위협할 때 톱으로 써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로 웃어대며 군중 심리를 조장한다.

서부 영화를 보면 악의 무리 약탈자들은 예외 없이 괴성을 지르며 집을 털고 아녀자를 납치해 간다. 성경 속의 예수를 포함해 많은 역사 기록을 보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에게 군중이 야유와 조롱을 퍼붓는 모습이 등장한다. 대개 왕은 군중 속에 사람을 몇 명 심어 놓고 군중 심리를 조장해 처형을 정당화한다.

야유와 조롱보다 농담은 얌전한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농담은 평화로 위장하고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공격하는 최선의 수단인 경우가 적지 않다. 내밀하고 교묘한 농담에 상대는 꼼짝없이 당한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한 사람이 웃으면 모두 깔깔대고 웃는다. 그리고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즐긴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살았던 한 인류학자가 어느 날 오두막 입구의 문틀에 부딪쳐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옆에서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이 학자는 공격성 강한 가학적 웃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학적 웃음은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고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시청자를 웃겨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프로그램이 국내에도 많이 등장했다.

대개 농담 공격의 목표는 정치인, 상사, 선생 등 권력자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절대 권력자 전두환 씨와 그의 부인은 한국 유머 사상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시민들은 절대 권력자를 유머로 조롱하면서 철권 통치의 두려움을 지웠다.

하지만 상대가 독재자가 됐든 선량한 사람이 됐든 인간의 DNA에는 신랄하고 야비하고 음탕한 농담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고 싶어하는 본능이 약간씩은 숨어 있다. 상대를 은근히 씹는 농담을 우리는 즐겨한다. 이런 본능에다가 유머를 잘해야 성공한다고 믿는 현대판 처세술, 방송의 상업적 웃음 팔기까지 가세해 농담이 ‘사회의 윤활유’라기보다 ‘인화물질’이 될 때가 많다.

농담을 할 때에는 혹시 이 농담이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해야 한다. 우리의 DNA 속에는 농담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욕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비하하는 농담보다 상대를 띄워 주는 농담, 자신을 낮추는 농담이 더 현명한 농담이다. 찰리 채플린이나 구봉서, 배삼룡이 했던 가장 재미있는 유머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내용이었다. 최근에 방송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김제동도 자기 자신을 낮추는 농담을 잘해서 뜬 대표적인 경우이다.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전자신문,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과학동아 편집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나이트 사이언스 저널리즘 펠로우쉽을 수료했다. 현재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해주는 상업통신사인 뉴스와이어의 편집장 겸 이사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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