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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중국의 역할과 미래

중국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나온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미래의 창)입니다. 페어뱅크연구소의 지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심층적인 책입니다. 그 책 중에 인상적인 내용을 보내드립니다.

 

1. 국제 사회에서 다극화가 계속된다면 그 효과가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 바로 동아시아

    일 것이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이다. 문제는 중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 역시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는 데 더 몰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보다 거대한 이웃 나라 중국에 맞서면서 해상 영토 분쟁에서 중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중국이 남북한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국가주의를 지향하며 각국의 지도자가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일에 신경 쓰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군비 축소를 가속화 한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의 미래 방침을 정할 때 국가주의 지향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 뻔하다.

 

2. 중국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이 커진 지금의 국제 사회는 미국이 패권을 쥐던 시절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중국에 대해 국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라는 국제 사회의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그것도 불과 5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신속한 해법을 요구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 문제라든가 국제 무역이나 투자 부문에 있어서 미국의 개입이 급속도로 감소한다면 지도력에 대한 부담감을 가장 먼저 느낄 국가는 바로 중국일 것이다. 지난20세기 초반에 겪었던 다극화는 국제 사회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 불황이라는 불행한 경험을 안겨 줬다. 21세기인 지금 이 같은 불행한 시나리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3. 그러나 정작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혹은 전 세계를 이끌어갈 준비가 돼 있을까?

    지금까지는 이 질문에 긍정적이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아시아의 나머지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가 거의 그렇듯이 중국 또한 자국의 이익과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외교 정책을 들여다보면 ‘적을 만들고 친구와는 멀어지는 방법’을 아주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이후 댜오위섬釣魚島(중국명)/센카쿠열도尖閣列島(일본명)'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의 영유권 분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 30년 동안 계속됐던 중일 양국 간의 긴장 완화 기조가 흔들렸다. 설문 조사 결과 일본인 가운데 중국을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4.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핵무기 및 미사일 계획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침몰

   (두 사건 모두 2010년에 발생), 비무장 지대에서 벌어진 수차례의 공격 등을 포함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 중에는 중국의 궁극적 목적이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를 통한 한국의 국력 약화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장기적 차원에서 중국의 목적은 북한을 중국에 편입해 한반도 통일을 영구히 무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관계 개선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중국해를 둘러싼 주권 분쟁이 격화하면서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 국가 사이에서는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과 군사력을 통해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각국은 중국이 분쟁 수역에서 7개 인공 섬 건설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에 대해 중국이 다자간 협상에 하거나 국제 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5. 일부 분석가들은 지금의 중국이 영유권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갈등 상황과 관련해 자국에게 유리한

    해법을 제시하고 동남아시아 각국에게는 이를 수용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국력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서는 이 지역에서 중국에 맞설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동남아시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개입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 지역의 거의 모든 국가가 경제적 차원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바라는 입장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지도자 중에는 이 지역의 '거인‘인 중국에 가까이 다가가 자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국민의 반응이나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6. 중국이 미국과 유사한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리 크지는 않아 보인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강대국이 국제 사회 속에 무리 없이 합류하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 중국 정부의 통치 방식으로 인해 호전성이라든가 이기심, 편협한 국가주의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대다수 아시아 국가와 달리 중국은 정치적 자지 조정 기제가 결여돼 있다. 국내 통치 방식이 개선되고 국가 지도자가 좀 더 협력적인 방향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국제 사회에서 중국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사실 중국도 미국처럼 혹은 미국과 협력해 동아시아 지역 문제나 다양한 국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다. 현 중국 지도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차원에서 타국의 이익까지 고려하는 전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협상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현 중국 정부의 정책은 지역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중국이 대하는 일본과 베트남은 19세기 미국이 접했던 멕시코나 캐나다와 다르다. 당시 멕시코와 캐나다는 국력이 약해서 미국의 호전성에 대항하기 어려웠다. 21세기인 지금, 중국의 이웃 나라들은 추구해야 할 국익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때로는 중국과 협력하며 때로는 중국의 위협이나 압박에 맞서며 국익을 추구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또한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등을 돌리지 않고 현재와 같은 영향력과 개입 수준을 유지한다면 아시아 각국의 위상은 더 높아지고 힘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중국이 정치·경제적 수단을 통해 패권을 거머쥘 가능성은 크지 않다.

 

7.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사회 불안이 발목을 잡지 않는 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지금보다 더 협력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현재는 몰라도 미래에는 이러한 변화가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학계와 정계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다. 아직은 정권 수뇌부의 귀에 직접 들어가도록 드러내놓고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자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또 다른 중국이 어딘가에서 만들어 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처럼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변화된 중국이야말로 아시아 지역 그리고 전 세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장래에 이렇게 변화된 중국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출처: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미래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