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학교육

①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 흔한 김씨 2019. 11. 21. 11:16

▲  일러스트레이션 = 전승훈 기자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마음이란 무엇인가

 

- 인지심리학

 

마음과 행동을 과학적 엄밀성으로 연구하는 게 심리학인간의 지각·감각 등 측정

 

빛의 강도·소리 2배 높여도 인간은 정확히 그걸 못 느껴TV 볼륨도 마음반영해 만든 지표

 

 

심리학을 한다고 하면 얼핏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관상이나 운명 철학, 혹은 독심술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인간의 마음에 대해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과학적 엄밀성은 떨어지지만 그나마 대중적 관심이 높은 지크문트 프로이트나 카를 융, 알프레트 아들러 등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들어보거나 공부한 적이 있다면 심리학의 한 학파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한민국 지도에서 사람들이 낚시나 휴양을 위해 가끔 가는 작고 예쁜 섬 하나 정도에 비유하면 어떨까. 그 예쁜 섬도 대한민국의 중요한 일부이고 그곳에서 휴양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일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도 아니고 전형적인 생활 모습도 아니다. 대부분의 현대 심리학자들은 예쁜 섬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직관이나 통찰, 혹은 일부 제한된 사례 연구 등에 의한 방법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에 매우 주저한다. 주저할 뿐 아니라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학(psychology) 혹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며, 과학적 엄밀성을 매우 강조한다.

과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화학이나 물리학, 생물학 등을 떠올리고 화학물질이나 물리적 대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물질이 어떤 분자구조로 구성돼 있는지, 그 질량은 얼마인지, 빛의 밝기나 속도 등을 측정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과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은 어떨까? 사람들의 감각, 지각, 학습, 지능, 성격, 정서, 마음의 건강상태 등을 측정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외부 세계를 우리 마음이 어떻게 지각하는지 연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물리적인 빛의 밝기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 밝다고 지각하는지, 물리적인 소리의 크기를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 크다고 판단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즉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지각하고 생각하는 바를 측정할 수 있다.

 

가령 물리적인 빛의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이 있고(가시광선), 볼 수 없는 빛이 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일단 물리적인 세계와 심리적인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볼 수 있는 빛의 밝기도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빛의 강도가 특정한 값에서 두 배가 됐다고 우리 인간이 지각하는 빛의 밝기도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란 공기의 진동에서 비롯되는데, 소리의 높낮이나 크기를 나타내는 주파수나 진폭은 각각 헤르츠()와 데시벨()로 나타낸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청 주파수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20에서 2사이) 안에서도, 5001000소리 높낮이의 차이와 10001500차이는 물리적으로 500로 같지만 우리는 같은 음높이의 차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물리적으로 21보다 두 배로 더 큰 소리로 지각하지도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물리적인 빛과 소리의 변화를 우리의 마음에서는 다르게 지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TV에서 빛의 밝기나 소리의 크기를 조정할 때 나타나는 숫자나 간격 표시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반영해 만든 지표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렇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인 세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의 분야를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이라고 한다. 140년 전에 심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서 시작하게 만든 정신물리학적 접근 방법은, 수천 년 동안 마음에 대한 주관적·직관적 논쟁에서 벗어나 마음에 대해 수량화·객관화할 수 있는 과학적 연구가 가능함을 보여줬으며, 오늘날 현대 심리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심리학의 한 분야이며 접근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심리과학의 주제가 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독자들이 각자 생각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먼저 스스로 대답해 보기를 바란다.

 

필자는 대학에서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의를 지난 몇 년 동안 개설했는데, 학기 초마다 수강생들에게, “마음이란 이다라는 명제를 채워 넣는 과제를 주곤 했다. 이들의 대답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학생은, 마음이란 본능이다, 혹은 느낌이라고 대답한다

마음이란 자신을 움직이는 어떤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마음이란 곧 자신이고 타인과 구별해 주는 것이라 말하는 학생도 있다. 혹은 마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하는 학생도 있는 반면, 어떤 학생은 마음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학생은 마음을 다양한 대상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령, 마음은 마치 돌과 같다거나 혹은, 얼음, 파도, , 그릇, 바람, 거울, 나침반, 우주, 심지어 오렌지에 비유한 학생도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데, 과학자들은 어떻게 마음을 연구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생각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마음의 정의가 다르다면, 우리는 마음에 대해 어떻게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가 마음에 대해 공통된,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통일된 마음의 정의를 하지 못한다 해도 마음을 연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축구나 카드 게임 등 우리가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게임을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전체적인 게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마음 역시 한마디로 그 개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이라고 생각되는 여러 감정이나 기억, 추론 등을 연구하다 보면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더 정확한 정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 독자들이 생각하는 마음과 관련해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독자 여러분은 마음과 연관해 무엇이 궁금한가? 질문은 모든 학문의 시작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얘기가 있듯이, 좋은 학자가 될 사람은 그 사람의 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음과 관련해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과학적으로 연구 가능한가?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앞서 언급했지만, 마음과 관련해 아무리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일단 그 질문은 접어야 한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지만 과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과학자 입장에서 이런 질문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 낭비고, 자원 낭비다. 오히려 그동안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질문일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배우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아직 과학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하지만 과학적으로 연구 가능한 질문을 발견할 때 과학자들은 연구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사실 마음과 관련, 아직도 과학적 연구를 기다리는 중요한 질문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가령, ‘라는 글자를 보고 그것이 라는 글자인지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까?

 

이런 질문을 대학생들에게 하면, 대부분 학생은 그렇게 생긴 모양이 라는 글자라고 배웠으니까 알죠라고 대답한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우리 뇌에 라는 글자가 어떻게 저장돼 있고, 그 외부의 라는 빛 얼룩이 뇌에 저장된 라는 글자와 동일한 것인지를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알게 되는지, 사실 그 과정 자체는 모르는 문제다. 재미있는 사실은, 분명 우리가 라는 글자를 보고 그것이 라는 글자인지는 알지만, 어떻게 아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사용하는 것은 알지만, 자동차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움직이고 그 복잡한 회로가 어떻게 돼 있는지는 모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되는지는 전혀 모른 채 그 마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 글자나 사람의 얼굴 등을 인식하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가 많은 연구를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이런 일을 우리 마음이, 우리의 뇌가 어떻게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뿐이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과학자, 인지과학자들이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자들은 어느 정도 눈치챘을 수도 있다. 마음이란 바로 뇌가 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마음이란 뇌가 하는 정보처리 과정 혹은 정보처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오늘날 대부분 심리과학자는 마음을 연구한다.

 

정보처리 과정이라고 하면 언뜻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우리의 눈이나 귀를 통해 외부의 빛 정보나 소리 정보를 받아들여서 이를 해석하고 변형하고 저장하고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마음이라고 우리가 불러온 것이다.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잡을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생각해서 마음과 관련해서 이런 말도 했다가, 그것과 상반된 또 다른 얘기도 했다가 하는 것은 마음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말장난이다. 우리는 마음과 관련해 어떤 말이 말장난이고, 어떤 말이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밝혀진 과학적 증거인지를 구분해서 제대로 된 마음의 실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야말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인류로 거듭난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필수조건인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밴더빌트대 박사. 한국 인지 및 생물심리학회 회장 역임. 인지심리학, 뇌와 인지 등을 강의하며, 인간의 주의, 학습, 기억, 의식 등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딱딱한 심리학등이 있다.

 

 

용어설명

 

심장 가설과 뇌 가설 :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우리의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놀라거나 흥분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마음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2500년 전 엠페도클레스(BC 495435)는 우리 마음이 심장에 있다(심장 가설)고 생각했고, 비슷한 시기에 알크마이온은 마음이 뇌에 있다(뇌 가설)고 생각했다. 이런 논쟁은 근대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2000년 넘게 계속됐다. 500년경 성 아우구스틴은 마음이 뇌실(뇌를 들여다보면 뇌척수액이 차 있는 빈 공간)에 있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의 기관이 뇌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뇌 모양이 아닌 하트(심장) 모양을 마음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